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세상에 단비같이 고운 마음

2019.01.25 09:45

한성덕 조회 수:3

우울한 세상에 단비같이 고운 마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한성덕

 

 

 

 

  스물네 살의 청년 김용균 씨는 한국서부발전소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근로자였다. 작년 12월 컴컴한 발전소 안에서 휴대전화 조명에 의지해 홀로 일하다가, 어이된 일인지 석탄수송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목숨을 잃었다.

  부모의 마음이 오죽했을까?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 외에 딱히 할 말이 없어 슬프다. 김씨 어머니는 그 쓰라린 마음을 다잡고 매일 국회를 찾아가 ‘내 아들은 죽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자식은 더 이상 죽어서는 안 된다.’며 국회의원들마다 손을 잡고 하소연했다는 게 아닌가? 그 호소력에 따라 ‘산업안전보건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김씨가 숨진 지 일주일 뒤에 또 젊고 생기발랄한 청소년들이 목숨을 잃었다. 서울 대성고 학생들이 수능을 마치고 강릉으로 우정여행을 떠났다가 발생한 참사였다. 10명 중 3명이 일산화탄소 중독사고로 변을 당했다. 교육부가 부랴부랴 체험학습 실태를 전수 조사하겠다고 나서자 유족들이 제동을 걸었다. ‘사고 원인은 다른데 있으니, 선생님들의 잘못처럼 책임을 묻지 말아 달라’는 간청이었다. 제자를 잃은 슬픔에 잠겨있는 선생님들을 더 힘들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런 슬픔은 지난해 마지막 날까지 이어졌다. 강북삼성병원 임세원 교수가 비운에 쓰러졌다. 자신이 관리하던 정신질환자가 휘두른 칼에 찔려 목숨을 잃었다. 만화에서나 나올법한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도대체 어이된 일인가? 가슴을 파고드는 슬픔이 내 안에서 메아리친다.

  그러나 임 교수 유족에게서 가해자를 비난한 글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자들을 향한 사회적 낙인을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가해자 처벌보다,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걱정하는 마음이 앞선 게 아닌가? 더 아름다운 마음은 고인이 못 다한 일을 이루는데 써달라며, 조의금을 병원과 동료들에게 기부하겠다고 했다. 눈물겹도록 고운 마음씨다.

  걸핏하면 된소리에 삿대질이다. 차마 눈뜨고 못 볼 일들이 왕왕 일어나곤 한다. 배신을 부추기고 박수를 보내는 걸 보면 삼류인생이나 할 짓이다. 이런 꼴들이 오늘의 현실처럼 보이는 얄궂은 세상이다. 그 자리에 퍼질러 앉아 땅을 치며 대성통곡해도 풀리지 않을 성싶을 때가 어디 한두 번인가?

 이런 세상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취한 유족들의 행동에 경의를 표한다. 모질게 짓밟힌 땅에서도 새싹이 나오듯 신선한 충격이다. 유족들의 훈훈한 마음과 진한 감동에 ‘나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를 수없이 되새겨 보았다.

  어느 마을 입구에 남달리 맛있는 빵집이 있었다. 가게 주인은 친구가 운영하는 농장에서 버터를 사다가 빵을 만들었다. 맛의 비결은 버터였다. 어느 날부터인지 버터의 양이 줄었다. ‘친구가 날 속였다.’는 야속한 생각이 겹치면서 화가 치밀어 견딜 수 없었다. 빵집주인은 농장친구를 고발했다.

 

  재판장은 농장 주인에게 버터의 양을 줄이고 속인 이유를 추궁했다. 농장 주인은 양이 줄어든 것을 몰랐다며, ‘다만, 어제나 오늘이나 친구의 가게에서 사온 빵의 무게에 맞춰 버터를 만들었을 뿐’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빵가게 주인의 얼굴이 빨개졌다. 농장의 버터양이 줄어든 것은 남몰래 빵의 양을 줄였던 자신의 결정 때문이었음이 들통나고야 말았다.

  자기 잘못은 창틈에 낀 먼지만큼도 안 여기고, 남의 사소(些少)한 일은 대형사고로 몰아가려는 세상의 전형적 수법이다. 성경에서 ‘자기 눈 속의 들보는 놔두고, 상대 눈 속의 티를 빼라’고 야단치는 그릇된 지도자들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야금야금 파고드는 빵집주인의 얄팍한 상술이 철퇴를 맞았다.

 한 번쯤은 자신을 돌아 볼 필요가 있는데도, 사람들은 다른 이의 실수나 잘못을 추궁하고 문제를 삼으려는데 혈안이다. 그 때문에 세상은 점점 더 미궁에 빠지고 혼란스러워진다.

  물론, 전체는 아니지만 세상이 출렁대고 팍팍하다. 자기만의 옹벽을 쌓고 살아간다. 정다운 이야기가 목마르다. 바로 이때, 앞엣분들의 고운 마음씨가 눈에 들어왔다. 남을 배려하는 생각들이 감동적이다. 내 안에서 존경스러움이 스멀거려 글을 쓰고 싶었다.

                                                   (2019.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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