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필을 이렇게 쓴다

2018.12.20 09:16

장정식 조회 수:9

나는 수필을 이렇게 쓴다

-정확한 문장표현, 주제의 명료화에 노력한다  

장 정 식 


 

첫머리에

나는 문학의 실향민(失鄕民)으로서 한때를 방황하다가 불혹(不惑)에 이르러서야 문학의 마음밭에 다시 정착한 것이 수필(隨筆)이었다.

국문학을 전공(專攻)하겠다고 공부를 시작한 그때의 동기는 문학을 통해서 인간의 본연(本然)을 탐구하고 인생을 참되게 살기 위한 인생의 원초적인 진리가 무엇인가를 터득(攄得)하고 싶어서였다.

이를 위해 문제작 하나를 세상에 남기기 위한 야심에서 소설을 쓰겠다고 작정을 했다. 그리고는 작품이 되건 안 되건 창작의 습작기를 몸부림쳤다. 그러는 동안 욕심대로 되지 않는데 대한 용기가 시들고 나의 문학적 비재(菲才)만을 탓하며 가슴을 쳤다. 그러다가 나는 고등학교의 일개 국어과 교사인 말쟁이 선생이 되고 말았다. 그로 인해 창작 활동은 더욱 위축되었고 글을 쓸 정신적, 시간적 겨를이 없는 생활환경 속에서 문학의 향수에만 젖어 한때를 구연세월(苟延歲月)하였다. 그러는 동안 내 나이 어언 불혹(不惑)을 넘은 처지에서 인생을 논의하고 토의할 수 있는 산문(散文)에 기대어 선 무렵에야 수필을 쓰게 되었다.

나의 문학적 정서(情緖)의 역정(歷程)을 회고한다면 20대는 시정(詩情)에 공명하는 정서에 코를 부비며 가슴을 열었고 30대에는 소설의 발상에 세상의 삼라만상(森羅萬象)을 통찰(洞察)하고 사고(思考)하는 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따라서 나는 수필이 있기 이전에 시와 소설 쪽에 기대어 서다가 마지막 「이무기」가 된 심정에서 문학에 자리를 잡은 것이 수필이다.

그래서 나는 “수필이 40대 이후의 문학이요, 토의성의 문학이라”고 한 말은 “문학의 Genre를 두루 섭렵하고 나서 최후에 정착하는 것이 수필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되지 않는가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수필을 문학의 어느 장르보다 사랑한다. 그리고 나의 문학의 총량(總量)은 수필이다.

수필을 가리켜 “어떤 규제나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생각나는 대로, 붓가는 대로 쓰는 문학”이라고 하는 데서 수필에 대한 문학적 비중을 경시(輕視)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이른바 임화(林和)의 말마따나 “어떤 특정한 장르로서의 규제를 받지 않고 비교적 자유로이 자기의 생각이나 사물을 기술(記述)하는 것”이 수필이라고 하겠지만, 그러나 몽떼뉴의 말처럼 “세상을 논리의 껍데기로 쓰지 않고 살아가는 인간으로서의 에세이”라고 한다면 역시 수필은 인생을 토의(討議)할 수 있는 연치(年齒)에 이르러서야 쓸 수 있는 토의문학이라고 함이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수필적 발상(發想)

나는 먼저 수필을 쓰고자 하는 내적 욕구에 의한 열정적 사고활동(思考活動)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수필에 대하여 노상 두 가지 명제를 두고 생각하게 된다. 첫째는 무엇을 쓸 것인가를 생각하고, 둘째는 어떻게 쓸 것인가를 생각한다. 무엇을 쓸 것인가는 주제나 소재 면에서 고려되는 것이고 어떻게 쓸 것인가는 구성에서부터 문장의 표현기교에 이르기까지 수필의 전체 짜임을 생각하게 된다.  

무엇을 쓸 것인가.

나는 수필을 쓸 때 퍽 다양한 주제에 접한다. 금아(琴兒, 피천득)가 말했듯이 “어렵고 복잡한 것, 뭔가 큰 것을 후세에 남기기보다 그냥 쓰고 싶은 것을 쓴다. 그것은 우리 마음속 깊이 자리잡고 있는 목가적인 이상을 상기시킴으로써 모든 이가 생각할 수 있는…”그러한 것을 쓴 것처럼 많은 것에 접한다. 나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을 낳게 한 철학적 사고(思考)에 의해서 통찰된 것은 모두가 말거리가 되고 그것을 구체적인 초점(焦點)으로 형상화하기 위한 소재를 동원해오기 때문이다.

무엇을 쓸 것인가를 생각하면 그에 대한 주제의 형상화를 위한 소재를 얻어온 것은 나의 신변에서부터 삼라만상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동원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수필을 쓸 때 외적 통찰과 내적 사고의 몸부림에서 가장 적절한 소재의 상황에서 제재를 골라 주제의 구체화를 꾀한다. “시심(詩心)은 곧 동심(童心)이다”라고 한 말은 꼭 시만을 두고 이른 말은 아니다. “무엇을 쓸 것인가”를 생각하면 우선 경이(驚異)적 안목(眼目)의 외적 통찰과 내적인 깊은 사고(思考)없이는 글 쓸 거리를 잡지 못하기 마련이다.

너댓 살된 어린이의 눈에는 보이는 것마다 신기하게만 보인다. 그러므로 어린이의 눈은 세상의 삼라만상을 경이적인 안목에서만 본다. 어른들이 볼 때는 지극히 하찮은, 추(醜)한 것까지도 어린이의 눈에는 신기하고 기이하게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린이의 포켓 속이 항상 너절한 것들로 가득 차 있는 것도 여기에 기인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는 글쓰는 사람으로서 모든 사건과 사물에 접할 때, 무심코 지나치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들을 매양 관심있게 바라보며 경이적인 안목과 깊은 통찰력을 갖는다. 그러므로 나의 머릿속은 공허하게 비어 있을 때가 없다.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어떤 사건이나 사물에 대하여 하나의 문제의식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도 무심코 지나쳐버리면 수필적 테마는 포착되지 않는다.

그러나 평이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나 보통 사람들이 별 관심없이 흘려보내는 모든 자연현상 속에서 작가가 쓴 글감을 보면, 그것은 예리한 통찰력의 차이임을 느끼게 된다.

이렇듯 나는 수필을 쓰면서 나의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사야에 들어오는 자연현상에서 느껴지는 것들을 “무엇”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일단 심상에 떠올린다. 그리하여 마음에 와 닿는 사건이나 사물에 대하여는 그것을 두고두고 마음에 굴린다. 그러면서 그것이 인생의 본연적 진리와 어떤 의의를 갖는가를 사고(思考)과정(過程)을 통해 깊이깊이 꿰뚫어 간다. 그런 가운데 그에 대한 의의(意義)있는 주제의식을 갖게 되면 그것을 작품으로 형상화할 수 있는 작업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 마음에 굴리며 여과과정을 거친다. 이때 그것이 독창성이 없는 비속한 것이거나 개성적인 것이 아닌, 문제의식이 없는 것이라고 분석되는 경우에는 경의적인 충격에서 얻어진 발상이라고 하더라도 과감히 접어두고 만다. 그렇지 않고 독창성이 있는 주제라고 판단되면 글 쓸 것을 마음에 굳히고 자료수집과 표현에 필요한 소재를 모은다.

나의 졸작 「은행잎 素描」(수필문학 2006. 4월호 게재)를 예로 들면 보도에 떨어져 내리는 낙엽을 밟고 가다가 은행나무에 비친 달빛에 노란 은행잎이 너무도 아름다움에 경이적인 충격을 받은 것이다.

나도향이 그의 수필 「그믐달」에서 많은 사람들이 무심히 보고 지나치는 초승달을 보고 세상을 후려 삼키려는 독부(毒婦)가 아니면 철모르는 처녀같은 이미지를 얻었듯 나는 문득 떨어지는 은행잎에서 인생이 바라는 오복(五福) 중 고조명의 진리인 이미지를 느끼며 주제의식을 갖게 된 것이다.

나의 졸작을 통해서 본바와 같이 방망이를 깎아 파는 노인을 통하여 장인정신과 삶의 여유를 발견한 주제의식을 느낀 윤오영의 「방망이 깎던 노인」이나 하늘에 높이 나는 종달새 울음소리에서 자연의 신비를 깨닫듯 남들은 하찮게 보고 지나치는 것이지만 작가는 거기서 인생을 발견한다. 이런 것들이 바로 내가 수필을 쓰는 나의 지혜로운 눈이요 마음이며 창작의 경이적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의 눈은 바로 이런 것이다. 문학의 눈은 깊은 통찰력과 경이적인 안목이 있음으로서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샘솟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쓸 것인가.

다음에는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 한다.

“무엇을 쓸 것인가” 발상에서 참신하고 독창적이며 개성적이라고 생각된 주제 의식 하에 선별된 소재를 해석하고 의미화한 다음 작품 창작(집필)에 들어간다.

여기서는 문장의 구성, 전체의 짜임새, 문체, 수사적 테크닉 등이 다듬어져야 한다. 「뷰폰」이 말한 “문체는 곧 사람이다.(The man is the style)"라고 한 말을 상기하지 않는다 해도 문장 자체가 그 작가의 인격이라고 보았을 때 문장이 글의 생명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개성이 가장 강한 문학 장르를 든다면 바로 수필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붓가는 대로 쓰는 것이 수필이라고 해서 사실기록이나 생각나는 대로 평면적인 나열을 하다 보면 촛점 없는 삭막한 중언부언이 되어 글에 대한 감명이나 공명은커녕 생명력이 없는 글이 되어 독자를 잃게 된다.

수필 문장은 사실기록의 설명적일 때도 있지만 서정의 문학적 묘사를 빼놓을 수가 없다. 여기서 곧 상상적 비유나 상징적 묘사까지도 생각하게 된다. 그러므로 문장의 구성은 평면적 나열이 아니라 주제의 구체적 형상화를 위한 입체적인 건축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어휘 구사에 있어서도 탁월한 역량을 발휘해야 함도 중요한 요결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수필 창작의 집필을 할 때는 사전을 뒤적이는 시간을 많이 소비한다. 그리고 자주 개발하여 구사한 우리말에 대해서는 어휘 수집록에 수록하여 사전처럼 활용한다.

어느 나라 말보다 뉘앙스가 풍부한 우리말을 상황의 분위기와 정서적 감정과 의미를 적확(適確)하게 구사하기 위해서는 어휘에 대한 지적 능력이 탁월하지 않으면 낱말에 대한 미적 함축성이 없어 사실상 묘미가 없는 문장이 되고 만다.

  구성

김진섭이나 김광섭 등의 수필가는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쓰기 때문에 구성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필자 역시 구성에다 굳이 많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따라서 구성은 주제를 표현하기 위한 조직된 소재를 문장에 어떤 방법으로 배열하느냐 하는 작업 같은 것에 의미 부여를 한다. 그래서 구성은 문장의 조직 또는 설계라고 생각하며 주제를 나타내기 위해 소재를 알맞게 배열하고 전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성이라고 하면, 대체로 단순구성, 복합구성, 산만구성, 긴축구성 혹은 순서형, 산만형, 변증법형, 3단형 등 그밖에 나름대로 다양한 분류를 한다. 그러나 필자는 문장의 전개형식에 통합 고려함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굳이 말한다면 나의 수필 구성은 거의가 단순구성으로 일관되어 있다.

필자는 수필 문장을 전개할 때 서론, 본론, 결론의 형식을 빌어오거나 기(起)승(承)전(轉)결(結)의 체형으로 가닥을 잡는다. 이때 이 부분을 배열하는 순서는 그때의 상황에서 노리는 효과를 위해서 귀납적 전개이거나 연연적 전개를 임의로 선택한다. 이때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일어난 인생의 체험을 재현하는 연상작용에 의한 주제의 구체화를 위해 문장 표현을 사실적 기록보다는 문학적 묘사를 하기에 노력한다.

문장 표현에서는 첫째 어법에 맞지 아니하거나 문장의 기본을 망각한 표현을 경계한다. “수필은 산문이라는 특징이 있고 진실한 자기 고백이라는 개성이 있다. 그러므로 수필의 산문은 첫째 명쾌하고 둘째 정확해야 하고 셋째는 간결해야 한다. 그런가 하면 산문문학으로서의 내용 전달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상징과 비유, 운율(내재율) 나아가 서정이 있어야 창작이 되는 것이므로 그런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하고 또 지성을 바탕으로 하므로 산문문학으로서의 정중한 품위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라고 한 강석호의 말을 충분히 수용한다. 따라서 가급적이면 독자에게 흥미를 주기 위한 알맞은 유머나 위트를 구사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결말

한 글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그 글의 뼈대 즉 주제라고 할 것이다. 무슨 글이나 그 작가가 작품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중심사상이 있다. 이것이 바로 문장의 주제다. 나는 수필을 쓸 때 서두에서 주제를 암시적으로 표현하고 그것의 주변사항까지 동원하여 전개한 후 결말을 내리는 대목에서는 반드시 앞에 암시한 주제와 다시 연결하여 주제를 구체화하면서 전달하고자 하는 참의도를 제시하면 끝을 맺는다. 이것이 수미쌍관(首尾雙關)의 수법이기 때문이다.

대충 이러한 것들을 생각하며 발상된 나의 수필은 그것이 탈고 될 때가지 몇 번이고 퇴고의 과정에서 고민하고 나서야 애오라지 나의 진솔하고 인간적인 호소라고 생각될 때 비로소 세상에 선을 보인다.

결국 나는 수필을 쓸 때 “자기 고백의 인간학이요, 가슴깊이 뜨겁게 공감하는 정(情)의 문학이다. 때로는 진솔한 고백이 있어야 하고 때로는 은은한 서정과 따끔한 비판과 고발이 있어야 하며, 때로는 유머로 독자를 즐겁게 하는 요소가 있어야 한다”고 설파한 강석호의 주장에도 공감하면서 쓴다.

아무래도 수필의 향기는 글을 다 읽고 난 다음에 “그래서 어쨌단 말이냐”하는 의문이 남는 게 아니라 “과연 그렇지”하는 동심력(動心力)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67 2018년 우리 집 10대 뉴스 김학 2018.12.25 6
366 냉이는 로제트 윤근택 2018.12.25 6
365 동백꽃 백승훈 2018.12.25 3
364 학마을의 벽화들 김삼남 2018.12.24 4
363 늦기 전에 이형숙 2018.12.23 6
362 산행 김학 2018.12.21 5
361 수줍어 말못하는 금강산이 김학 2018.12.21 3
360 아내바라기 곽창선 2018.12.20 6
» 나는 수필을 이렇게 쓴다 장정식 2018.12.20 9
358 좋은 수필쓰기 서종남 2018.12.20 190
357 전통수필과 현대수필의 비교 손광성 2018.12.20 5
356 대상을 여는 일곱 개의 열쇠 손광성 2018.12.20 4
355 노년의 안식처 이윤상 2018.12.19 9
354 으아리꽃 백승훈 2018.12.18 9
353 박사골 쌀엿 최기춘 2018.12.18 5
352 이종여동생 김세명 2018.12.18 7
351 내 조국도 사랑해다오 한성덕 2018.12.18 5
350 좋은 글을 쓰고 싶으세요 두루미 2018.12.16 12
349 배추의 변신 김학 2018.12.16 11
348 누구나 나이가 들면 곽창선 2018.12.15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