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적 글쓰기와 바로 그거야 'it'

2019.01.27 06:18

권남희 조회 수:32

즉흥적 글쓰기와 바로 그거야 ‘it'  

                                    권남희 월간 한국수필 편집주간  


 

감흥을 버리고 지루함을 선택할 것인가

 

수필장르는 양반의 탈을 쓴 문학인가?

수백 개가 넘는 TV 채널에서는 수필보다 흥미진진한 토크쇼가 넘쳐나고 있다. 프로그램마다 특색있는 주제를 잡아 영상수필을 쓰며 깨알 재미와 정보를 선물하는데 스토리도 있을까말까한 수필은 글마다 요조숙녀에 양반가문의 인텔리계층이고 사색이 빠진 설명문만 있어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유교사상에 억눌려 살다 요절한 조선시대 허난설헌도 ‘이승에서 김성립(남편)과 이별하고 지하에서 두목지(당나라 시인)를 따르리’ 라는 글을 용감하게 발표했고 양반세계의 문학이라 할 수있는 시조도 촌철살인의 해학이 있고 흥이 내재되어있다는 것을 깜빡 놓친 것이다.

 실체도 없는 문학성에 억압된 글은 너무 조심스러운 매무새를 보인다. 요즈음 문학지에 발표되는 수필들은 문장훈련과 기본기로 다져진 작품들로 평준화를 이루었는데 활력이 없어 독자들을 무력하게 만든다. 수없이 다듬었을 원고들은 모두 주제의 일관성과 정선된 어휘선택 시적  이미지 삽입까지 나무랄 데가 없는데  감동과 감흥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 본성이 너무 배제되었다. 게다가 소재 빈곤을 생각할만큼 비슷한 내용이 많다. 대부분 가족사랑, 유명관관지를 다녀온 형식적인 기행문 그리고 부모의 희생적 사랑과 손자녀 사랑 , 아내 자랑, 수필은 자기고백의 글이니까 거짓말은 못한다면서 고백도 없는 글 등 ......... 장황한 해설과 원론적인 도덕론에서 맴돌고 있다.

 간혹 눈에 띄는 작품은 너무 문장에만 매달리고 정제를 하여 애매모호한 채 답답하다. 수필은 왜 자꾸 결벽증을 보이며 수필론이라는 허상의 틀로  들어가려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게다가  아직도 신문 사설이나 교과서식 문장으로 나열해놓고 발표로 밀어붙이는 작가도 있다.    

다음 내용들은 감동도, 사색의 흔적도, 작가의 독창성 없는 일반적인 문장의 보기들이다.  

 

예문1: 인간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즉 다시 말하자면 인간은 살아가면서 행복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앞의 내용을 설명하자면 아래와 같다. 1. 건강한 것이다. 2. 부부가 해로         해야 한다 3. 직업과 친구를 가지는 일이다..........

예문2: 가을이 왔다. 산에도 들에도 가을이 왔다. 붉은 색으로 단풍들고 가을 바람부는 들판에 추수

        하는 농부들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고 ........  

예문3: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10년 세월이 참으로 빠르게 흘러갔다. 세월앞에 장사없다더니           세월 한 번  참으로 빠르다.  

 그래서 어쩌겠다는 것인지.........독자에게 전하는 작가적 시점에서의 새로운 발견이 없는 이 문장들은 천원샵에서 누구나 살 수있는 플라스틱 컵이다. 작가도 ‘이게 작가가 쓰는 글인가? 고개를 갸우뜽하면서 쓸테니 흥이 날 리가 없다. 예문 3을 본다. 시간의 빠른 흐름을 표현하려면 작가  스스로 경험한 시간의 얼굴을 써야 표현도 살고 문장에서 신바람도 일 것같다. 밤을 세워서라도 한 줄 한 줄 이렇게 바꾸는 노력은 어떨까.        

담배 한 대 피웠을 뿐인데 십년이 흘렀다. 새 한 마리가 폴짝 건너뛰었을 뿐인데 십년이 흘렀다.

   최승자 시 <담배 한 대 길이의 시간 속을 > 일부      

 

 

《스토리》의 저자 로버트 맥기가 ‘무능한 작가의 형태’를 지적했다.

 수필가들의 능력이,  세상에서 가장 극적인 이야기도 가장 평범하고 지루하게  만들어버리는데 특별한 재능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재능있는 요리사는 무 하나를 가지고도 재료의 싱싱함을 살려가며 수십가지의 요리를 창조해내는데 우리는 무 하나를 바라보며 잘 쓰려고 벼르느라 무를 말라비틀어지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해야 한다.  

 

 잭 케루악의 즉흥적 글쓰기와 재즈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초고는 다 걸레다’라고 했지만 미국소설가 잭 케루악Jack Kerouac(1922-1969) 은 흑인들의 재즈 클럽을 찾아 다니면서 영감을 얻어 즉흥적 글쓰기의 방법을 고안했다. 글쓰기의 템포를 염두에 둔 채  다듬는 것을 거부하고 오로지 초고만 있는 기록수단, 매번 다시 쓸 때마다 제로상태에서 다시 쓰면서 갖는 독창성으로  전통적 형태에서 오는 억압을 버려야한다는 교훈을 새겼다. 저녁마다 몇 시간 씩 즉흥연주를 하며 자신의 스타일을 수정하고 발전시키는 재즈 연주자들의 기법에서 크게 감명을 받은 것이다. 재즈연주자들은 무대 뒤에서 악보도 없이 하루종일 즉흥연주를 연습하는데 팀들의 연주가 조화에 도달하는 순간 그들만의 속어인  it' 을 외치게 된다. 재즈클럽의 관중들도 ’그것‘이 왔을 때 즉각 반응하는 그러한 축제가 소통으로 이어져 재즈를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다.  

 잭 케루악은  5년동안 15권의 소설을 썼는데 모두 즉흥적으로 썼다. 형식에 빠져 본질을 잃는 오류를 경계하는 방법을 깨닫는데 걸린 7, 무명의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낸 그는  《길위에서 On the Road》를 한달만에 써서 발표를 했다. 셸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과 함께 미국젊은이들을 대변하는 경전처럼 추앙받았는데 그 작품을 두고 《티파니에서 아침을 》쓴 소설가 트루먼 커포티로부터 ‘글을 쓴 게 아니라 타자를 쳤다’고 비난받기도 했다. 스탕달도 소설 《적과 흑》을  받아적듯이 썼다고 했는데 그 밑바탕에는 오랜 관찰과 사색에서  그려진 그림 한편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즉흥적인 작법은 많은 제약들을 느슨하게 플어서 문학에 그 본래의 힘을 되돌주려는 것이며 억눌려있는 문학적 형식 ( 문법, 구문론의 수많은 규칙들. 문학사의 기념비같은 작품들이 주는 엄청난 책임감 )  지나치게 관념화 되지 않도록 지켜준다. -알코올과 예술가-

 

즉흥적인 글쓰기는 자유로운 영혼에서 출발한다.  

 

‘글이 글을 불러온다’ 단문으로 글이 속도가 붙으면 표현도 통통거리지만 한문장을 끝이없는 수다처럼 쓰는 버릇을 들이면 쓸 때마다 그렇게 길들여진 채 빠져든다.  

작가가 감흥이(감동, 슬픔, 해학, 기쁨, 비극적 장엄함  ) 없는 상태에서 재미없게 글을 써나가면 독자는 단번에 알아차린다. 독자들은 작가가 정색을 하고  훈계나 집안자랑을 늘어놓는 글을 참아주지 못한다.  작가자신이 살아있는 감정으로 글을 써야 작품도 늘어지지않고 탄력이 붙는다. 핵심 감정이 무엇인지도 애매한대다 글자수를 늘이려고  자꾸 군더더기 문장만 붙이는 고생을 하지 말아야 한다.    

 재즈의 즉흥연주가 앞선 연주가 있기에 그 주테마를  바탕으로 즉흥연주는 늘 풍요로워지듯 즉흥적 글쓰기는 경험과 이야기라는 뿌리에서 늘 새롭게 출발한다. 즉흥적 글쓰기는 원래 낭만주의자들의 꿈이었는데  초현실주의자 앙드래 브르통이 1924년 《초현실주의 선언문》에서 시도를 하여 부각된다. 작가를 자동조종 상태로 만들어 이미지와 개념들이 자유롭게 결합할 수 있도록 조장하여 글쓰기를 대중화한다는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방법으로 알려졌다.      

 

아무리 충동을 동력으로 글쓰기를 하고싶다해도 누구나 원하는 수준의 작품을 즉흥적으로  완성해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초고를 쓴 다음, 반복적인 표현,  산만하게 늘어놓은 쓰기를  경계하느라 퇴고하며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고뇌한다. 즉흥도 훈련이 필요하다.

메모습관은 즉흥적 글쓰기의 출발이라 하겠다. 당시의 감정까지 복사해놓기 때문이다. 즉흥은 살아있는 감성을 죽이지않는다는데 의미가 크다. 오감을 경험하게 하는 일이 글의 현장감을 살려주고 속도를 나게 한다, 평소에 아이러니를 활용하는 훈련, 본질적으로 보수적인 인간의 본성을 활용하여 대립구도를 넣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하지만 즉흥적 글쓰기에도 격이 있다. 사실만 적으면 된다는 식으로 날짜부터 만난 사람들과 무엇을 먹었는지 시시콜콜 마구 적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

 

월간 한국수필에 발표되는 <옛 그림 속 세상>글은 즉흥적인 방법은 아니지만 아이러니와 대립구도를 넣었기에 작가 스스로도 흥에 겨워 쓸 수 있는 글이다. 문장의 흥이 흥을 불러고 있는 것이다.

애고머니, 좀 늦었다고 눈썹 빠지게 헉헉대며 달려오는 저 양반 좀 봐요. 아직껏 얼굴이 잔뜩 굳어 있는 걸 보니 부인에게 뭔가 거짓말을 둘러대고 왔나 봐요. 갓은 벗겨져 등에서 너풀거리는데 질펀하게 한판 벌이려는 심보인지 등에 돗자리를 매달고 있네요. 말잡이가 된 양반, 기생을 모시는 양반, 갓 떼고 달음박질하는 양반……. 참으로 가관입니다. 물에 빠져도 개헤엄은 안친다는 양반인데 자알들 노올고 있네요.  양반(), 문반과 무반을 합쳐놓은 말이라고요?   양반, 양다리를 잘 걸치는 반반한 사내들 아닌가요? 두 줄을 기막히게 오가는 줄광대지요. 위선과 위악, 도덕과 타락, 겸손과 오만, 이론과 행동, 배려와 교만, 관대함과 옹졸함…….

…….-2013년 월간 한국수필 6월호 김종란 <나는 말하는 꽃이외다>일부 -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잭 케루악은 “ 술에 취해서 극도의 흥분상태로 책상에 앉을 것”을  권하고 있다. 미칠수록 낫다는 것이다. 차라리 작가가 술에 취해 자신의 노래를 풀어놓기를 기다리고 있다.

it 바로 그거야  ’를 찾아서 취할 일이다.  

현대작가들은 체제나 종교, 금전에 예속되지 않은 자유인지 않은가. 고전주의 예술가들처럼 국가나 종교단체의 주문을 받아 예술품을 납품하는 일이 아닌 이상 개인의 자유로운 영혼과 환경이 재산이고 큰 행복임을 알아야 한다.  

 

참고도서

1.알코올과 예술가 알렉상드르 라크루아프랑스 소설가)마음산책

2. 스토리쓰기 (로버트맥기) 민음인   3. 조선의 글쟁이들 (문효) 왕의서재     

 

* 이 글은 20146월 대표에세이 (월간문학 수필당선자 모임) 공주심포지엄에서 발표하였고  20147월 푸른솔문학회 초청 심포지엄에서 다시 발표하였습니다.  

 

 

 

<  푸른솔문학회 심포지엄 질의 >  

1. 홍성란수필가

백일장에 나가서 제목을 받아 정해진 시간 안에 써 내야 할 때는 순발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순발력과 즉흥글쓰기와는 다른가?

2. 이황연수필가

‘즉흥적 글쓰기’에서 슬픔이나 기쁨과 같은 인간의 원색(原色)적 감정은 절제되어 표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 그 한계에 대하여 말씀해주시기 바라며

: 사회통념(社會通念)이나 일반상식을 뒤집는 내용의 글이 때로는 예 술성(藝術性)을 인정받고 독자들이 좋아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3.이두희수필가

즉흥 글쓰기는 마음속에 일어난 감흥을 제대로 살린다는 점에서 감각적인 글을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글을 쓰다보면 일정한 어투와 문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비슷비슷한 느낌과 분위기의 글이 반복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저의 글은 과거 보고서 형식에 얽매여 살아와서 그런지 매우 딱딱하고 논리성에 갇혀있어서 흥미가 없습니다.

이러한 틀을 깨고 감성적이면서도 흥미를 불러일어킬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해 어떠한 훈련방법이 있는지? 또한, 자기의 고유한 문체를 바꾸거나 버릴려고 하기보다 잘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 아닐지 고민될 때가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도 설명을 좀 해주시길 바랍니다.

4. 김혜경수필가

좋은 주제 발표를 해주신 권남희 수필가님께 감사드립니다. 발표 내용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 속이 시원하기도 하고 수필을 쓴다는 제 자신을 반성하게도 하였습니다. 요즘의 수필 읽다보면 다 비슷비슷 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소재도 주제도 그 나물에 그 밥입니다.

그래서 수필가와 수필집은 넘쳐나는데 독자가 없습니다. 베스트셀러 수필집은 기성 수필가가 쓴 것이 아니라 비수필가인 유명인들이 쓴 작품집이라는 데에 수필가들은 반성해 볼 여지가 있습니다. 수필은 도덕적이고 삶의 진실을 구현해야 한다는 데에 함정이 있습니다.

모든 인간의 마음속엔 풍류라는 끼가 뱀이 똬리를 틀 듯 틀고 있습니다. 그 끼를 해학적으로 수필 속에 녹여내야 하는데 ‘격’이라는 틀에 갇혀서 제대로 표현을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비수필가들은 오히려 이런 구속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흥미 있는 글을 써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흥 글쓰기라는 것이 즉석에서 마구 써내려간 글이 아니라 신선한 표현, 즉 깍두기를 씹는 것보다는 생무를 씹는 것 같은 날것의 싱싱함을 필요로 한다는 말로 해석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날것의 생동감이 좋기는 하지만 즉석에서 쓴 글이나 취중에 쓴 글은 속되거나 정제되지 않은 표현이 많습니다. 때론 밤에 쓴 연애편지처럼 지나치게 감상에 빠져 부치지 못하는 편지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퇴고라는 작업을 거쳐 거르고 다듬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날것의 싱싱함이 날아가고 갖은 양념으로 버무려 놓은 빛깔 좋은 깍두기가 탄생되곤 합니다만 애꿎은 언어를 두들겨 패는 퇴고의 작업을 얼마만큼 배제 시켜야 하는지 권 수필가님의 필살기를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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