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야 관광

2019.01.12 05:50

김세명 조회 수:4

나고야(名古屋)관광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김세명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나고야(名古屋)는 이름대로 오래된 집인 듯 낮은 기와집들이었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일행과 전철을 타고 온천지대인 탕원관에 여장을 풀었다. 일본인 친구의 초대로 국제복지 건강산업박람회를 관람했다. 전철로 이동하면서 보니 지진 때문에 고층건물이 없는 나고야는 인구 300만 정도의 일본 4대 도시다.

 

 막부시대의 일본 수도답게 안내원의 설명을 듣고 보니 집들이 작고 검소하며 고풍스럽고 깨끗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친절하여 인상이 깊었다.  

 

 23일간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어 다까다진자와 나리따야마(성전산) 이누야마(견산성)를 관광했다. 사찰에도 부처상은 없고 가업(家業)에 충실한 조상신에 대한 숭배가 종교관인 듯 보였다.

 

 

 축소지향적이라 관광상품도 작고 견고하며, 물가는 우리나라보다 비싼 편이었다. 교통은 전철로 전국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편리했다. 메이지공원 내에 축성된 이누야마 성은 1537년에 축성되어 1935년에 국보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임진왜란 때 축성되고 일제시대에 국보로 지정돼 씁쓸한 기분이었다.

 

 성은 돌로 정교하게 축성되었고 목재건물인 성안 상층부에 오르자 경비원이 16세기 당시 무사의 갑옷에 진검을 차고(사무라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무사의 갑옷은 철갑으로 가는 철실로 정교하게 만들어 칼이나 화살이 뚫지 못한다고 한다. 성 주변에는 갑옷을 만드는 장인이 갑옷을 짜는 그들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사카의 12만 대군을 이끌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싸웠다고 한다. 이누야마 성은 성주가 1대에서 12대까지 이어졌다.

 

 1891년 노우비 대지진으로 피괴되었고, 내부 4층의 천수각 망루(天壽閣 望樓)만이 유일한 성곽이라고 한다.

 전철에서도 상대방을 의식하여 조용하고 무거운 분위기였다. 경전철은 편리하게 연결되었고 컴퓨터로 조작하여 정확하게 환승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되었다.

 

 

 전철(電鐵) 내에서는 책을 읽는 모습들이 눈에 띄었다. 차를 타는 시간에 무엇이라도 하려는 듯한 분위기여서 산만하지 않았다. 시끄럽지도 않고 남을 배려하는 문화가 인상 깊었다.  

 

 천왕은 상징적이었고 성주를 중심으로 발전하며 각 성주들 간에 치열한 각축전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단단하게 뭉치는 민족성을 지녔고, 서로 무례한 짓을 하지 않도록 교육된다고 한다.

 

 장수국(長壽國) 이라 노인들이 많았다. 노인들이 일정구역 청소를 하고 교통정리도 맡는다. 온천을 하고 온천내 가라오케에 들러 맥주를 마시며 주변을 보니 약 200여 명이 각각 가족단위로 온듯 화기애애하게 모여 엔까를 부르는데 분위기가 이채로웠다.

 

 100세가 넘은 할머니는 특유하게 붉은빛이 도는 노랑머리다. 아들과 손자인 듯한 가족들이 나가 노래를 하자 간간히 박수를 쳤다.  

 

 

 노래를 신청하려면 돈을 주고 따라 하거나 춤을 추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 백세 이상의 노인이 3만 명이 넘는다니 최장수국이다.

 

 그들이 장수하는 데는 대부분 소식(小食)하며 음식을 먹을 만큼만 가지고 가고 버리지 않으며, 식당도 정해진 시간에만 문을 열고 지정시간이 되면 문을 닫는다.

 

 초청한 분이 예약한 식당에는 스모탕이 준비되어 있었다. 즉 스모선수들이 먹는다는 큰그릇에 담은 생선탕이다. 한국인들은 포만감을 느끼도록 많이 먹어야 만족한다는 배려인 듯하다. 2차로 가라오케에 갔는데 엔까인데 트롯풍이라 한국노래와 비슷했다.

 

 숙소로 돌아와 목욕을 하는데 70대 할머니가 목욕탕에 들어와 물의 온도를 재고 나갔다. 남탕에 여자가 들어와 당황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일에 충실한 게 이상할 것 없다는 당당함이 묻어났다.  

 

 

 아침식사를 하는데 기모노차림의 여인이 식사가 끝날 때까지 수발을 들어 주었다. 문화적 차이지만 남성위주의 전통이라 여인은 남자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무릎을 꿇고 도와주고 함께 겸상하지 않고 식사가 끝난 뒤에 여자들만 따로 식사를 한다.

 

 20대에 출세한 남자의 객관적 기준을 '남자가 양옥집에서 중국요리를 먹고 일본여자와 사는 것'이란 말이 실감난다. 여행을 하면서 느껴보니 실증이라도 하듯 일본여성들은 남자에게 헌신적이었다.

 

 한일문화교류로 한류열풍이 불었다. 일본여성들도 남성위주의 억압된 전통에서 벗어나려한다고 했다  가치기준이 변했다지만 무례한 여성을 좋아할 남성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는 것을 여성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2019.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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