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맛은 그곳에만

2019.02.17 05:04

한성덕 조회 수:3

그 맛은 바로 그곳에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한성덕

 

 

 

 

  나름의 아침을 여는 운동으로 매주 두세 번은 탁구를 친다. 보통은, 서재 문을 빠끔히 열고 들어오는 아내를 안으면서 하루가 시작된다. 때로는 운동을 하고 올 때도 안기려고 해서 ‘에그그!’ 하며 손사래를 칠 때가 있다. 땀으로 범벅된 몸이 아닌가?

  지난해 1214일이었다. 운동하고 들어오니 아내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여느 아침처럼 부스스함은 온데간데없고, 방긋방긋 웃는 모습이 매혹적이었다. 일찌감치 화장을 하고 기다리는 걸 보니 나들이 태세였다. 아니나 다를까? 여행을 하자고 했다. 어디로 갈 거냐고 했더니 충북 제천이라고 했다.

  샤워가 더 급해서 대답만 하고 샤워장에 들어갔다. 뜬금없이 무슨 제천 바람이 불었나 싶어서 샤워하는 내내 궁금했다. ‘아침마당’ 방송에서 충북 제천을 소개하는데 무작정 가고 싶었다는 게 아닌가?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고 나선 시각은 1030분이었다.

 친구들을 워낙 좋아해서 여행 때마다 초청하곤 했다. 아내도 친구를 좋아하지만 나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불평 아닌 불평을 토로하는 게 둘 만의 여행이다. 우리끼리 다닐 때도 적지 않았는데 양이 덜 차나보다. 소원을 풀어 줄 겸해서 아무소리 않고 집을 나섰다. 승용차에 올라 안전벨트를 매고, 두 손을 꼭 잡은 채 오늘의 안전을 위한 기도를 드렸다. 앞으로는 한 번도 가지 않은 곳을 여행하자는 아내의 말에 동의하고 출발했다. 우리는 무턱대고 충북 제천시청을 내비게이션에 올렸다.

  사람은 눈으로 보고 듣는 것보다, 가서 만져보고 맛 본 것을 더 잘 기억한다. 따라서 음식은 여행과정 중 가장 중요한 역할로 한 몫을 차지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지 않던가? 운전석 오른 쪽의 아내는 차장이면서 가이드이기도 하다. 인터넷을 뒤지더니 맛 집을 찾았다며 환호했다. 일단은 먹는데 집중하고, 여행지는 점심을 먹은 뒤에 찾아보기로 했다.

 오후 140분쯤, 제천의 한 음식점에 도착했다. 배고픔이 맛으로 바뀐 탓일까? 제천의 어느 식당 ‘한우 불고기 전골’은 별미중의 별미였다. 청국장을 퍽 좋아해서 제천의 장맛을 음미하며 여정을 풀 참이었는데, ‘여행에서까지 무슨 청국장타령이냐’고 구시렁거리며 찾은 음식점이었으니 아내 덕이다.

  밖에서부터 음식점 간판이 깔끔하고 품격 있게 보여 입맛을 돋우었다. 정갈스러운 음식은 궁중요리를 생각나게 하고, 음식의 맛을 느끼며 쩝쩝거릴 때는 부잣집 밥상이 부럽지 않았다. 식도로 넘어가는 촉감에서 ‘바로 이걸 먹으려고 왔구나.’ 싶어, 마냥 기뻐하며 알토란같은 식사를 했다. 아내와 나는, ‘두 딸과 사위들을 데리고 다시 한 번 오자’며 몇 번이고 다짐했다.  

 

  한 번 던진 말은 반드시 돌아오는 법, 제천의 그 음식점이 아내의 생일파티 장소가 될 줄 어찌 알았겠는가? 큰사위는 00나라 선교사로 비자 때문에 우리나라에 나와 있었다. 선교사들을 추방하고 비자발급이 극히 어려운 나라여서 기도 중이었는데, 비교적 쉽게 나와 131일 출국을 앞두고 여행에 동참했다. 둘째사위 근무지는 제주도여서 딸만 왔다. 실제보다 한 주 빠른 아내의 생일기념여행은, 기획에서부터 제천의 파티까지 사위들과 두 딸의 작품이었다. 다행히 큰사위 작은아버지가 섬기는 교회선교관에서 이틀 밤을 허락받았다. 그 바람에 강원도 원주를 중심으로 한 23일의 가족여행이 이루어졌다.    

  작년 말, 한국관광공사에서 외국인들에게 ‘가장 먹어보고 싶은 이색적인 한국음식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내심, 구수한 냄새가 뼛속까지 파고드는 청국장이려니 싶었으나 놀랍게도 산 낙지(26%)였다. 청국장을 찾았더니 저 밑에서 얼굴을 살포시 내밀고, “나, 여기~” 하는 듯했다. 간장게장(14,6%), 순대(14,2%), 홍어(10,3%), 육회(7,7%), 그리고 청국장(6,7%) 순이었다.

  외국인이 한국에 오면 한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을 찾는 게 사람들의 심리다. 우리도 제천에 가서 제천의 맛을 찾았던 게 아닌가? 그런데 왠지 해외여행에 나서면 김치나 고추장 등이 그리워진다. 그 덕분에 한국식당을 찾지만 고향의 맛보다 현지화 된 맛에 고개가 갸우뚱해지고,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볼 때는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진다.

  여행에서 먹거리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제천에서는 제천의 맛을 찾아서 기뻤다. 음식으로 맛을 느끼지 못하면 여행의 맛도 감소된다. 그럴 바엔 차라리 생소한 음식에 도전해 볼 필요가 있다. 그 맛은 그곳에만 있으니까 말이다.

                                              (2019.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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