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현궁의 빛과 그림자

2019.02.19 05:16

정남숙 조회 수:5

운현궁의 빛과 그림자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정남숙

 

 

 

  고종황제와 흥선대원군을 알현하기위해 연휴를 맞아, 건장한 두 아들을 대동하고 보무도 당당하게 운현궁(雲峴宮) 출입문을 들어섰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전에 서울에 살 때는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았던 곳이다.

 시내 중심에 있는 우리나라 궁궐들은, 우리 생활주변에 가까이 있고, 언제나 광화문 옆을 지날 때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고픈, 나도 조선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과거와 함께 현재도 보이는, 우리의 일상 같은 시대의 간극을 잊은 곳이기도 하다. 조선 5백년 왕실의 터전을 고스란히 보존해 놓은 우리의 산 역사의 현장이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은 명절 때마다 연례행사로 드나드는 곳이며, 덕수궁은 지금도 서울에 올라갈 때마다 들리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들어가 볼 수 있는 곳이기에 항상 가깝게 느끼고 있었으나, 운현궁은 제외되어 있었다.

   

  안국역을 나와 채근도 않고 내 발걸음을 따라주는 두 아들이 너무도 자랑스러웠다. 잔뜩 기대감을 안고 걷다보니 목적지에 다달았다. 바깥마당을 밟은 순간 황량함이 몰려왔다. 고종의 생가이고 흥선대원군의 세도가 가득 차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안고 찾아갔기에 실망이 더욱 크게 느껴졌나 보다. ‘맥수지탄(麥秀之嘆)’이 이런 감정이구나 싶다. ‘맥수지탄’은 고국의 멸망을 한탄함을 이르는 말이다. 고대 중국의 삼국((),(),()) , 상나라(, 또는 은나라)의 마지막 임금인 주왕(紂王)은 숙부 비간과 미자, 기자같은 충신들을 멀리하고, 달기와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져 백성과 제후들의 마음을 잃었다. 결국 주왕은 주나라 무왕(武王)에게 패배하여, 도성에 불을 지른 뒤 자살하였고, 상()은 멸망했다. 머리를 풀어헤치며 미친 척하던 기자(箕子), ()나라가 망한 뒤 도성으로 돌아와, 옛 도읍터의 황량함을 보고 한탄하던 말이다. 그 심정을 알 수 있는 세월의 무상을 느끼게 했다.  

 

  운현궁(雲峴宮)은 조선 제26대 임금인 고종의 생부인 흥선대원군의 저택으로, 고종이 탄생하여 즉위하기 전, 12살까지 살았던 잠저이기도 하다. 운현궁의 이름은 서운관(書雲觀, 관상감의 별칭)이 있는 앞의 고개라 하여 운현(雲峴)이라 불렸다고 한다. 고종이 즉위하자  흥선대원군이 이곳에서 정치를 했고, 창덕궁과 직통으로 왕래할 수 있는 경근문과 대원군 전용 공근문은 보이지 않았다. 한때는 궁궐에 견줄 만큼 크고 웅장했다고 한다. 정원 등은 잘 보존되어 소년 시절에 고종이 자주 오른 노송(老松)이 남아 있었다. 운현궁에 속한 모든 건물과, 1910년대 바로크 형식으로 새로 지은 ‘양관(洋館)’은 사적 제257호로 지정되어 있다. 운현궁 담밖에 있는 양관정문과 ‘양관(洋館)’은 덕성여대 본관으로 사용하던 서양식 건물이다. 양관정문은 마차출입이 가능하도록 곡선과 타원형으로 되어있고, 양관은 학교 문양으로 덕성여대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바깥마당을 지나 솟을대문으로 들어섰다. 높은 댓돌이 위압감을 준다. 아이들의 부축을 받아 힘들이지 않고 댓돌에 올라, 넓은 마루 한 모퉁이에 앉았다. 대여섯 간쯤 되어 보이는 정면과 깊은 대청, 앞마루를 건너 방안과 마루 처마가 눈에 들어왔다. 노안당(安堂)이란 현판위 처마 끝에 각목을 덧대어 차양이 설치되어 있었다. 방안에는 평상복 차림의  대원군이 경상을 마주하고 붓을 들어 글을 쓰고 있는 모습이 재현되어 있었다. 운현궁의 사랑채였다. 노안당(安堂) 현판은 <논어> [공야장]편의 ‘노인을 편하게 하다’인 ‘노자안지(者安之)’에서 딴 것으로 아들이 임금이 된 덕택으로 좋은 집에서 편안하게 노년을 살게 되어 스스로 흡족하다는 뜻이라 한다.

 

  영화 ‘명당’의 장면들이 스쳤다. ‘명당’은 땅의 기운을 점쳐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곳이라 믿었다. 명당을 이용해 나라를 지배하려는 안동김씨 가문의 계획을 막다가 가족을 잃게 된 뒤, 복수를 꿈꾸는 천재지관 박재상(조승우) 앞에, 세상을 뒤집고 싶은 몰락한 왕족 흥선(지성)이 나타난다. 함께 안동김씨 세력을 몰아낼 것을 제안하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린 영화였다. 두 명의 왕이 나올 천하명당(天下明堂)의 존재를 알게 되고, 뜻을 함께하여 김좌근 부자에게 접근한 박재상과 흥선은, 서로 다른 뜻을 품게 된다. 가야산 동쪽 능선에 해당되는 옥양봉 남쪽 산록에 가야사라는 고찰이 있었는데, 그 절터가 왕손을 낳게 한다는 풍수설 때문에 흥선대원군은 종실의 보존을 위해 가야사를 불태우게 된다. 그리고 이곳에 아버지인 남연군(南延君)의 무덤을 썼는데, 마침내 그 소원이 이루어져, 둘째 아들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가미해 만든 영화였다.

 

  ‘노안당’과 연결되어있는 대문을 지나니 노락당(老樂)이다. 운현궁에서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흥선이 주로 거처한 곳이라 한다. 고종(3)이 명성황후와 가례를 거행한 곳이며, 가족들의 회갑잔치나 각종 중요행사를 거행하던 장소다. 명성황후가 삼간택(三揀擇)을 마치고 왕비수업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고종의 가례가 있은 뒤, 노락당을 안채로 사용할 수 없자, 운현궁의 안채로 사용하기 위해 고종 6년에 새로 지었다는 이로당(二老堂), 여성들의 공간으로 남성들의 출입을 삼가기 위한 미음()자 형태였다. 특이한 것은 이로당(二老堂)현판이다. 두이()가 묘하게 보통 이()보다 위로 치우쳐 있었다. 왕의 부모이기 때문이라 한다. 운현궁 전각에는 ‘노()’자가 많은 것이 신기했다. 대원군이 ‘노’자에 애착이 많았나보다. 실제로 대원군은 자신의 호()인 ‘석파(石破)’를 노석()이라 바꿔 썼다고 한다.

 

  운현궁은 노안당과 노락당, 이로당이 동서남북의 행각으로 연이어져 있었다. 이로당 정문을 나오니 운현궁의 유물들을 전시해 놓은 작은 전시관이 보였다. 당시의 생활상을 재현해 놓은 생활용품과 당시 복식을 입은 마네킹들이 서 있었다. 뒤돌아서려는데 무언가 서운했다. 이곳 어딘가에 ‘진채선’이 머물렀던 곳이 있었을 텐데. 찾아볼 수도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진채선은 전라도 고창출신의 최초 여자소리꾼이다. 판소리 대가인 동리(桐里) 신재효의 제자 겸 연인으로 고종당시, 흥선대원군이 경회루(慶會樓)에서 열린 경복궁(景福宮) 낙성연(成宴), 신재효는 진채선을 남복으로 분장시켜 자신이 만든 노래를 부르게 했다. 진채선은 흥선의 총애를 받아 흥선의 첩실로 운현궁에서 살았다고 했다. 신재효의 진채선에 대한 그리움으로 ‘도리화가(桃李花歌)’를 지어 그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고, 이 소식을 들은 진채선은 ‘추풍감별곡(秋風感別曲)’을 불러 스승에 대한 마음을 달랬다는 전설 같은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가 전해온다.

 

  권불십년(權不十年), 권력의 무상함을 생각하게 한다. 천하를 호령하던 권력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아들 며느리와 힘겨루기를 하던 흥선대원군, 아들을 왕위에 오르게 하기위한 부질없는 욕심도 영원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한 시대의 흥망성쇠,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며 ‘운현궁(雲峴宮)의 빛과 그림자.’를 보았다.

                                                                         (2019.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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