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데

2019.01.24 06:11

정남숙 조회 수:4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데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정남숙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한두 가지 버릇이 있게 마련이다. 버릇은 어떤 행위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익혀진 행동방식을 말한다. 이러한 버릇이 오랫동안 되풀이되어 몸에 익으면 습관이 된다. 이 습관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저절로 언어나 행동으로 나타나, 그 사람의 성품이 되기 때문에, 좋은 성품, 좋은 습관을 가지려면 어려서부터 좋은 버릇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나에게도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고쳐지지 않는 버릇이 있다.

 

 옛 어른들은 좋은 성품을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은 어려서부터 좋은 버릇을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한 번 젖어 버린 나쁜 버릇은 의식적으로 고치려 해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 또 같은 행동이 재현되어 쉽게 고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니 좋은 습관은 어려서부터 잘 익혀야 한다. 세 살은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물을 인지하는 시기라 하여 무엇을 보든지 배우면 그대로 따라하며 버릇으로 남아 습관이 되어 평생을 살아 갈 수 있기 때문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말이 있게 된 것이다. 우리가 어릴 때 배운 것은 오래도록 기억하지만, 나이 들어 배운 것은 이해는 빠르지만 바로 잊어버리지 않던가?

 

  나는 철들기 전, 세네 살 무렵부터 할아버지에게 글을 배웠다. 나는 언제나 큰방 아랫목 할아버지 곁이 내 자리였다. 그 당시 우리 동네에는 글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으면 우리 집으로 찾아와 할아버지께 물어보고, 그들에게 필요한 서찰을 할아버지는 대신 써서 들려 보내셨다. 특히나 동네 사람들 집안에 제사가 돌아오면 어김없이 할아버지 차지였다. 찾아와 ‘지방’을 써 달라했다. 자기 집 제사를 잊고 미처 지방을 쓰러오지 않는 집에는, 미리 아시고 그 집의 지방을 써서 뒷짐을 지고 찾아가 “오늘 자네 부친 제삿날이지?” 일러주시며 지방을 건네주고 오셨다. 이런 일들이 수시로 있을 때마다 어린 나는 할아버지 조수노릇을 자청했다.

 

  내 위로 오빠와 언니가 있었지만, 나는 붓글씨 쓰시는 할아버지 곁에 앉아 먹을 갈아드렸다. 할아버지께서 잘 한다 칭찬해 주시니 신이 나서 더 잘하려 했다. 할아버지의 글 쓰시는 모습을 바라보다버려지는 종이를 모아 붓에 남은 먹물을 묻혀 할아버지 쓰시던 글씨를 흉내 냈다고 한다. 처음엔 먹물을 방바닥에 쏟기도 하고, 옷과 얼굴에 온통 먹칠을 해 엄마에게 야단을 맞아도, 할아버지는 언제나 내편이 되어주셨다. 그때부터 할아버지는 어린 나에게 한자와 한글을 가르쳐 주셨고, 우리나라 역사이야기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나는 할아버지 덕분에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한글을 알았기 때문에, 당시 초등학교 4학년, 6학년 이었던 언니오빠 교과서를 다 읽을 수 있었다.

 

  우리할아버지는 외출하실 때마다 내가 쓴 알아보지도 못할 서툰 글씨를 들고 다니셨다. 가시는 곳마다 내 글씨를 내보이며 은근히 어린 손녀자랑을 하셨기 때문에, 나는 할아버지의 껌딱지가 되어 동네 사랑방에 마실을 가실 때도 따라나섰다. 어린마음에도 할아버지의 기대에 보답하려고 열심히 글자를 쓰고 책을 읽었다. 그래서 세 살은 아니지만 4~5세에 배웠던 한자는 80이 다되는 지금까지도 나는 쓰기를 멈추지 않은 버릇으로 남아 있다. 내 바로 밑 동생은 어느 날 푸념을 했다. 할아버지가 몇 년 만 더 오래 사셨더라면, 자기도 한문 공부를 잘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며 누나인 나의 한문 실력을 부러워한다.

 

 나는 말버릇이 고약하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고치려 해도 어느새 다시 그런 말투를 쓰고 있다. 알면서도 고쳐지질 않아 낭패를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우리 집은 시골에 살면서 농사지을 전답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농사를 지을 줄 몰랐다. 동네사람 한둘은 해마다 돌아가며 우리 집 머슴을 살았다. 할아버지를 위시해 우리집안 어른들은 온 동네사람들에게 말을 놓고 지내셨다. 우리도 덩달아 남을 부르는 호칭이 김씨. 이씨 아닌 어른 아이 상관없이 무조건 이름을 불렀다. 우리는 어른들을 따라 동네 사람들을 부를 때 당연히 그렇게 부르는 줄 알았다. 쪼그만 어린 것들이 어른들 이름을 그것도 반말로 불러대고 살았다.

 

  오랫동안 몸에 익어 버린 나의 언행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내가 판단하여 나보다 연하인 것 같으면 나도 모르게 말을 놓는 버릇은 여전하다. 연상일지라도 조금 가까운 사이가 된 것 같으면 어김없이 나는 말을 놓는다. 상대방이 기분 나쁜 기색이 보이면 미리사과를 하면서도 그 사과 말투도 마찬가지 반말이다.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하시하는 것이 아님에도 반말을 하므로 오해를 받는다. 예의가 없다거나, 말버릇이 나쁘다, 사람 무시한다, 잘난 척한다., 등 뒷말을 들으면서도 고쳐지지 않는다. “개 버릇 남 못준다.”는 말은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뼈아프게 들으라는 속담인 것 같다. 다 자란 친구 아들딸에게도 마찬가지다. 내 자식인 양 여전히 반말을 한다. 나만의 사랑의 표현임을 모르는 그들은 오해할 것 같다. 한 번 젖어 버린 나의 나쁜 버릇은 쉽게 고치지지 않는다.

 

 서울에는 전국 각지에서 별별 사람들이 다 모여 사는 곳이다. 우물속의 개구리처럼 고향에서 살던 우월의식을 벗지 못한 채 나는 속앓이를 했다. 그네들의 보통 말투에도 내 감정은 들끓고 있었다. “니들이 뭔데, 나를 감히 무시해?” 내 언행은 생각지 않고, 그들만을 탓하며 나 혼자 불평불만이 쌓이고 있었다. 남들이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들이 나를 알아 줄 리 만무하고, 대접받고 내세울 아무것도 없는 나의 실체를 깨닫게 되었다. 나에게 무시당하며 살았다고 생각했을 그들을 돌아보며, 지금 내가 당하는 것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버릇없던 과거의 행동이 죄송하고 미안해 앞으로는 조심하자 다짐하지만 세살 버릇은 버리지 못한 채 요즘엔 나이든 유세가 한 몫 거들며, 여전히 못된 버릇은 나를 떠나지 않고 내 발목을 붙잡고 있다.

 

  요즘 음주사고를 막기 위한 윤창호법이 발효되었으나, 여전히 음주운전을 하는 자들은 오랜 술버릇을 버리지 못하니, 나쁜 습관 때문일 것이다. 좋은 경력, 좋은 자리에 있으면서, 나쁜 버릇, 나쁜 습관으로 인해 패가망신하는 자들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막냇자식은 부모들이 귀엽다고 오냐오냐하며 키우기 때문에 버릇이 나빠지기 쉽다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처럼 우리 집 아이뿐 아니라, 우리 모든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좋은 버릇을 키워, 살기 좋은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 같다.

                                                                         (2019.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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