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행기

2018.12.14 09:15

이준구 조회 수:8

스폐인 여행기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이준구

 

 

 

 

 

 도스토옙스키는 사형선고를 앞둔 5분 만에 사면을 받았다고 한다. 죽음을 앞 둔 어떤 배우는 “고맙다, 사랑한다.” 는 유언을 아내에게 남겼다고 했다. 나는 이와 반대로 수술대 앞에서 “여보, 사랑했어요.” 라는 말을 들었다. 혼자 가려던 서부유럽 여행이 황천길이 될 뻔했다. 미루었던 회갑여행을 아내가 가고 싶어 하던 스폐인과 포루투갈로 바꾸어 다녀왔다.

 

 여행은 누구와 가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여정이이라고 한다. 다행히  30년 가까이 지낸 지인 부부와 함께 동행한 여행이었다퇴직한 친구의 아내는 직장인이라 추석 연휴기간을 활용했다. 서로 통하는 부부끼리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동행한 여정이었다회갑여행이라는 명분으로 자녀들이 여행을 하고 남을 만큼 두둑한 비용을 대준 부부 동반이라 더 좋았다.

 

 새로운 삶이 시작되어 덤으로 가는 여행이라 홀가분했다. 13시간 이상 8천 ㎞를 비행하던 시간 내내 잠도 잘 수 없었다. 광활한 중국대륙의 사막, 곤륜산맥의 설산까지 사진으로 담았다. 바르셀로나 직항로선 국적기 취항이라서 상대적으로 편안했다. 1년 만에 다시 지중해를 접한 그리이스, 터키 상공에서 사진 촬영은 꿈같은 일이었다.

 

 바르셀로나 공항의 헤프닝도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남아있던 유로화로 면세점에서 손녀의 선물을 샀다. 오랜 여행으로 긴장이 풀린 나는 카페에 앉아 쉬고 있었다. 귀국하려다가 떠오르던 사람들에게 줄 선물을 사러갔던 아내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있었다. 물건을 사려고 핸드폰 지갑을 찾는데 핸드폰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먼저 여권은 가방에 있느냐고 확인했다. 다행히 여권은 가방에 있었다. 어떻게 핸드폰이 사라졌는지 아내는 실성한 듯 중얼거렸다. 귀국은 할 수 있다고 안심을 시켰다. 신용카드와 고객 자료가 입력된 핸드폰을 분실한 아내의 표정은 굳을 대로 굳어있었다 마지막 인형을 사고 결재했던 면세점을 찾아갔다. 핸드폰 분실을 손짓 몸짓과 짧은 영어로 이야기했으나 손을 내저었다. 계산대 위의 카메라 녹화를 확인해 보자고 하자 할 수 없다고 버텼다.

 

  공항 내의 폴리스 박스를 찾아갔다. 매장 카운터에서 핸드폰이 사라졌다고 도와 달라고 요청했다. 비일비재한 신고였던지 사복경찰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다른 곳을 가보라고 했다. 출국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마침 아시아나항공 제복을  입은 직원을 만났다. 스폐인어만 통하던 공항에서 구세주를 만났다. 항공사직원은 능숙한 스폐인어로 친절하게 도와 주었다. 폐쇄회로를 보자고 사정하여 확인했으나 더 이상은 곤란하다고 대답했다. 녹화화면은 변호사를 통해 경찰 입회하에만 가능하다는 대답이었다.

 

  항공사 직원은 한국의 핸드폰이 유럽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이라고 설명해줬다. 최근 제품에 걸린 비밀번호도 모로코에서 해제, 재판매된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풀이 죽은 상태로 귀국행 비행기를 타려고 출입문 가까운 곳에 자리 잡았다. 같이 여행을 하던 사람들이 풀 죽은 아내를 위로했다. 나는 아내에게 귀국하자마자 최신 폰을 사주겠다고 달랬다.  

 

  친구부부는 쇼핑을 마치고 뒤늦게 도착했다. 우체국에 근무하던 친구 아내가 아내의 주거래 우체국 카드와 핸드폰 분실신고를 처리해 주었다. 유심 칩을 구입한 그들은 인터넷과 전화를 요긴하게 활용했다. 탑승이 지연되어 기다리고 있었다. 청소하시던 현지인이 아내의 핸드폰을 의자에서 발견했다며 한 여행객에게 넘겨주었다. 이를 돌려받아 확인해보니 아내 핸드폰과 카드, 유로화가 그대로 들어있었다.

 

 얼굴이 활짝 핀 아내는 핸드폰케이스에 끼워둔 100유로 지폐를 가지고 청소하시던 분에게 뛰어갔다. 웃으면서 거절하시던 그 분도 아내 또래의 후덕한 여성으로 보였다아내의 표정에 화색이 돌았다. 나는 아직도 작년 그리스 마테오래에서 분실한 카메라 메모리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있다. 몇 년 전 미국 공항에서 아빠가 부탁한 술을 사다가 카메라와 여권을 분실했던 딸의 모습도 떠올랐다.

 

 그래도 이번 여행에서 분실물을 되찾아 다행이었다. 동행했던 친구 부부에게 좋은 사진을 인화해서 건네주어야 겠다. 귀국비행기 안에서 메모리를 돌려보니 여행지의 추억이 되살아났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구엘공원과 가우디성당, 사라고사의 필라르모 대성당과 프라도미술관, 톨레도와 파티마의 모습이 고색창연했다. 경치로 까보다로까와 리스본, 그라나다와 네르하 투우장 론다와 누에보다리, 마하스와 지로나, 히로나의 이국적 풍경이 너무 좋았다. 플라맹고와 그라나다의 추억속에 마지막 날 관광지, 몬세라트 수도원과 기암절벽이 새록새록 다가왔다.

 

 여행 중에 보았던 풍경보다도 더 강렬했던 슬픈 기억도 카메라에 남아있었다. 삐쩍 마른 훤칠한 키의 아프리카 젊은이들이었다. 집시처럼 떠돌아다니던 보따리장사꾼들이었다. 악세사리와 가방을 보따리에 펼쳐놓고 단속반원을 피해 요리조리 도주하던 모습들이 담겨있었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까만 얼굴에 유난히 불안한 하얀 눈동자도 보였다.

                                                   (2018.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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