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노릇

2019.02.03 16:00

김학 조회 수: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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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노릇

김 학

황금돼지해라는 2019 기해년은 동갑이신 아버지와 어머니가 태어나신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1919년생이신 아버지는 내 나이 일곱 살 때 서른한 살에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내 나이 예순다섯 살 때 여든아홉 살에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평생 모시고 살아서 갖가지 추억이 많지만 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거의 없다. 나를 따뜻하게 품에 안아주신 기억도 없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신 적도 없다.
추억의 앨범을 뒤적여 보면 아버지와 관련된 두 컷 정도의 사진이 떠오를 뿐이다. 옛날 시골집 우물가에 걸터앉아 부엌에서 밥을 지으시던 어머니와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나를 부르시더니 종아리를 때리셨다. 무슨 이유로 맞았는지 나는 지금도 그 이유를 모른다. 또 한 번은 초등학교 1학년 때 봄 소풍을 갈 무렵에 아버지가 검정운동화를 한 켤레 사다주신 일이 있었다. 그때 그 운동화를 얼마나 오래 신었는지는 모르지만, 뛸 듯이 기뻤던 일은 기억한다. 그 때 운동화를 신었던 것은 1학년 전체에서 나밖에 없었기에 다른 아이들이 무척 부러워했었다.
일곱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나에겐 아버지와 추억을 쌓을 기회가 없었다. 목마를 태워주시는 정다운 아버지, 명절 때마다 새 옷을 사다주시는 아버지, 심부름을 잘했다고 칭찬해주시는 아버지, 공부를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아버지, 동요를 가르쳐주시는 자상한 아버지, 그런 모습의 아버지는 내 기억에 없다. 아버지는 돌아가시면서 ‘아버지’란 호칭까지도 가져가 버리셨다. ‘아버지’ ‘아빠’란 호칭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내게서 멀리 떠나버렸던 것이다.
‘한 사람의 아버지가 백 사람의 스승보다 낫다.’고 했는데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바람에 나는 일곱 살 이후 줄곧 아버지노릇을 독학으로 배운 셈이나 다를 바 없다. 남들은 장가를 들면 장인을 ‘아버지’라고 부르던데 나는 한 번도 그렇게 불러본 적이 없다. 홀로 계신 어머니 때문에 장인을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것이다.
자녀들은 자라면서 아버지의 말씀과 행동을 보면서 배우는 것이고, 나중에 아버지가 되면 그것을 회상하면서 아버지노릇을 하는 법이다. 그런데 나는 아버지란 시범조교가 아니 계셔서 보고 배울 수가 없었다. 그러니 나는 아버지노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은 학교에서도 가르치지 않았으니까.
나는 나이가 들자 중매결혼을 했고, 세월이 흐르면서 2남1녀의 아버지가 되었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할머니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면서 잘 자랐다. 나는 나름대로 아버지노릇을 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아버지노릇을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어서 흉내 내기에 그치고 말았다. 그걸 생각하면 아이들에게 미안하기 짝이 없다.
어느 집이나 어린이들은 자라면서 부모의 말과 행동을 닮아가기 마련이다. 우리 아이들도 어설픈 나의 아버지노릇을 보고 배웠을 것이다. 아버지노릇을 잘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미안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비록 아버지노릇이 서툴지만 이 나이까지 아버지자리를 지켜준 것만으로도 행복인 줄 알았으면 좋겠다.
나의 2남1녀의 나이는 어느새 40대 중반에 이르렀다. 그 아이들도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자녀를 둘씩 낳아 기르고 있다. 두 아들은 아들 하나 딸 하나씩을, 고명딸은 아들 형제를 낳았다. 큰아들과 고명딸은 어느새 맏이가 사춘기인 중학생이 되자 무척이나 힘들어 한다. 그들의 푸념을 들으면서 누구나 그 과정을 거치는 것이기에 어서 세월이 가기를 바랄 따름이다.
사랑하는 나의 자녀들은 비교적 아빠 엄마노릇을 잘 하는 것 같아 안심이다. 부자유친과 모자유친을 하려고 허리가 휠 정도로 노력하고 있어서 오히려 안쓰럽다. 비싼 학원에도 여러 군데 보낼 뿐 아니라 가족끼리 외국여행도 자주 하곤 한다. 시대적 흐름이 그러하니 외면할 수도 없는 모양이다. 지금은 내가 아버지노릇을 할 적엔 없었던 일들이 자꾸 생기니 참으로 힘겨울 것이다. 아버지노릇 하기도 참 힘든 세상이다.
(2019.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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