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아줌마의 화려한 외출

2019.02.02 08:08

김성은 조회 수:48

인어아줌마의 화려한 외출

신아문예대학 목요야간반 김성은

 

 

 

 시작은 23일 여행이었다. 친구도 나도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를 친정 엄마에게 맡기고 야심차게 떠나볼 심산이었다. 제주도로 갈까, 아니면 서울 시내 호텔에서 밤새 수다를 떨며 파자마 파티를 즐겨볼까? 들뜬 마음으로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약속된 날짜가 다가올수록 내게는 생각지 못했던 변수들이 생겼고, 결국 우리의 '여행''외출'로 강등되었다.

 아무래도 혼자 움직이기가 여의치 않은 나로서는 주변 상황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고, 속깊은 내 친구는 그런 내 입장을 십분 이해해 주었다. 약속이 몇 번이나 바뀌고서야 우리는 만났다. 유짱을 블록방에 입장시켜 놓고, 친구와 나는 근처 디저트 카페에 마주 앉았다.

 

 은희는 내 오랜 절친이다. 대학동기인 우리는 대구에서 수백 끼 밥을 함께 먹었고, 시내를 누비고 다니며 놀았다. 시험 때면 은희는 내 대필자가 되어 주었고, 자췻방에 출몰한 무서운 쥐를 처리해 준 적도 있었다. 가족 말고, 함께 목욕탕에 갔던 유일한 친구였다. 4학년 2학기, 대구에서 익산까지 면접을 보러 왔을 때도, 지금의 남편과 처음 만난 날에도, 내 결혼식에서 부케를 받은 친구도 은희였다.

 특수교사로 취업하자마자 은희는 멋지게 차를 한 대 뽑았다. 방학 때면 은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스키장에도 갔고, 고구마를 구워 먹는 양평의 야외 카페에서 커피도 마셨다. 함20대를 보냈던 아가씨들은 30대가 되면서 아내가 되었다. 엄마가 되고는 한 동안 연락도 뜸할만큼 사노라 바빴다. 일하랴 아이 키우랴, 우리는 치열하게 달렸다. 은희도, 나도 육아에는 친정 어머님의 도움을 받았지만, 학교와 집을 오가며 밤늦도록 살펴야 할 것들은 차고 넘쳤다.

 

 디저트 카페에 마주 앉은 우리는 그간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며 격하게 공감했고, 다시 대학생이 된 듯 즐거웠다. 은희는 집에, 나는 근처 블록방에 각자 아이를 두고 있었으므로 휴대 전화는 손에 꼭 쥔 채였다. 은희를 따라 오랜만에 쇼핑을 했다. 유짱과 조카 옷도 샀고, 졸업식과 입학식장에서 입을 행사용 체크코트도 하나 장만했다. 언니처럼 세심하게 나에게 어울리는 옷을 골라주는 친구의 손길은 따뜻했다.

 '탄탄면'이란 이색 메뉴로 저녁을 먹고는 '말모이'라는 영화도 봤다. 친구는 자동적으로 세심하게 화면을 설명해 주었고, 바쁘게 자막을 읽었다. 퇴직 후에는 장애인 활동지원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은희는 천상 특수교사였다.

 내친 김에 처음으로 은희집에 놀러갔다. 유짱과 혜성이가 어울려 놀았고, 나는 안주인의 성격을 닮아 야무지게 꾸며진 집을 구경했다. 역시 나무랄 데가 없었다맛있는 아메리카노를 내려 주는 은희의 솜씨는 능숙했다.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을 타이르는 태도도 교사답게 논리적이었다.

 이모집에 가서 혜성 오빠와 놀고, 함께 쇼핑하며 몰랑이 쿠션을 선물 받은 유짱도 신이 났다. 처음 엄마와 함께 쇼핑을 나선 유짱이 반색을 하며 몰랑이 쿠션을 잡았을 때, 나는 기차를 타고 내려올 걱정에 반사적으로 아이를 제지했다. 잠시 우리 모녀 간에 실랑이가 벌어진 틈에 이모는 시원하게 쿠션을 계산했다. 유짱에게 은희는 몰랑이 이모로 각인되었다. 유짱은 버스 타고, 기차 타고 내려오는 그 험란한 여정에도 가방을 등에 진 채 몰랑이를 품에서 놓지 않았다.

 

 나에게 은희는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이다. 두 발이 자유롭고 매끄러운 운전 솜씨를 뽐내는 은희가 내게 보여주는 세상이 고맙다. 40대에 접어든 우리는 이제 아이들의 성장만큼 여유를 노린다. 50대가 되고, 60대가 되어 퇴직을 해도, 할머니가 되어 손주를 봐도 함께였으면 좋겠다. 그 땐 우리가 시어머니와 장모로서 우리의 수다를 꽃피우게 되지 않을까?

                                                                   (20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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