마음의 눈

2018.12.03 04:48

전용창 조회 수:46

마음의 눈

꽃밭정이수필문학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전 용 창

 

 

 

 

  아마도 10년 전부터인 듯하다. 나도 어느 수행자처럼 육체의 눈은 점점 퇴화되고 마음의 눈이 밝아지고 있음을 느꼈다. 세상 사람을 보는 기준도 달라졌다. 내가 육체의 눈으로 바라본 사람들은 내가 더 이상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는지 하나둘씩 내 곁을 떠나가고 있었다. 그럴수록 나는 고난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내가 지금도 잘 나가고 있다면 나는 사람을 분별하는 안목도 없으려니와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하지도 못한 채, 그들 모두를 만나주느라 소중한 시간만 낭비하지 않았을까? 늦게나마 마음의 눈이 트인 게 한편으로는 감사했다. 행복도 소망도 눈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보이지 않는 마음속에 참다운 행복이 더 많다는 사실을 늦게서야 깨달았다.

 

  올 한 해도 조용히 저물어 가고 있다. 한 해 동안 나로 인해 상처 받은 사람들이 있지나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마음이 외로운 사람에게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나타나야 할 텐데, 나에게 찾아온 것 같아서 요 며칠 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연말에 ‘꽃밭정이문학회’에서 수필집을 발간한다고 3편씩 글을 보내달라고 하여 전하고 성지순례를 다녀왔는데 그중 한 편으로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사실 나보다 경륜이 높고, 작품성도 다양하며, 우리 문학회에 기여도가 높으신 선배님들도 많다. 그런데 이제 새내기인 내가 수상하게 된다니 새치기를 한 것 같아 미안했다. 문우님들은 축하를 해주는데 누군가의 영광을 내가 가로챈 것 같기만 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여건 가운데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100만원이라는 거금의 문학상 상금을 기탁하신 선배 J문우님의 마음은 얼마나 넓으실까? 나는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

 

  저녁식사를 마치고 가랑비를 맞으며 집 근처를 배회했다. 비가 오니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종종걸음으로 보금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았다. 하루의 삶도 아침에 집을 떠나 밤이 되면 다시 집으로 찾아가듯이, 인생살이도 젊은 날 집을 떠나 살다가 노년에 집을 찾아가는 것은 아닐까? 어깨너머로 스쳐가는 식당을 바라보았다. 손님이 없다. 세밑 장사를 하려고 기대도 많았을 텐데 불황의 여파가 심하다. 저렇게 손님이 없으면 전기세, 집세는 어떻게 내지? 어느새 그분들의 걱정은 나의 걱정이 되고 있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매형에게 전화를 했다. 마실을 가도 좋으냐고 물었더니 반가이 오라했다. 집안 이야기를 하다가 문학상 당선 소식을 전했다. 누나와 매형은 박수를 치며 축하했지만 나는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요즈음은 밤마다 화장실을 자주 가기에 깊은 잠을 못 이룬다고 핑계를 댔다. 내가 나오니 매형도 바람을 쐰다며 따라 나왔다. 매형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동생, 이 약 먹어봐. 이 약을 먹으면 잠을 잘 잔다고 하니까.

 

 무슨 약이냐고 물으니 어느 씨름선수가 TV에서 광고를 하는데 화장실 자주 가는 사람에게 좋다고 했단다. 그러면서 2통을 샀는데 1통씩 먹어보자고 했다. 그러면 약효가 없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나는 오늘 착잡했던 마음을 가라앉게 한 매형의 마음을 보았다.

 

 어느 날 나에게 ‘마음의 눈’을 알려준 K 문우님이 생각났다. 그의 자화상 같은 수필「시각장애인 A 씨의 행복」에서 그의 행복은 남편과 딸과 ‘함께라면’ 행복하다고 했다. 1급 시각장애인인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행복하기’를 선택했다고도 했다. 아마도 그는 8살 난 딸의 얼굴을 단 한 번 만이라도 보는 게 최고의 소원일지도 모른다. 그분은 나에게 상대방의 목소리만 들어도 그 사람의 성격과 마음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매주 수필 공부시간에 만나는 그분의 ‘마음의 눈’을 배우기 위하여 간간이 눈을 감고 문우님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유유히 흐르는 물처럼 천천히 그리고 대숲바람처럼 부드럽게 대화하는 사람이 편안하고 사랑스러웠다. 나에게 행복의 기준을 가르쳐준 K 문우님이 참으로 고맙다. 상금을 어떻게 소중하게 쓸까? 나로 인해 문학상을 받지 못한 또 다른 분에게 어떻게 위로의 말을 전할까? 나의 손은 내일이라도 되돌려주어야 할 주머니 속의 약통을 만지작거리며, 발걸음은 집을 향하고 있었다.

 

                                                 (2018.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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