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3 09:35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이형숙
나는 아직 가슴이 뜨겁습니다. 태초에 나는 태양의 주위를 돌던 행성중의 하나였지요. 수없는 변화와 지각변동과 몸살을 겪어내면서 진화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은하수보다 더 아름다운 별이 되어 70억이 넘는 인간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나는 생명이 있는 것들과 사라진 것들이 남긴 흔적까지도 내 안에 품고 살아갑니다. 모든 생물들이 살아가는데 부족하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을 최적의 공간이 되고자 했습니다. 내 품은 한없이 넓어 내 안에 사는 것들과 내 몸에 뿌리 내리는 것들도 하나같이 아낌없는 사랑으로 껴안았습니다.
내 나이 어느새 46억이 되었습니다. 신은 땅과 하늘을 가르시고 낮과 밤으로 하루를 만드셨습니다. 자연의 순리에 따르며 내 몸에 발붙이고 살도록 허락한 생물들이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습니다. 그들은 풍요롭고 싱그러운 자연 속에서 나와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내 몸 여기 저기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은 점점 병이 깊어져 회복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나를 지켜주던 북극과 남극의 얼음은 내 눈물과 함께 녹아내리기 시작한지 오래입니다.
사람들은 존재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파괴하고 소멸시키면서 내 몸을 병들게 하고 말았습니다. 편리함이라는 괴물을 앞세워 너무 많은 것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금세 쓰레기를 만들어 버리지요. 물건도 시간과 공간도 낭비하며 사는 게 인간들입니다.
지난여름은 혹독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분노의 불길 속을 헤치며 지나온 여름날을 어느새 잊어가는 듯합니다. 기후재난이 시작되었다는 말에 잠시 충격을 받았지만, 가슴 깊이 깨닫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람의 기분은 날씨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지요. 어느 날 떠오르는 추억 하나는 그날 하루를 행복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날씨를 대하는 문학가들의 감성은 미묘하여 날씨에서도 영감을 얻는다고 합니다. 이제 더 이상 내 뜻대로 날씨를 가다듬어 볼 수 없으니, 내 능력밖의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생산량이 감소하여 식량난을 피할 수 없으리라는 이야기, 해충이 창궐하여 삶의 질을 위협할 것이라는 이야기, 빈번한 홍수와 가뭄, 그리고 연안 저지대의 침수로 인한 기후난민 이야기들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가슴으로 듣고 기억해야 할 일들이지요.
내가 슬퍼하는 이유는 내 몸이 중병을 앓고 있는데도 나의 건강상태에 대해 참으로 무관심한 점입니다. 바쁜 세상에 나와는 상관없는 관심밖의 일이라 여기는 것이지요.
현재 11시 55분이라는 환경시계는 어쩌면 생각보다 더 빨리 앞서나갈지도 모를 일입니다. 미래 과학자들이 아직 시간이 남았다고 하는 말은 위로가 아니라 경고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사람들이 내 몸을 어떻게 보살피는가에 운명이 달려 있습니다. 이제 인간과 나, 지구와의 관계를 다시 설정하고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무관심의 반대말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늦기 전에, 너나없이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갖는 것, 그것만이 나를 살리는 일입니다. 더 늦기 전에 말입니다.
(2018.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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