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우리 집 10대 뉴스

2019.01.12 06:20

김효순 조회 수:4

  2018년 우리 집 10대 뉴스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김효순

 

 

 

 

 어느새 세밑이다. 겨울은 깊었는데 봄볕 같은 햇살의 눈치가 보여서 찾아오지 못하는 걸까? 눈소식마저 감감한 삭막한 도시에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또 찾아온다는 경보가 울린다. 미세먼지다. 하늘빛은 보이지 않고 안개 낀 날처럼 눈앞이 뿌옇다. 그 아래서 숨 쉬기마저 맘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우울한 일인가!

 한 편, 지난해에는 70여 년이나 닫혔던 철옹성의 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나 온 국민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해 준 날도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휴전선을 넘나들던 그 순간은 몇 번을 되돌려 보아도 감격이 가시지 않는 장면이었다.

 나의 한 해는 어떠했는가? 돌아보니 나는 마치 신선처럼 한 해를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신선은 백년을 하루처럼 산다던가. 헤아려보니 물리적인 시간만을 따져보아도 두어 달이나 다른 나라에서 떠돌았고. 매일 한 차례씩 나섰던 전주천변의 산책길에서 보낸 시간 또한 여행자의 기분을 내면서 걸었으니, 지나간 나의 2018년은 바람처럼 가벼운 세월이었던 듯싶다.

 

1. 손자 김도하 태어나다

 

 봄꽃들이 두루두루 피어나던 420일 큰딸이 둘째아들을 낳았다. 분만실 앞에서 손주를 기다리는 초조하고 불안한 심정은 첫 손주를 기다리던 순간과 다르지 않았다. 손자의 우렁찬 울음소리는 대견했고, 내 딸의 파리한 모습을 보면 먹먹했다. 이 마음은 친정어머니라는 이름으로 감내해야 하는 숙명이라지만 세 번째 경험을 해도 익숙해지지 않던 일이었다.

 

2. 손자 김도윤 어린이집에 들어가다

 

 큰손주 김도윤은 3월부터 제가 사는 아파트단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겨우 생후 20개월인데 어미 곁을 떠나 어린이집 선생님 손에 맡겨진 셈이다. 어린이집 문 앞에서 어미 손을 놓지 않으려는 아이를 떼어놓고 돌아서는 그 어미의 심정인들 어찌 편하랴. 얼마 후에 태어나게 될 동생에게 엄마 품을 양보해야 하니 그 준비를 하는 일이다. 제 등판보다 큰 가방을 둘러메고 자박자박 걸어가는 녀석의 뒷모습이 짠하다.

 

3. 손녀 김열음 어린이집에 가다

 

 작은딸이 낳은 손녀 김열음이 9월에 어린이집 원생이 되었다. 생후 15개월짜리가 엄마 품에서 독립을 하자니 어린이집에 등원하는 장면은 한 동안 눈물바다를 이루곤 했다. 제 어미가 내년 3월이면 다니던 직장에 복직을 해야 되니 열음이 또한 어린이집에 적응을 하려면 미리 훈련을 해야 한단다. 영문도 모르고 낯선 선생님을 엄마 삼아 하루를 보내는 어린 것은 얼마나 애가 탈까. 그런 어미에게서 태어났으니 그렇게 사는 것이 열음이의 숙명이라고 당차게 말하는 작은딸의 속내가 내 눈에 안 보이면 좋으련만…,

 

4. 손자 김도하 병원에 입원하다

    

 봄에 태어난 손자는 제 형과는 달리 먹성이 좋았다. 그 만큼 체격도 우람하게 자라서 제 엄마에게 긍지를 안겨주던 녀석이었다. 여름을 지나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녀석은 잔병치레가 잦아지더니 급기야 대학병원에 입원까지 했다. 뇌수막염은 쉬이 치료가 된다지만  가족들은 가슴이 철렁했고 제 엄마는 사색이 되었다. 며칠 간 입원하여 치료하니 완쾌되었지만 겨울이 닥치면서 감기가 자주 찾아오니 녀석을 보면 애가 타고 그 어미인 큰딸을 지켜보는 일도 안타깝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식이 있어서 기쁘고, 자식으로 인해 힘이 든다.

 

 5.작은 딸 육아 휴직의 해를 보내다

 

 교사인 작은딸이 육아휴직을 하여 1년 간 집에서 보냈다. 까칠한 제 아이를 밤낮으로 안고 어르면서 짜증 한 번 부리지 않는 모습이 대견했다. 길 건너 아파트에는 큰딸이 살고 있는데 올해 둘째를 낳았다. 무더운 여름 날 오후에 어린이 집에서 제 큰조카를 데려오고 돌보아 주는 등 언니에게도 유용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또, 틈만 나면 자매들끼리 밥을 같이 먹고 차를 마시는 등  정답게 지내는 모습이 어미인 내 눈에 참 예쁘게 보인다. 내년 3월이면 복직을 할 텐데 제 언니는 동생이 집에 없는 낮시간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쓸쓸해진다고 한다.

 

6. 코타키나발루의 석양을 감상하다

 

 남편의 지인 중에 퇴직하면 동남아시아 중 적당한 곳에 가서 살아보고 싶다는 분이 있다. 그래서 방학이면 그런 곳을 물색할 겸 여행을 떠나곤 하는데 그분을 따라서 말레이시아의 코타키나발루에 갔다. 2월초에 출발하여 보름 동안 지내고 돌아왔다. 그곳에는 중등교사로 명예퇴직한 뒤 이미 정착해서 5년 째 살고 있는 부부가 있었다. 그분들의 안내로 골프장 투어를 하고 관광을 했다. 맛집을 찾아다니고 해변에서 값싸고 풍부한 해산물 요리를 즐겼다. 그러다 보니 보름은 너무 짧았다. 특히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코타키나발루 해변의 석양은 지금껏 긴 여운으로 남아있다.  

 

7. 일본 시코쿠에서 순례자가 되어보다

 

 예전에 인연이 있었던 스님께서 기획한 시코쿠순례여행을 3월 초에 56일 동안 다녀왔다. 일본의 불교인들은 시코쿠에 있는 88개의 절을 순례하는 일을 평생의 숙업으로 여긴다고 했다. 우리처럼 자동차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도보로 88사를 순례하려면 두 달이 걸린다는데 하얀 옷에 지팡이와 모자까지 갖추고 걸어서 순례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그런 전통이 천 년 동안이나 이어지고 있다는데, 이것이 일본의 저력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스쳤다.

 평생동안 선방에서 공부만 해 오신 큰스님들의 여행길에 동참하는 일이라서 긴장이 되었는데 의외로 스님들은 쾌활하셨다. 대절한 버스 안에서 승속을 넘나들며 벌인 유쾌한 노래자랑, 내공으로 다져진 재치와 윗트가 넘치던 스님들 때문에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웃기도 했다. 그 시간은 진정 잊히지 않을 특별한 나의 봄날이었다.  

 

8. 치앙마이에서 한 달 살기를 실현하다

 

 발자국만 남기고 휙 돌아 나오는 여행이 아니라 그 동네 사람처럼 살아보는 경험을 해 보고 싶어서 결행한 일이었다. 715일에 출국하여 816일에 귀국했으니까 한 달 남짓 태국의 치앙마이와 치앙라이에서 지냈다. 호텔에서 묵었지만 그 동네 사람처럼 한가하게 뒷골목을 어슬렁거리다가 그들이 가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싼 값의 마사지를 받기도 했다. 대중교통 수단인 쏭테우를 타고 그들이 다니는 온천에 가고 카페에 앉아 비싸지 않은 커피를 마셨다. 도시 인근에 있는 좋은 골프장을 순례하는 호사도 누렸다. 사계절 내내 30도 정도를 유지한다는 그곳에서 극심했던 올 여름의 무더위를 피했던 것은 보너스였다.

 

 9. 남편 - 연구년을 맞다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남편이 9월부터 연구년을 보내고 있다. 이 기간에는 교수들에게 학교의 강의를 면제해 주고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1년 동안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편의를 봐 준다. 젊은 교수였던 시절에는 미국에 있는 대학에 교환교수로 나가기도 했지만 이제 정년퇴직을 눈앞에 둔 노교수가 되어버린 그는 주로 집안에서 시간을 보낸다.

 처음 얼마 동안에는 대낮에 그가 있는 집안이 답답하게 느껴져서 내가 밖으로 나돌았으나 몇 달이 지난 지금은 덤덤하게 지내고 있다. 오히려 그가 이것저것 살림살이를 거들어주니 편하기까지 하다. 갑자기 남편이 퇴직하여 집에 있으면 아내는 그 상황에 적응하는데 애를 먹는다는데 나는 미리 예습을 하고 있으니 이래저래 잘 된 일이다.

 

10. 남편과 함께 강원도의 가을을 누리다

 

 노란 가을 들녘과 옥빛 하늘이 기막히게 조화롭던 날, 우리는 무작정 길을 나섰다. 가을바람 같은 발걸음은 일단 속리산에서 멈췄다. 동동주 한 잔 곁들여 늦은 저녁을 먹고 휘영청 달빛 쏟아지는 소나무 숲길을 오래 된 연인이 되어 걸었다. 다음 날은 오대산 상원사에 여장을 풀었다. 적멸보궁으로 부처님을 뵈러 가는 숲에서 만난 단풍나무들은 유난히 맑았다.

 새벽예불을 올린 다음 이른 아침 공양을 마치고 서둘러 달려가 다다른 곳은 백담사 주차장, 아직 설악산 단풍이 절정은 아니라서 일까. 백담사를 오가는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줄이 길지는 않았다. 시원찮은 내 걸음으로 서너 시간 만에 도착한 오세암의 어둑한 마당은 울긋불긋한 등산객들과 사면을 둘러싸고 있는 가을 산 빛이 그득했다. 그들 속에 끼어 방석 한 장에 의지하여 어찌어찌 밤을 새우고 법당으로 올라갔다. 부처님 전에 인등 하나 올리면서 올봄에 태어난 셋째손주 녀석의 건강을 발원했다.

 산을 내려와서 마음 가는 대로 달리다가 멈춘 곳은 정동진 바닷가마을. 석양이 내리는 한가한 해안선을 거닐었다. 아주 오래 전 온 국민들의 가슴을 울렸던 드라마 모래시계의 ‘고현정 소나무’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다. 다음 날 멀리 경상도 예천으로 길을 돌아서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에 나왔던 초간정에 들렀다. 신분이 노비였었다는 연인 유진초이의 고백을 들은 애기씨 고애신이 유모인 함안댁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아린 가슴을 달래던 그 자리에 앉아 그들을 생각했다. 때마침 불어오는 소슬한 가을바람에 가슴이 시려왔다.

 

 내일 떠오르는 해라고 오늘 해와 무엇이 다를까마는 스마트폰은 연신 ‘카톡카톡’하면서 새해 인사를 실어 나르느라 분주하다. 나는 TV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떠나가는 해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다. 멀리 동해안 바닷가는 새해를 맞으러 달려온 사람들로 만원이다. 겨울 바닷바람 속에는 젊은이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내 또래이거나 더 나이 많은 어른들도 더러 보인다.  

 나도 잠시 생각이 많아진다. 살아보니 세월이 쏜 살 같다는 말이 정녕 옛 사람들이 지어낸 허사는 아니었다. 새해는 지난해보다도 더 빠르게 지나갈 것이다. 점점 그 속도감에 적응하기가 어려워지고 또한 매사에 균형감각을 잃고 비틀거리게 되지는 않을까. 두려움이 슬그머니 올라오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이라 없는 것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아서 없는 것이니. 오직 현재만이 진실이다. 그러니 지금 여기에만 집중하면서 살라.’는 성현의 말씀이 등대불빛으로 떠올랐다. 그래, 이 말씀을 등불삼아 2019 기해년이라는 배를 타고 다시 멋진 항해를 시작하리라 다짐하는 섣달 그믐밤이다.

                                                                     (201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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