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

2019.02.12 05:31

윤석순 조회 수:8

시 읽기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윤석순

 

 

 

 시를 읽는다. 초등학교 시절에 ‘시 창작’에 관심이 있어서 문예활동을 하며 시를 많이 읽었다. 시를 수집하고 학습하니 흥미롭기도 하나 쉽지는 않았다. 누구나 문자를 안다고 해서 시를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시 장르의 관습을 이해하고 특징에 맞게 읽어야 한다. 시를 접해 보지 못한 사람은 시를 읽을 수 없다. 시 창작 지도교수님은 좋은 시를 읽어야 하고, 시 읽기는 철저한 학습의 결과라고 강조하셨다.

 시를 읽는 것은 산문을 읽는 것과는 달라야 한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시와 산문은 언어의 사용법부터 다르다. 산문에서는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시는 의미가 모호하여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산문은 언어가 의미만 전달될 수 있다면 다른 언어로 대체가 가능하나, 시는 언어가 의미를 전달해도 다른 언어로 대체가 불가능하다.

 동일한 언어라도 산문과 시는 언어사용이 다른 것처럼 읽는 것도 다르다. 시 읽기는 언어의 시적감각이 민감해야 한다. 글자 그대로의 의미 외에도 이면에 숨겨진 의미까지 읽어야 한다. 시 읽기는 시의 의미를 하나로 고정시킨다는 게 아니다. 시의 의미를 파악해도 시를 읽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산문을 읽는 것을 시에 적용한 것이다.

 시 읽기는 아무리 의미를 고정해도 고정되지 않는다. 다만 언어를 통해서 경험하는 것이다. 이것을 영미의 신비평 이론가들은 ‘긴장(tension)‘이라고 한다.

 “우리 시단은 김수영의 표현 속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모든 언어에는 '의미를 이루려는 충동'과 '의미를 이루지 않으려는 충동' 두 가지 충동이 있는데, 김수영은 진정한 시인은 언어는 두 가지 충동을 모두 사용하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두 가지 충동을 변증법적으로 종합하는 시인이 되기를 원했다. 그는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 욕구와 전달할 의미를 만들지 않으려는 욕구를 동시에 경험하면서 시를 쓰고자 했다. 독자들은 의미를 고정하려는 산문적인 읽기의 충동은 물론, 고정된 의미를 해체하고 다른 방식으로 읽으려는 반산문적인 읽기의 충동도 경험하게 된다.

 산문적 읽기는 ‘순서대로 의미’를 축적해 갈 수 있으나. 시 읽기에서 시는 ‘순차적인 의미’의 축적이 불가능하다. 시는 반복하여 읽는 과정에서 묘미가 드러난다. 반복적인 읽기를 한다면 시 읽기는 크게 ‘거시적인 읽기’와 ‘미시적인 읽기’, 그리고 ‘맥락적인 읽기’로 구분한다.

 ‘거시적인 읽기’는 산문적인 읽기로 시의 전체적이고 고정된 의미를 파악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를 수집하면서 읽는다.

 필요한 정보는 ‘제목’, ‘형식’, ‘화자‘와 ’대상‘ 등이 포함된다.

 시 읽기는 ‘제목’에 주목한다. 시는 반복되는 이미지나 구절, 핵심 제재 등을 제목으로 한다. 제목에 시 전체의 내용이 집약되어 있으면 곧바로 시의 주제를 유추한다. 시 전체에 통일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주제가 집약되어 있는 제목은 독자로 선입견을 가지고 시를 읽게 된다. 주제를 확인하기 위해 시를 읽게 한다.

 시 전체의 ‘형식’에 주목한다. 시 전체를 보면 행과 연의 구분의 시각적 형식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근대시의 초창기는 21연과 같은 규칙성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도 있다. 규칙성의 유무는 시의 형식과 주제를 결정한다. 특정한 구절, 단어, 어절 등의 반복에 의해 형성되는 청각적 리듬에 주목한다. 반복을 통한 리듬의 형성은 시 전체에 안정감을 주며 주제를 강조한다.

 시의 ‘화자’와 ‘대상’의 관계에 주목한다. 시는 시인을 대신하는 허구적인 화자가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화자‘도 시의 내용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주관적인 태도를 반영된다. 대상에 대한 태도가 시에 반영되어 나타난 것이 어조이다. 화자의 관점과 어조를 통해서 시의 대상에 대한 시인의 태도를 짐작한다. 시의 대상에 대한 관점과 태도를 결정하는 것은 화자이고, 화자는 어조를 통해서 노출한다.  

 

 ‘미식적인 읽기’는 산문적인 읽기가 불가능한 부분을 중심으로 시를 미세한 언어적 표현에 주목하면서 읽는다. 시적 표현에 텍스트를 반복해서 다시 읽는 과정이 포함된다. ‘언어적 표현’, ‘비유적 표현’, ‘의미의 복합성’ 등에 유의하여 읽는다. 언어는 의미와 표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의미를 표현하는 자체에 주목한다. 표준어 대신에 사투리를, 현대 국어 대신에 고어를 사용한 표현법이 있다. 특정한 언어적 표현은 사용한 문장 전체에 영향을 준다. 단어 하나가 시 전체의 의미에 변화를 준다. 언어적 표현은 구두점도 빠뜨릴 수 없다. 쉼표, 마침표, 느낌표 등의 사용은 시의 의미를 형성하는데 중요하다.

 비유적 표현에 유의해서 읽는다. 시의 언어는 글자 그대로의 의미 외에 비유적 의미에 적합한 여러 가지 표현을 한다.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는 전달할 수 없는 다른 의미를 위해서 은유, 상징, 알레고리, 이미지 등의 다양한 표현을 사용한다. 비유적 표현은 일상적인 언어의 의미를 확장하므로, 의미 확장의 방향과 정도를 생각하며 읽는다. 시에서 자연물들은 그 자체보다 인간의 삶을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고전시가에서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등이 인간에게 교훈을 주는 삶의 모습을 제시한다. 눈과 비, 바람이나 구름 등의 자연 현상도 비유적으로 사용되면 사회적 현실에서 우주의 원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미로 확장되어 쓴다. 비유적 표현은 관습화 되어 한정된 의미를 다시 사용하기도 한다. 시인들은 자연물을 비유적으로 사용하여 관습적으로 통용되는 의미를 파괴하고 새로운 의미 생성에 도전한다. 새로운 의미 생성에 성공한 작품을 찾아 그 의미 확장의 참신성을 음미하는 것도 시 읽기의 즐거움에 속한다.

 의미의 복합성에 유의해서 읽는다. 산문적인 읽기에 방해가 되는 부분에 주목한다. 언어의 미궁에 빠져서 나올 수 있는 다양한 노력을 해보려는 시도가 중요하다.  

 ‘맥락적 읽기’는 시와 그 외부적 맥락을 연결해서 읽는 행위이다. 거시적인 읽기와 미시적인 읽기는 시 자체의 의미에 대한 읽기이다. 시는 그 자체로 독립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시의 의미에 영향을 주는 주변적 맥락을 고려하면서 읽어야 한다. 텍스트의 의미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주는 다양한 콘텍스트에 주목해야 한다. 시 읽기에 영향을 주는 맥락은 시인의 삶, 시인이 참조한 주변시인들, 그리고 시인이 포함된 시대적 배경, 시인이 마주한 현실의 문제 등이 모두 포함된다. ‘전기적 맥락’, ‘미학적 맥락’, ‘사회 문화적 맥락‘ 등으로 읽는다.

 전기적 맥락을 통해서 시를 읽는다. 시인의 전기적 삶을 배경으로 시를 읽을 때, 분명하지 않았던 의미가 선명해진다. 의미를 확정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친다. 시인의 삶을 배경으로 시가 생성된다. 시인의 삶을 맥락으로 시의 의미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시 읽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 시와 시인의 삶은 서로 밀접하게 교류하는 관계를 유지한다. 시를 통해서 시인의 삶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미학적 맥락을 통해서 시를 읽는다. 아무리 위대한 시인이라도 혼자서 시인이 된 경우는 없다. 시인은 선후배 시인들과의 정신적인 교류를 통해서 시인으로 성장한다. 시의 장르 관습을 익히기 위해서 선배시인들의 영향을 받는다. 때로는 동인을 구성하기도 하고, 특정한 집단의 문학적 이념을 대변하기도 한다. 선후배 시인들과 미학적 이념을 공유하거나 공유를 거부하는 상황을 맥락으로 한 편의 시를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사회 문화적 맥락을 통해서 시를 읽는다. 시인은 자신이 속한 사회적 현실과의 관계를 통해서 시를 생성한다. 시인이 속한 역사적, 시대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통해서 시를 읽을 수 있다. 우리는 시 읽기의 실제에서 ‘거시적 읽기’, ‘미시적 읽기’, 그리고 ‘맥락적 읽기’를 하나의 작품에 적용하여 구체적으로 읽는다. 김수영의 ⸢풀⸥ 작품은 시단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읽기가 시도된 대표적인 작품이다. 지금까지 확정된 해석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이론의 여지도 많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다양한 해석이 열려 있는 작품이다. 다양한 시 읽기에 도전할 가치가 충분하다. ⸢풀⸥이 발표된 1968년의 의미를 새겨볼 필요가 있다.

 

 그해는 프랑스에서 시작된 68혁명의 불길이 유럽으로 확산되던 시기였다. 당시에는 기성세대의 권위를 부정하고, 국가 권력의 감시와 통제에 저항하는 학생운동이 유럽을 휩쓸었다. 그동안 관심을 받지 못했던 여성을 포함한 소수자 집단의 목소리가 전면에 대두되었다.

 수업시간에 작품을 분석할 때 많이 들어왔던 내용이다. 이들이 기성세대와 국가 권력에 저항하는 것은 마치 풀이 바람에 저항하는 것과 닮았다. 바람의 통제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풀이 아니라 바람의 통제를 받아들여 그것을 새로운 저항 에너지로 변환시키는 능력을 개발하고 있다.

 유럽에 비하면 1968년의 한국은 훨씬 더 억압적인 사회였고, 정치적 금기가 강하게 작동하는 국가에 속했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분단 상황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악용하는 각종 통제 정책을 통해서 실현되었다. 당시 언론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었다. 김수영의 ⸢풀⸥은 1968년 한국 사회의 억압적 상황을 배경으로 해서 자유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시에서 자유를 어떻게 모색할 것인지를 고민하였던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오문석’은 말하고 있다.

 철없이 동심의 세계에서 희망을 안고 낯선 시를 읽고 쓰기도 했다. 그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소중했던 순간과 시 속의 아름다운 언어에 감탄하고, 설레며 삶의 의미를 생각하곤 했다. 변함없이 거시적인 시 읽기, 미시적인 시 읽기, 맥락적 시 읽기에 적용하지만, 시 읽기는 철저한 학습의 결과임을 새삼 느낀다.        

 

                                                           (2019.1.12.)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67 운현궁의 빛과 그림자 정남숙 2019.02.19 5
466 다섯 맹인의 번개모임 김성은 2019.02.18 4
465 인생, 그 숫자놀이 김학 2019.02.18 4
464 모던 스타일 정남숙 2019.02.17 3
463 매듭 김창임 2019.02.17 3
462 명절증후군 이윤상 2019.02.17 4
461 그 맛은 그곳에만 한성덕 2019.02.17 3
460 온기 전용창 2019.02.17 2
459 힐링의 도시, 전주 김세명 2019.02.14 6
458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 최연수 2019.02.14 4
457 나도 여자이고 싶다 정남숙 2019.02.13 8
456 술래가 된 낙엽 곽창선 2019.02.13 4
455 그 한마디 한성덕 2019.02.12 5
» 시 읽기 윤석순 2019.02.12 8
453 홀아비꽃대 백승훈 2019.02.12 3
452 1억 원짜리 건강정보 두루미 2019.02.09 45
451 말모이 정남숙 2019.02.09 64
450 아름다운 간격 장근식 2019.02.07 53
449 영화, '말모이'와 선교사 한성덕 2019.02.07 29
448 설날 풍경 [1] 김학 2019.02.06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