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티엔

2019.02.20 16:45

김효순 조회 수:3

비엔티엔 

  -라오스 여행기①-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김효순

 

 

 

 기해년 새해가 밝은 지 스무 날이 지났고 겨울이 절정에 이른 듯한 , 우리 부부는 따뜻한 남쪽나라로 떠나고자 짐을 꾸렸다. 물세탁해도 쉽게 마르는 재질로 된 여름 옷 서너 벌과 작은 골프백에다 꼭 필요한 골프채 몇 개만 담았다. 이번에는 라오스가 목적지다.

 라오스는 동남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가장 산업화가 더딘 나라라서 그곳에 가면 우리 어릴적 고향을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몇 해 전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곳이라서 진즉부터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과거로 향하는 시간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품고 올랐던 비행기는 대여섯 시간을 날아가서 라오스의 수도인 비엔티엔 왓따이 국제공항에 안착했다.  

 국내선 비행장도 겸하고 있는 이곳은 국제공항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아담한 규모의 공항이었다. 우리 동네에 있는 전라북도청의 로비가 연상되었다. 입국장을 나오니 예약해둔 호텔에서 마중 나온 기사가 대기하고 있어 귀빈이나 된 듯 흐뭇했다. 공항을 벗어난 자동차는 불과 10여 분만에 시내 중심가에 있는 「사바이디 앳 라오」호텔에 우리를 내려줬다.

 호텔의 겉모습은 그다지 화려하지 않았지만 객실 안은 깨끗했고, 구석구석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그곳에 묵는 동안 매일 아침식사 시간에는 참으로 여유롭고 품위 있는 식탁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느지막이 일어나서 내려가면 자그마한 실외 정원에 식탁이 마련되어 있었다. 푸른 나무 몇 그루가 공손한 하인처럼 서 있고, 작은 새들은 옹알이하는 손자들처럼 조잘거렸다. 벽면을 타고 내려오는 몇 줄기 인공폭포의 물소리는 시원했다. 붉은 꽃들은 우리와 눈이 마주치면 수줍게 웃었다.

 적당하게 간이 맞춰진 라오스 전통요리는 다른 나라 특유의 향내가 없어서 우리 입맛에 잘 맞았다. 한정식집에서 나오는 거창한 요리가 아니라 정갈한 백반집의 조촐한 음식상이라고나 할까? 서양음식코너에 놓인 싱싱한 열대 과일들과 각종 유제품, 갓 구운 식빵과 바케트 빵들이 딸기나 불루베리의 형태가 그대로 살아 있는 잼과 함께 진열되어 있었다.

 특히 겉은 노릿하고 바삭한데 속살은 촉촉한 바케트 빵의 맛은 정말 매력적이어서 손을 놓기가 아쉬웠다. 매번 식사가 끝난 다음에 또 다시 카푸치노 커피를 청하여 후식처럼 마시곤 했다. 이 나라의 절기상으로는 겨울이라는데 불어오는 아침 바람은 소슬해서 우리에게는 청량한 가을이었다. 그 바람은 추위를 피해 날아온 우리를 천상으로 안내하는 듯했다.  

 동네사람들처럼 슬리퍼를 끌고 슬슬 몇 걸음만 걸어가면 대통령 궁이었다. 라오스는 우리나라 전 국토의 두 배가 되는 땅에 700만 명 정도의 사람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런 나라에 걸맞는 소박한 대통령궁이었다. 닫힌 정문 앞을 지키는 경비병도 잘 보이지 않았다. 가끔씩 그 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이 눈에 띄었다.

 대통령궁 앞에 있는 국립박물관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크고 작은 불상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완전한 모습으로 또는 불완전한 신체로 모셔져 있어서 몹시 안타까웠다. 국민들 대부분이 불교신자인 나라답게 한 집 건너 한 집이 절집이었다. 처음에는 사원 마당 안으로 들어가서 정성껏 참배를 했는데 나중에는 스쳐지나가면서 눈길로만 경배를 드리곤 했다.

 해질녘에는 가끔 메콩강 강가로 나갔다. 그곳에 가면 하루 종일 라오스땅 비엔티엔에서 머물렀던 태양이 메콩강 너머 태국 땅으로 저무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한낮이면 자동차들이 씽씽 달리던 강변도로는 야시장으로 변신해서 불야성을 이룬다. 음식점과 생활용품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게 들어서니 먼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뿐만 아니라 더위가 가시기를 기다리다가 쏟아져 나오는 라오스사람들까지 그곳에 운집한다.

 강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면 다른 나라, 태국땅이란다. 다리 입구에서 간단하게 입국심사를 거치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고 한다. 유럽을 여행할 때 자동차들이 국경을 넘나들며 달리던 모습에서 느껴지던 묘한 그 기분이 다시 떠올랐다. 북쪽으로 가는 길에는 거대한 장벽을 쌓아서 막아놓았고 나머지 세 방면은 바다가 둘러싸고 있는 우리나라를 생각하자니 마치 감옥에라도 갇힌 듯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제 막 첫 삽을 뜨고 있는 남북철도를 잇는 과업이 이루어져서 그 철로를 달리는 기차로 유럽까지 가는 그날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그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지는 날이 하루빨리 오게 해 달라’고. 이제 사과 알만큼 자그마해진 해를 향해 두 손을 모았다.                                                                         

                                            (2019.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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