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

2019.01.15 14:42

정남숙 조회 수:2

소 확 행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정남숙

 

 

 

 

 

   ‘소, , 행’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이르는 말이다. 아름다운 우리말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젊은이들이나 스마트폰에서 사용하는 문자들은 우리말인데도 전혀 감을 잡지 못한 외계어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빨리 빨리를 좋아하는 성급한 성격에 맞아서 그런지, 낱말들을 줄여 중간 중간 한자씩으로 맞춰 간편하게 통용되는 말들이 유행어가 되고 있다. 이해하지 못하면 낙오자가 되고 말 것 같다. 나도 ‘소, , 행’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고 있다.

 

 나에겐 남들이 부러워하는 습관 하나가 있다. 밖에 나가면 하루 종일 화장실을 찾지 않는다. 새벽 일찍 출발하여 늦은 밤에 돌아오는 버스여행길에서, 버스기사들은 승객들의 생리현상을 위해 종종 휴게소에 차를 세운다. 그러나 나는 버스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볼 일이 없기 때문이다. 남의 집에 손님으로 가도 나는 역시, 그 집의 화장실은 구경도 못 하는 게 보통이다. 버스가 머물 때마다 내려야하고, 남의 집에 들어가서 맨 처음 찾는 곳이 화장실이며, 나올 무렵 다시 한 번 더 들르는 곳이 화장실이니, 번거로운 일들을 반복하는 친구들은, 언제 어디서나 상관 없어하는 나를 부러워한다.

 

 그러나 우리 집안에서는 다르다. 남편과 둘째는 화장실이 도서관이다. 필요한 책을 구비해 놓고 사용한다. 30분은 기본, 거의 한 시간도 넘길 때가 많다. 두 사람이 안방과 거실 화장실을 먼저 점거하는 날이면, 나와 첫째는 비상이다. 첫째와 나는 순간 해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화장실을 사용할 때 선후를 잘 잡아야 한다. 어쩌다 선수를 빼앗기면 우리는 초비상 사태가 벌어진다. 화장실문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노크를 해대며, 몸부림을 치고 보채도 안에서는 태평세월이다. 제 시간이 지나야 임무교대가 이뤄진다. 그러니 우리 네 식구의 희망은, 앞으로 화장실 네 개 있는 집으로 이사하는 것이 작은 행복일 것 같다.

 

  지난여름 어느 주일날이었다. 점심을 먹고 나니 배가 살살 아팠다. 별일 아니겠지 하고 화장실을 찾았다. 그러나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몇 번을 들락거려도 마찬가지였다. 난생 처음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지는 불길한 예감이 몰려왔다. 상태가 심각함을 느끼고 아무도 모르게 살짝 빠져나와 집으로 줄행랑을 쳤다. 우리 집 화장실에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아무리 힘을 쓰고 애를 써 봐도 도저히 해결되지 않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거실을 이리저리 기어 다녀 봐도 마찬가지였다. 두 아이를 출산할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 이 난관을 헤쳐 나갈 방법이 없었다. 이러다 죽나보다 아찔한 순간이 닥쳐왔다.

 

  병원이 생각났다. 그러나 가까운 병원은 주일날이라 쉴 것 같았다. 몇 시간이 지나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종합병원 응급실을 가려고 119를 부를까 망설였다. 마지막 최후수단을 한 번 더 써보기로 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죽기를 각오하고 제일 기본적인 방법으로 마침내 해결을 하고 말았다. 해냈다는 안도감과 참았던 공포와 고통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내일은 미리 병원엘 가야지 다짐하며 기진맥진하여 그대로 소파에 쓰러지고 말았다. 전에는 TV화면에 원로배우들이 번갈아 ‘유쾌 상쾌 통쾌’를 외치는 모습이 보였지만, 아무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렇게 고통을 한 차례 겪고 난 뒤에는, 나도 날마다 ‘유쾌 상쾌 통쾌’를  따라 부르짖으며 ‘소 확 행’을 누리고 있다.

 

  우리 큰아이 초등학교 자모들의 모임에서, 초등학교 퇴직교장선생님을 강사로 모신 적이 있었다. 주제가 ‘삼쾌(三快)’였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것’이 인생의 제일 중요한 즐거움이라며, 퇴직교장 자기들의 모임을 '삼락회(會)'라 이름 지었다한다. 그때 당시 하늘이라도 뚫고 오를 듯한 젊은 엄마들은 이해를 하지 못했었다. 우리가 추구하며 누려야할 행복과 즐거움이 얼마나 많은데, 겨우 그까짓 것으로 삼쾌(三快), 삼락()으로 행복과 낙을 삼느냐 한 것이다. 그러나 나도 지금 퇴직교장선생님 나이 이상이 되었고, 내가 장담하던 습관이 병이 되어 심한 고통을 당하다 보니, 뒤늦게 이제야 그때 그 말씀이 명언(名言)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흔히들 세 잎 클로버는 행복(幸福), 네잎 클로버는 행운(幸運)을 의미한다고 한다. 사실 행복은 더 가까이, 더 많이 볼 수 있고 누리고 있음에도 우리는 모르고 있다. 행복은 희망을 그리는 상태에서 좋은 감정인 심리적인 상태로, 자신이 원하는 욕구와 욕망이 충족되어 만족하거나 즐거움을 느끼는 상태를 말한다.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안심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러한 행복은 주관적일 수도 있고 객관적일 수도 있지만, 대단히 복잡하거나 단순하기도 하다. 사람뿐만 아니라 여러 생물에도 행복은 존재하며 만족감의 요소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나, 인간의 경우 만족감 외에도 다양한 요소가 행복감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소소한 행복보다, 준비가 기회를 만났을 때 나타난다고 하는 행운을 더욱 선호하는 것 같다.

 

  어릴 때 친정아버지가 들려주시던 얘기가 떠오른다. 친정아버지와 교류가 있었던 변영태 선생님이 계셨다. 이승만 정권 때 국무총리와 외무부장관을 역임하신 영문학자다. 문학적으로 뛰어난 중국의 삼소(三蘇)인 소식(蘇軾), 소순(蘇洵), 소철(蘇鐵)과 버금가는, 우리나라의 삼변(三卞)이라 불리우던 분이다. 변영만(卞榮晩), 영태(榮泰), 영로(榮魯) 세 분의 이야기를 둘째인 영태선생은 해학적으로 표현하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자기들의 성씨를 변()으로 해석, 형은 대변(大便), 막내는 소변()이니, 가운데인 본인은 설사라며 물개똥이라는 말을 즐겨 쓰셨다는 것이다. 세분이 모두 영문학 박사이며, 문학가로 우리나라 최고의 석학임에도 자기를 하찮은 변에 견주는 폭넓은 아량을 볼 수 있었다.  

 

  돈이 많아야 행복하고, 큰 성공만이 행복한 것으로 착각하는 사고를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쉽지 않은 기회에 찾아온다는 행운에 연연해하며, 한 방 터지기를 바라고 있다. 의지나 노력과는 상관없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일을 말하는 행운을 쫓기보다, 사람의 마음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감정이나 기분, 마음먹기에 따라 일어나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는 것이 참된 행복임을 느끼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나보다. 파랑새를 찾아 떠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자. 남들이 꺼려하는 그 속에서 찾은 나의 ‘소 확 행’을 말할 수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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