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과 어머니

2019.01.19 17:38

구연식 조회 수:5

 

설날과 어머니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구연식

 

 

 

 

 생명체들이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로 출발하는 흔적들은 많다. 소나무에는 나이테가 있고, 인삼에는 나이를 알아볼 수 있는 머릿수의 흔적이 있다. 물론 자연의 계절에 따라 성장과 휴식이 머물렀던 자리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 나이테의 기준을 새해 첫날인 설을 기준으로 한다.

 

 고향, 어머니 그리고 설 명절 등은 누구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들이다. 나의 고향은 전북 익산시 왕궁면 부상천(扶桑川) 마을이다. 부상(扶桑)은 해가 뜨는 곳을 의미하기 때문에 배산임수(背山臨水)와 연결하여 이야기나 전설도 많은 마을이다.

 

 나는 7남매의 장남이어서 어머니는 딸처럼 생각하셨는지 언제나 나를 옆에 두고 보셨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를 돕기 위해서 아기 낳는 것만 못 해봤지 여자가 하는 일은 모두 다 해보았다. 섣달 그믐날에는 하루 전에 물에 불린 찹쌀을 나는 절구에서 찧고, 어머니는 고운 체로 가루를 걸러서 시장에서 구매한 치자열매로 주황색 부침개를 만드셨다. 고구마, , 가지, 묵은 김치 등도 부침개 재료로 사용했다.

 

 설 명절 때는 집집이 철질하는 일이 지금의 김장처럼 꼭 해야 하는 거추장스러운 일이었다. 어머니는 가마솥 뚜껑을 거꾸로 뒤집어 놓고 돼지비계로 연신 문질러 손질을 하셨다. 나는 뒷동산에 올라가 철질솥 불쏘시개감으로 연기가 적게 나고 화력이 좋은 마른 솔가지와 관솔개비 한 삼태기를 모아서 철질할 솥 옆에 가져다놓았다.

 

 특히 명절 때으이 철질은 불 때는 사람과 철질하는 사람의 손발이 척척 맞아야 부침개가 타지 않고 노릇노릇 잘 익는다. 어쩌다가 심술쟁이 바람이 홱 불어 불티가 날아올라 부침개에 내려앉으면 어머니는 부채로 잽싸게 날려보지만, 불티는 날아가지 않고 오히려 달싹 붙었다. 음식 장만할 때 불티는 나라 상감님도 잡수신다.’ 고 하시며 음식조리 때의 불티는 불가항력이며 위생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제삿날 음식을 장만할 때는 자손이 먼저 먹어서는 안 되지만, 명절 때 음식 만들 때는 자손들이 먹어도 된다고 하시면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부침개를 돌돌 말아서 내 입에 넣어주시면서 내가 예뻐서 그러시는지 새끼가 먹는 모양이 좋아서 그러시는지 뜨거워서 혀로 돌려가며 쉽게 먹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시며 흐뭇해 하셨다.

 

 멥쌀가루는 약간 굵은 체를 사용해 걸러서 시루떡을 만들었다. 시루는 깨끗이 씻어 안방 아랫목에 놓아 시루의 냉기를 제거하여 떡을 찔 때 열효율을 높였다시루를 솥에 안치고 제일 아래는 청솔개비나 지푸라기를 깔아서 김이 잘 올라와 떡이 익도록 하는 물리적 구조였다. 쌀가루와 콩가루를 번갈아 층을 이루어가며 떡을 안쳤다. 시루 뚜껑은 김이 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하얀 밥상보를 물에 적셔서 덮고 그 위에 가마솥 뚜껑을 덮었다. 시루를 솥에 안칠 때 그 틈에서 김이 새지 않도록 시룻번 반죽으로 뺑 돌려가며 막았다.

 

 떡시루에 불을 지피기 시작하면, 중간에 화장실을 갔다 오면 절대 출입을 금지하여 혹시라도 부정을 타서 떡이 설지 않도록 했다. 모든 것이 과학적이고 정성을 다했던 설 준비였다.

 우리 집에서는 명절 때 제사 지내는 조상은 안 계셔도 어머니는 차례음식 준비를 하셔서 방안의 성주신과 장독대의 삼신할머니께 꼭 정성들여 올리며 자식들의 만수무강과 소원성취를 기원하셨다.

 

 설 명절 설빔은 곧 닥쳐올 신학기에 맞춰서 양복도 사주시고 그렇게 신고 싶어 했던 검정운동화도 사주셨다. 양복은 소매와 바지 길이가 한 치수 길게 그리고 운동화는 아버지 손가락을 뒤꿈치에 넣어서 들어가는 치수를 사주셔서 내년까지 대비하여 크고 헐렁한 옷과 신발을 신으니 허수아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운동화는 설날 하루만 신고 아까워서 걸레로 흙을 깨끗이 닦아 어머니 장롱 속에 넣었다가 다 닦아지지 않은 황토가 하얀 옷에 묻어서 어머니한테 꾸중을 들었다.

 

 설음식 보관은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라 대부분은 장독의 큰 항아리에 보관했다. 그래서 며칠 동안은 주전부리가 해결되었다. 나는 학교에 갔다 오면 곧바로 장독대에 가서 떡을 통째로 먹으면 어머니가 금방 알아채시니까 귀퉁이에서 조금씩 여러 번 떼어먹고 누가 했는지 어머니의 꾸중을 피해 보자고 했는데 어머니는 풀독에 들랑거리는 생쥐 같다.’며 이미 알고 계셨다.

 

 설날의 행사로는 큰집에 가서 차례를 지내고 집안 어른들에게 세배하기 그리고 성묘를 갔다 와서는 읍내에 있는 사진관에서 가족이나 친구끼리 사진 촬영이 빼놓을 수 없는 행사였다. 사진관 아저씨는 사진 아래에 을해년 설날에’, ‘그리운 친구끼리등의 사진 제목을 넣어주셨다. 세뱃돈이 여유가 있으면 익산 시내에 가서 영화구경도 했었다.

 

 새해가 바뀌었어도 하늘은 똑같다는 말이 있다. (새해)은 인간이 자연의 순환에 편승하여 새해 출발 개념을 정립하는 경우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네라고 했던가? 설이 돌아오니 함박웃음이 가득 찼던 고향 집과 동기간과 부모님이 그리울 뿐이다.

                                                      (2019.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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