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딸의 초산

2018.12.08 07:29

구연식 조회 수:3

막내딸의 초산(初産)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구연식

 

 

 

  지금 생각하면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 같다. 1960~70년대는 산아제한(産兒制限)이 국가시책이었다. 오죽하면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구호를 내걸었을까? 그때는 두 자녀 이상을 낳으면  산부인과 의료보험에 불이익을 주었고, 예비군 동원훈련 때 정관수술을 신청하면 훈련동원 및 면제 혜택을 주었다.

 그 때 나는 아들과 딸 남매를 둔 가장이었다. 그런데 시골의 부모님을 뵈러 갈 때마다 부모님이 손자 하나를 더 원하시는 바람에 귀염둥이 딸을 하나 더 낳았다그 막내딸은 어버이날 다음 날인 59일에 태어났다. 그리하여 이름도 효도 효()자와 어질 인()자로 지어 '효인'이라고 불렀다. 효인이는 3남매 중에서 유독 온화하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언제나 웃는 낯꽃이다.

 나의 아버지는 손녀딸을 일곱이나 두셨는데 그중 효인이가 자라는 것을 지켜보시면서 손녀딸 중에서 가장 참하고 예쁘다는 칭찬을 하시고 남들한테도 자랑하셨다. 효인이는 그처럼 할아버지한테도 귀염을 받던 손녀딸이었다형제자매간에도 나이 터울이 많아 늘 막내에게 양보하고 동생들을 보살펴 주었으며언니나 오빠가 먹을 것을 주면 듬뿍 잘라서 나누어주는 딸이었다.

 

 우리 부부는 자녀 둘을 이미 키워 놓고 얻은 늦둥이 딸내미라 애지중지하며 키웠다. 그래서 아내는 언제나 막내딸을 '가'라 불렀, 별칭은 '복덩어리'라 했. 그 딸이 작년에 서울로 시집을 가서 지난 가을에 애기를 낳았다. 애기가 애기를 낳은 셈이다. 출산예정일은 음력 8월 추석날이어서 아내와 나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내가 장남이어서 아내는 추석차례음식을 장만해야 하고 나는 차례를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힘으로 할 것 같으면 추석을 넘기고 출산하기를 바랐다. 삼신할머니가 그 소원을 들어주셔서 추석 다음 다음 날 오전에 산기(産氣)가 있다는 딸과 사위의 전화가 빗발쳤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어서 고속도로는 정체가 되어서 기차로 상경하려고 전주역으로 갔다. 열차표 판매소에서 가장 빠른 서울행 열차를 물으니 다른 열차들은 이미 예약되어 표가 없고 상경할 수 있는 열차는 1258분 무궁화호 입석표만 남아 있었다. 그래도 감지덕지하여 표를 구입하고 대합실에서 대기하는데 출발시간이 1시간이나 더 남았다. 추석 연휴 끝이라 대합실은 추석대목 시골장터처럼 붐볐다.

 

 대합실 내 간이식당에서 김밥과 우동으로 점심을 때우고 열차를 기다렸다. 추석 끝이라 여기저기 지인들로부터 전화, 카톡, 문자메시지 등이 오늘따라 많이 와서 순간마다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앉았다. 행여 딸이 혼자서 출산하는가어서였다. 그때 조금 멀리서 아는 남자 한 분이 지나갔다.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하니 막내딸 시아버지인 사장어른이었다. 자리에서 달려가 추석 인사는 대충 얼버무리고 며느리 출산 이야기로 대화가 이어지면서 그쪽 사돈댁도 열차표 예매 때문에 오셨단다. 표가 없어서 금요일 날 왕복표를 구매하셔서 그때나 올라가야겠단다.

 

 그렇게 마음이 조이고 애가 타는데 드디어 서울행 열차가 도착했다. 빨리 탄다고 빨리 가는 것도 아닌데 급한 마음에 잽싸게 올라탔다. 3시간 30여 분동안 서울까지 아내와 서서 가는데 처음 1시간 정도는 버틸 만하던데 시간이 경과될수록 힘들어 자세가 흐트러지고 견디기 힘들었다. 결국 아내는 신문지를 바닥에 깔고 앉았다. 나보고도 옆에 앉으라고 했지만 나는 그냥 서서 가겠다고 얼굴을 좌우로 흔들었다. 이보다 더 힘든 아픔을 참고 있을 막내딸을 생각하니 이것도 호강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를 악물고 3시간 반을 버티다가 영등포역에서 내렸다.

 어기적거리는 굼벵이택시를 타고 병원에 도착하니 아직 출산을 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면회신청을 하니 막내딸이 너무 복통이 심하여 아랫도리가 풀려서 걸음을 걸을 수 없어 나올 수 없다고 했다. 그때 큰딸내미 식구들도 도착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서 진통제를 맞고 우선하여 막내딸이 사위의 부축을 받으며 그 와중에 친정식구 얼굴들이 보고 싶은지 복도로 나왔다. 얼굴은 핼쓱하고, 기진맥진하니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나와 아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막내딸 손을 잡고

 이렇게 엄마가 되기가 힘든 거란다. 모든 인류의 어머니들이 이런 고통을 감수했기에 인류가 생성되고 인류문화가 보존되었단다. 얼마나 어머니가 위대한 존재냐?”

 어머니의 위대함을 역설하고 딸의 등을 다독거려 다시 출생아 출산준비실로 보냈다.

 

 그날 오후 6시쯤,. 담당 간호사가 와서 의사 선생님의 진찰과 여러 가지 산후 징후들을 종합해 보면 출산 예정시간은 늦은 밤이나 내일 새벽쯤이 될 것이라 했다. 인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니 삼신할머니의 점지 계획으로 받아들이고 그저 순산(順産)하기만 기도할 뿐이었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사위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방금 출산 기미가 보여 의료진들이 급히 출산 준비에 들어갔다는 이야기였다. 모든 것이 갑자기 숨가쁘게 돌아갔다. 우리 식구들은 긴장하고 순산을 기다리니 목은 타고 가슴은 떨렸다.

 

 그렇게 긴장의 시간이 째깍째깍 돌아가더니 오후 650분, 산실(産室)에서 ~앙!하는 외손자의 힘찬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순간 외손자는 안심이지만 막내딸의 건강이 염려되었다. 나오는 의료진들에게 물으니

 자연분만으로 순산입니다. 그리고 옥동자를 낳았습니다. 축하합니다!”

 그래도 내 눈으로 막내딸을 봐야지 안심할 수 없었다. 외손자는 유리 벽 밖에서 보니 간호사가 목욕을 시키고 옷을 갈아입히며 간단한 건강검진을 하고 손발 지문을 찍고 카드를 정리한 뒤 유리 벽 안에서 식구들에게 보여주었다.

 

 참으로 귀중한 생명의 탄생이다. 참으로 위대한 자연의 질서 속에 태어난 최고의 보배요 선물이었다. 다시 한 번 하늘에게 감사드렸다. 웃고 찡그리고 우는 떡두꺼비 같은 손자를 보니 고맙고 외할아버지로서 이것저것 생각하면서 가다듬는 무거운 책무도 느껴졌다. 막내딸은 출산 후 2시간 정도 지나야 회복하여 입원실로 올라간단다. 그렇게 계산하면 밤 9시 정도쯤에나 막내딸의 얼굴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때까지는 기다릴 수 없었다. 미리 위층으로 올라가서 막내딸 입원실 복도 앞에서 서성거리며 앉았다가 섰다가 기다렸다. 그런데 1시간도 안 되었는데 막내딸이 휠체어를 타고 간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올라왔다. 나는 얼른 막내딸의 손을 잡으려 하니 담당 간호사가 조금 있다가 접촉하라고 했다. 할 수 없이 뒤로 물러나서 다시 복도에서 기다리면서 현재 상황을 아무도 모를 아래층 대기실의 식구들에게 전화로 알려주니 식구들이 우르르 올라왔다.

 

 간호사가 접촉해도 좋다기에 재빨리 입원실로 들어가서 막내딸의 얼굴을 보니 창백하여 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가, 수고했다. 장하다!

반복하여 위로의 말만 할 뿐이었다. 손을 잡아 보니 손도 차가운 얼음장이었다. 그런데 입원실 창문이 열려있어서 내가 닫으려니 막내딸이 속에서 열이 계속 나서 잠시 열어 놓으라 했다. 산모식사는 산후처리 주사 후에 속이 안정되면 준단다.

 

 그 옛날에는 산모가 아기를 낳으면 시어머니는 오뉴월에도 군불을 지피어 방은 쩔쩔 끓게 하여 출산 중에 늘어지고 벌어진 뼈마디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도록 찜질요법으로 바람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하여 방문도 꼭꼭 닫고 버선도 신기고 옷도 두툼히 입혔었다. 미역국도 넉넉히 끓이고 햅쌀로 밥을 지어 삼신할머니에게도 올려드리고 산모에게도 세 끼 식사 관계없이 틈만 있으면 식사하도록 권장하여 산후조리에 바빴다. 시아버지는 새끼를 꼬아서 고추, , 솔가지를 새끼줄에 꽂아서 삼줄을 만들어 사람들 눈에 쉽게 띄고 출입이 많은 대문에 나지막이 걸어 부정한 사람들의 출입을 막아서 세 이레까지 산모와 아기의 건강 유지에 최선을 다했다. 수유(授乳)와 산후 회복에 좋은 보양식을 달여서 산모의 원기회복에도 온 식구들이 뒷바라지를 했었다. 그게 우리의 아름다운 옛날 산후조리 풍경이었다. 현대의학으로 이루어지는 일련의 출산시스템이나 전통사회의 출산과정은 수단의 차이일 뿐 개념과 목표는 같을 것이다.

 

 옥시토신(oxytocin)은 포유동물에서 분만을 돕거나 분만과정의 지속, 분만 후의 출혈조절, 모유분비촉진 을 위해 분비되는 일종의 호르몬이다. 옥시토신은 포유동물뿐만 아니라 새끼()를 임신하고 기르는 과정에서 인간 못지않게 모성애가 생물 세계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단다.

 이렇게 옥시토신은 산모가 수유하는 동안 유방에서 젖을 나오게 하는 등 신()이 산모에게 부여한 초능력의 컨트롤타워 에너지다. ()이 만든 모성애 옥시토신(oxytocin)의 영감(靈感)에 인간의 땀과 노력을 합성하여 완성한 합성 옥시토신은 산과수술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어 산모들의 출산에 획기적인 도움을 주고있다. 1953뱅상 뒤 비뇨(Du Vigneaud, Vincent-미국)가 처음으로 합성에 성공한 공로로 1955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현대의학 덕으로 산모들이 순산할 수 있어 참으로 고마웠다.

 

 밤 9시가 다 되었다. 긴장이 풀려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큰딸내미 손자들이 그때까지 저녁 식사를 못 해서 배가 고프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산모는 막냇사위가 지키고 모든 식구들은 병원 아래 건너편 식당에서 곰탕을 주문하여 허기진 배를 채웠다.

 

 식사를 일찍 마친 사람이 산모 옆에서 시중을 들던 사위와 교대하여 모든 식구들이 산모를 제외하고 저녁 식사를 마쳤다. 그런데 사위들이 아버님 병원에서는 보호자 한 사람만 허락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입실이 안 된다며 산모는 저희들이 알아서 돌볼 테니 염려 말고 다시 전주로 내려가라고 했다. 시간을 보니 930분쯤이었다. 열차 시간을 알아보니 광명역에서 224분에 출발하는 KTX 산천이 막차란다. 할 수 없이 부랴부랴 큰사위 자동차로 광명역에 도착하니 출발 15분 전이었다. 다행히 하행선이고 늦은 밤 막차여서 그런지 좌석은 여유가 있었다.

 

 1시간 10(2310)만에 중간 익산역을 거쳐 전주에 도착했다. 올라갈 때는 3시간 30분 정도가 그렇게도 길었는데 내려오는 기차는 하루 종일 승차해도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마도 내려갈 때는 좌석도 있고 모든 것이 홀가분한 상태여서 그런 것 같았다미리 마중 나온 아들 승용차로 집에 도착하여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인류의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많은 종교가, 사상가 그리고 석학(碩學)들이 무던히도 고민하고 연구했던 흔적들이 문헌 속에 함축되어 전해지고 있다. 그 공통점은 결국 자연에 순응하면서 순리대로의 삶이 정답인 것 같다고통은 순간이고, 행복은 영원이다.」막내딸의 출산을 지켜보며 얻은 나의 깨달음이다.

                                                      (2018.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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