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고향, 안골

2019.02.23 05:00

김학철 조회 수:4

 잃어버린 고향, 안골

 

                                     전주안골은빛수필문학회 김학철

 

                                                              

 

  우지끈 뚝딱, , 공룡 같은 무지막지한 굴삭기는 둔탁한 굉음을 내며 내가 태어나고 70여 년간 살아온 정든 고향집을 무참히 부숴 버렸다. 대문 옆의 살구나무, 뒤란의 감나무, 가죽나무도 뿌리째 뽑혀 나갔다. 이렇듯 ‘새터’ 마을 30여 호와 바로 이웃마을인 안골’40여 호의 초가집, 기와집, 슬레이트집과 수목樹木들도 모두 사라졌다.

  그뿐이 아니다. 지형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어렸을 때 놀던 앞산과 뒷동산은 없어지고 마을 앞 S자형 실개천도 흙으로 메워졌다. 우리 집 뒤의 포도나무밭과 배, 복숭아과수원도 원래 야산을 개간하여 만들었는지 지대가 높았는데 이곳도 불도저와 덤프트럭으로 깎아내어 평탄하게 만들었다. 그 뒤 4차선도로와 소방도로가 개설되고, 각종 용지로 나뉘어졌다. 이른바 30여 년 전 시행된‘안골지구 구역정리 사업’은 2년 간에 걸쳐 밤낮으로 지겹게 내지르던 중장비의 엔진소리도 마침내 멈추었다. 동네이름도 새터마을과 안골마을을 합하여‘안골’부락이라 부르게 된 것이 이때부터다.‘새터’라는 내 고향 마을이름은 영영 사라지게 된 것이다

  개발이라는 이름의 이 사업은 졸지에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옛날 땅과 집 모습만 사라진 것이 아니다. 공사 뒤 몇 년간은 황량한 공지로 남아있더니 차츰 건물을 짓기 시작, 마침내 아파트 단지, 상가빌딩, 개인주택 등 콘크리트 건물로 꽉 들어차게 되었다. 그뿐이랴. 사람도 바꿔 놓았다. 정들었던 동네사람들은 개발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일찌감치 하나둘씩 이삿짐을 싸기 시작하더니 공사 날짜가 가까워 옴에 따라 모두 각자 삶의 터전을 찾아 전국 각처로 뿔뿔히 흩어지고 대신 새건물이 지어지기 시작하면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낯선 사람들로 가득 채워진 것이다

  더 이상 안골은 내 고향이랄 수 없게 되었다. 졸지에 고향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것은 분명 슬픈 추억임에 틀림없다. 나와 원래 넓은 과수원을 갖고 있던 유씨 2명만이 환지받은 안골 땅에 자그마한 건물을 지어 동네에서 그대로 살고 있던 중 그나마 유씨들 마저도 각각 개인사정으로 건물을 팔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 결국 나 혼자만 홀로 남아 고향을  지키고 있는 셈이다

 

  개발이전에는 이 마을이 30여 세대로 영세농가가 대부분이고, 나머지 7세대는 부채(합죽선)를 만드는 수공업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다들 넉넉지는 않았지만 정답게 오순도순 살아가는 순박한 사람들이었다. 울타리 너머로 이웃 간에 돌떡이나 제사음식을 나눠먹던 일 등은 이젠 전설같은 이야기가 된 지 오래이고, 이웃간에도 서로 모르고 지내는 세상이 되었다.   

  어렸을 때 동갑친구 5명 중 2명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한 명은 완주 고산으로 이사한 뒤 소식도 모르며, 또 한 사람은 부산에서 살고있다는데 역시 연락두절이다. 또 나머지 한 사람은 서울로 이거하여 철물점을 경영한다고 들었다. 이제는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고 대화할 상대도 없다.  

  안골 사거리에 서서 보면 옛날에는 상상도 못했던 잘 포장된 넓은 교차로로 부쩍 늘어난 차량들이 물결치고 수많은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다풍요 속의 빈곤이랄까. 나는 가슴 깊이 밀려드는 외로움과 적막감에 휩싸인다. 무인도에서 혼자 살았다는 로빈슨 크루소의 심정이 이랬을까?  

                                                                                   

  나는 해마다 명절 무렵, 조상묘소 성묘차 무주에 간다. 묘소는 무주읍에서 시오리쯤 떨어진 변두리인 당산리의 뒷산 너머 두메산골에 있는데 이 당산리마을은 옛날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명절이 돌아오면 서울, 부산, 대전 등 대도시에 나가 살고있는 아들딸들이 손자 손녀를 데리고 고향에 다니러 온다. 이때 대문 밖에서 기다리던 늙은 부모님을 반갑게 만나고 고향의 어른들과 지인들을 찾아 다니며 문안인사를 한다.

  또 무주를 오갈 때면 어김없이 진안 상전면을 지나게 되는데 그 초등학교 운동장에서는 용담댐 건설로 전국에 흩어져 사는 수몰민들을 초청하여 현지 주민과 함께 해마다 체육대회를 열고 있다. 몇 년 전 부터는 7~80대 이상의 고령자가 많아졌기 때문에 ‘화합 한마당’이라고 명칭도 바꾸고, 옛날의 구기대회 대신 제기차기, 윷놀이, 줄넘기, 고리걸기, 항아리에 고리 던져 넣기 등 민속경기 위주로 놀이를 한다. 우천 시에는 실내에서 노래자랑을 한다. 이 때 술과 음식을 먹으며 역시 끈끈한 정을 나눈다. 옛날에는 허투루 보던 일들이 언제부터인가 눈여겨 보는 습관이 생겼다. 이런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사람은 돈만 가지고 사는 동물이 아니라 정으로 사는 동물이다.’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이런 모습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 때마다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 뜻밖의 전화가 서울에서 걸려 왔다. 그 사람은 사라진 고향 바로 옆집에서 30여 세까지 살다가 35년 전 서울로 이거, 세운상가에서 전자제품 도소매상을 경영, 큰 성공을 한 5년 선배인 친형 친구였다. 어렸을 때 우리집에 자주 놀러와 나는 그분을 친형처럼 잘 따랐었다. 그는 과거 안골에서 살다가 수도권으로 이사 간 고향사람 일곱명과 친목계를 조직, 그간 몇 번 모임을 가졌다고 한다. 알고보니 그 계원들은 모두 우리 마을에서 오랜 세월 같이 살던 친숙한 분들이었다. 특히 수년간 동네 사랑방이 된 우리 집 행랑채에서 놀던 이들이었다. 그런데 나의 친형이 서울로 이사갔다는 말을 어디서 들었는지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형에게 친형의 연락처를 알려줌은 물론 반가운 나머지 장시간에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로부터 1년 뒤, 그 형으로부터 추석을 맞아 자기 조상성묘차 전주에 온다는 연락을 받고 전주역에  나가 기다리다 그 형과 만났다. 실로 35년 만에 상봉하는 극적 순간이었다. 너무나 반가웠다. 옛날보다 많이 늙었는데 원래 구부정한 체격에 키도 크고 얼굴형태는 젊었을 때 매부리코 그대로여서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와 함께 ‘안골’로 와서 이곳은 원래 우리 집 자리, 그 옆은 형 집터라고 알려 주었다. 그곳은 이미 상가아파트가 지어진 곳이다. 그밖에 여러  곳을 설명해 주었더니 그는 35년 전의 일을 회상하며 그때와 너무도 달라진 현재의 모습에 도무지 뭐가 뭔지 모르겠다며 놀라는 표정이었다. 자기 혼자 왔더라면 이곳 ‘안골’조차도 찾아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성묘를 마치고 다음날 아쉬운 작별을 하면서 나는 그 형에게 말했다. 내가 초대하니 내년 추석 무렵에는 서울에 있는 계원(고향사람) 일곱명과 같이 이곳 고향‘안골’로 와보시라고…. 나의 이 말에 그 형은 반색하며 좋다고 했다. 회원들과 함께 일종의‘고향 방문단’으로 이곳에 와서 상봉할 것을 약속하고 서울로 돌아갔다.

  나는 지금 그 고향 방문단과 해후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만나면 3~40년 간 보지 못했던 고향 사람들의 얼굴도 보게 될 것이다. 그 모습이 어떻게 변했을까, 자못 궁금해진다. 만나면 당연히 그들과 함께 이곳 안골지역을 한 바퀴 돌면서 우리의 오랜 삶의 둥지가 있었던 옛날을 회상하며 추억에 잠길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이 분들과 함께 회포를 풀면서 그간 잃어버렸던 고향을 일시적으로나마 되찾게 되리라. 푸짐한 고향의 맛과 정성이 담긴 음식과 술을 나누며 우리의 이야기는 밤을 새우면서도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2019.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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