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묘일기

2019.01.06 05:52

이윤상 조회 수:27

성묘일기

행촌수필 , 안골은빛수필문학회 이윤상

 

 

 

 

 ‘뿌리 없는 나무가 어디 있으며, 조상 없는 자손이 어디 있으리오.’ 성묘는 조상의 은혜를 기리는 보은행(報恩行)이 아니겠는가? 역사적으로 성묘는 삼국시대부터 내려온 것으로 전해온다. 불교전성시대인데 성묘를 해 왔다는 것은 아마 중국의 당나라문화에서 유입된 풍습으로 보인다. 주자의 가례(家禮)에 의하면 성묘는 묘제(墓祭)의 한 부분으로 당나라 개원(713~741)연간에 한식상묘(寒食上墓)의 풍속이 이어져 왔다. 제례祭禮의 절차가 합쳐져 묘제墓祭로 발전한 것이라 한다. 성묘는 묘를 깨끗이 손질하고 배례拜禮하는 것으로 봄에는 한식(寒食45일경)에, 가을에는 추석에 한다.

 

 파아란 하늘은 높아만 가고 황금물결이 넘실대는 가을 들판은 오곡백과가 수확을 재촉하고 있다. 우리 집은 추석 전날에 임실 덕치면 선영에 가서 성묘를 한다. 전에는 추석날 차례를 모시고 갔으나 추석날은 성묘객들의 차량이 막혀서 추석 전날 가야 한가하여 여유가 있다. 금년에는 추석 전후로 연거푸 3번 성묘를 가게 되었다. 서울에서 건축업을 하는 장조카가 동생들과 함께 성묘를 가는데 함께 참례했고, 다음 주말에는 둘째 집 조카 내외가 서울에서 교회장로이지만 임실 선비 성묘를 가겠다고 해서 함께 가게 되었다. 개신교 신앙이 철저한 조카내외도 성묘를 가서 묵념으로 성묘하는 모습이 대견해 보였다.

 

 추석 일주일 전에 벌초를 말끔히 해서 묘역이 깔끔하니 조카들도 만족해 하는 눈치였다. 대가족이 승용차로 운행하니 가족소풍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해마다 이렇게 자손들이 모여서 성묘하고 혈육의 정을 나누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멀리 떨어져 살고 각기 생업에 바쁘니 함께 모여서 간다는 건 꿈같은 이야기다. 그러나 금년 추석에는 연인원 20여 명이 성묘를 하며 선영에 감사드리고 멀리 떨어져 사는 사촌끼리 만나서 화기애애한 우애의 기회가 되니 매우 흐뭇했다.

 내가 존경하는 문우님의 수필에서 그 댁의 성묘이야기를 읽고 공감한 바 있다. 몇 년 전까지는 대소가 자손들 30여 명이 모여서 추석 성묘를 다녀왔는데, 최근에는 종손인 조카가 자기 부친상을 당하여 장례식에 가보니 화장하여 선영의 선산에 골분을 살포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으며, 그 뒤부터는 자손들이 합동으로 성묘를 가는 전통도 무너져서 한스럽다는 내용이었다. 앞으로 어느 집안이나 비슷한 장례가 일반화되고 성묘문화도 점차 사라질 것같다.

 

 성묘를 다녀오면서 운암교휴게실에서 간식도 먹고, 호반을 드라이브 하면서 40여 년 전 고향의 성묘길이 떠올랐다. 그때는 승용차도 없고, 일반버스로 가는 고향 길도 무척 힘들었다. 백산에서 하차하여 도보로 형님과 백산면 하청리, 심방리 등에 산재한 묘소를 찾아가노라 땀을 흘렸다. 변산의 깊은 산골 오래전에 부안 상수원 댐이 조성되었지만 그 전까지는 형님이 내 변산 중계리 선영 묘를 찾아서 성묘를 다니셨다. 그러나 83년 봄에 임실에 가족 묘지를 조성한 뒤부터는 성묘 가는 일이 이웃집에 가는 것처럼 편리해졌다. 우리 집은 장형님이 생존하신 1999년 까지는 고조부모까지 4대 봉사를 해왔다, 그러나 형님 별세 뒤에는 조부모까지 2대만 제향을 올린다. 역사적으로 보면 갑오경장(1894) 이전까지는 왕실과 사대부 가정만 4대 봉향을 하고 일반 백성은 조부모까지 만 봉제사를 해왔다. 갑오개혁 뒤부터 일반서민층도 사대부 가정과 같이 4奉祀를 하게 되었다.

 

 

 국민의 80%가 화장을 선호하고 기독교 가정이 60%나 된 이 시대에 성묘관습이 언제까지 지속될는지 모르겠으나 내 생전에는 성묘를 계속할 생각이다. 조선시대에 관(冠婚喪祭)는 도덕이지만 예법으로 규제해 온 관습이 내려왔다. 효는 백가지 행실의 근본이라 하여 조상숭배는 신앙으로 여겨왔다.

 성묘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성묘는 조상의 육체와 혼이 그 속에 존재한다는 의식으로 조상의 은덕을 기리는 행위다. 성묘를 결코 미신이라고 비하해서는 안 될 일이다.

 

 우리 집은 형수님 기일이 43일 한식 무렵이다. 그날 낮에 자손들이 묘지로 모여서 묘제를 올리고, 추모의 글도 올리며 성묘를 한다. 다음으로 신록이 무르녹은 527일이 선비의 기일이다. 이날도 가족이 묘제를 올리고 성묘를 한다, 또한 그날 가족이 1차 벌초를 하고 6월 하순에 진입로에 제초제를 살포한 뒤 추석 일주일 앞에 2차 벌초를 하면 묘역이 항상 깔끔하다. 추석에는 상석에 간략한 제수를 올리고 성묘를 한다. 집에서 차례를 지내는 것은 형수님 별세 뒤에 폐지했다. 예로부터 제사는 정성이라 했는데, 제수를 장만하고 부침개도 부쳐서 방안에서 제사를 모시는 집은 점차 묘제로 바꾸어 간다. 어떤 예절이나 형식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실정에 맞게 숭조효친崇祖孝親 사상을 계승하면서 친족끼리 자주 만나고 우애를 돈독히 하면 복을 받고 자손이 번영한다는 진리는 변함이 없으리라.

-  추석에 성묘를 다녀와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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