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로쇠야유회

2019.02.24 18:37

곽창선 조회 수:6

쇠야유회

    신아문예대학 수필 창작 수요반 곽창선

 

 

 

 TV에 소개되는 오동도 동백은 오늘 따라 유난히 붉다. 바다 향을 전하려는 듯 노란 혀끝을 더 길게 내밀어 요염하게 보인다. 꽃잎에 맺힌 이슬 대롱대롱 흘러내리는 모습이 참 신기하다. 어찌나 촬영기술이 좋은지 직접 보는 것보다 더 아름답다. 머지않아 섬진강 변 매화, 구례 산수유도 부풀어 오른 가슴을 활짝 열고 우리를 부를 것이다. 겨우내 웅크린 몸을 추스르며 하늘빛 이 온화해지기만 기다리는데, 아침방송을 보니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종 종 운동이나 글쓰는 일에 열중해 보지만, 다람쥐 쳇바퀴 돌리 듯, 반복되는 일상생활에 무언가 쫒기는 듯 가슴이 답답하다. 겨우내 스트레스 탓인가? 혹여 봄의 길목에서 불어오는 바람끼인가? 봄은 여자의 계절이라 하는데 남자인 내게도?  

 

 아내는 밖에 다녀온다며 나갔으니 늦을 것이다. 이제 혼밥이 익숙해져 반찬 한두 가지에 젓갈류만 있으면 식사는 채 5분도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혼자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려 거실에서 청소기를 돌리고, 책장도 정리하며 밖을 보니 비가 내린다. 초목을 깨우는 비 같다. 숨죽이며 해동을 가다리던 초목들, 잎새가 봉곳하게 기지개 펴는 모습이 보고 싶다. 야외로 나가면 기분 전환도 할 겸 정신 건강에도 좋은 시절이다. 혼자만의 생각이라서 아내를 기다렸다. 아내가 오늘 따라 더 늦은 것 같다. 느긋하게 기다리지 못하고 전화기 버튼을 눌렀다.

 

 거실에 들어서는 아내의 표정이 밝다. 신발을 벗자마자 내 팔을 끌고 쇼파에 앉는다. 주말에 친구 가족들과 운장산 고로쇠 축제에 다녀오려고 한다며 내 의향을 물었다. 기다렸다는 듯 찬성했다. 나는 바닷바람이 그리웠지만 다른 가족들의 결정이라니 어쩌지 못했다. 꿩 대신 닭이라고는데 어디면 어쩌랴. 모든 준비 및 계획은 마당발 B여사가 맡아서 한다니 걱정을 말라고 했다.    

 

 운장산 고로쇠는 충남 일대에 명성이 높고 약효도 좋다고 알려 졌다. 원래 골리수骨利樹라고 하며 밤낮의 기온차가 10-13C2월말 3월 초순이 호기로 칼슘과 마그네슘, 무기질이 풍부해서 뼈와 피부 미용에 이롭고, 숙취해소와 관절염에도 약효가 있다고 알려 졌다.

 밤이 되면 낮은 기온으로 수축작용을 일으켜 땅속의 수분을 저장하려는 힘이 작용하고, 낮에는 기온이 오르면서 잎을 피우려고 수분을 분출해 올린다. 통로(물줄기)인 수피를 드릴로 뚫어 높은 산에서부터 낮은 곳으로 PVC 관을 연결해서 드럼통에 모아 용기에 담아 판매한다. 3월 중순경부터 채취가 끝나고 통로를 코르크마개로 잘 막아 두었다 이듬해 다시 활용한다. 한때 유독 몸에 좋다며 곰쓸개에 주사기로 산 곰의 쓸개즙을 팔다 지탄을 받은 일이 있다.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방법이다. 전국에 고루 산재되어 있으며 잎이 마치 개구리 발처럼 5개로 갈라져 특이한 모양이다. 단풍철엔 고운 자태로 산야를 아름답게 물들인다.

 

 이번 주말(23)이 디데이라고 알려 왔다. 벤에 6명이 타고 아파트 숲을 벗어나 곰티재휴게소에서 간단히 간식을 들었다. 화창한 날씨에 공기가 맑고 음이온 탓인지 상쾌한 기분이 감돌았다. 부귀 옆 운장산 길을 따라 아담하게 가꾸어진 무릉도원을 찾아가는 기분으로 달렸다. 유유자적하게 흐르는 물길에 휩싸인 산골은 봄기운에 마냥 청량했다. 목적지 운일암반일암은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여 하루 종일 반은 구름에 싸이고 반은 햇빛이 든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여름철에 선호하는 피서지다. 좁고 험하던 자갈길은 2차선으로 포장되고 넓은 주차장은 많은 차들로 만원을 이뤘다. 벌써 상인들이 준비한 천막 속에서는 여기저기서 고로쇠를 마시며 즐겁게 어울리는 소리가 한창이다.

 

 광장 한 편 천막에 B여사가 1.8L터 한 통을 구해 온 고로수를 마시기 시작했다. 몸에 좋다면 뒤지지 않는 우리네고 보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마셨다. ‘우리 신랑도 챙겨야 한다'는 새침떼기 K여사의 넋두리에 모두 크게 한바탕 웃었다. 찌들었던 삶의 찌꺼기가 날아간 듯 넉넉한 모습들이다. 잠시 뒤 화장실을 들낙거리기에 여념이 없다. 비우고 채우기를 거듭하다, 잠시 쉬려고 냇가로 나갔다. 전망대 밑 아담하던 소나무가 훌쩍 자랐다. 소나무 밑에 숨겨둔 추억이 떠올라 그저 피식 웃고 말았다.

 

 이런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며 B여사가 분위기를 휘어잡는다. 흑돼지 구이에 막걸리를 곁들이니 더 없는 별미다. 정겨운 지인들과 마음의 잔을 비우니 술이 술을 부른다. 부담 없는 여인네들 시중 속에 마음 편히 마시니 오랜 만에 느껴보는 룸싸롱 기분이다.

 

 마무리는 고로쇠로 하자며 “제 잔 한 잔 받으시오!” 얼큰한 B여사가 잔을 건넨다. 바닥을 보이는 수액 한 컵 한 컵에 마음 조리는지 한 잔이라도 더 자기 남편을 챙기려는 아내들의 모습이 보기에 싫지만은 않았다. 흥이 오른 여인들은 3월에 섬진강 변, 꽃구경을 가자고 이구동성으로 합창을 했다. 이제 패권은 여자에게 넘어 갔으니 반대할 수도 돌릴 수도 없는 처지다. 그저 비위만 거슬리지 않으면 될 일이다.

 

 대불리 운장산 바로 밑 쉼터에서 고로쇠를 구하여 차에 실었다. 이 지역은 수복된 뒤에도 빨치산이 준동한 험한 지역이다. 동상 저수지를 지나 위봉폭포에 이르니 물줄기가 힘차게 뻗어 내렸다. 며칠 전 내린 비 탓이다. 취기가 가시니 갈증이 났다. 위봉사에서 약수 한 바가지에 마른 목을 축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변해가는 절은 새 기운이 돋는 듯 활기가 넘친다. 몇 년 전 초라했던 모습은 간데없이 완전히 탈바꿈 된 모습이다.

 

 오늘 분위기에 만족하는 듯 여인들의 억양이 나긋나긋 해졌다. 분위기가 환경을 바꾸어 주는가 보다. 즐거워하는 여인들의 수다 속에 남성들도 덩달아 들떠 보였다. 누구랄 것 없이 모두 불만이 없어 보였다. B여사 선창에 따라 목청을 가다듬으면서 송광사를 지나 용진 봉서산기슭의 봉서사로 왔다. 이 고장의 선각자이신 진묵대사가 창건했다는 천년도량이다. 산세는 의연하나 고풍스런 위용은 사라지고 법적다툼 중인 듯 가압류 딱지가 더덕더덕하게 붙어 있었다. 이곳저곳 통제된 길들이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뒤편 우물가에서 눈 감고 마음에 소원을 빌며 구슬픈 산새 소리에 발길을 돌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오늘 만 같으면 좋겠다고 한다. 서로 서로 손을 맞잡고 웃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종종 여인네 마음에 신선한 바람을 쏘여 줄 일이다. B여사의 “언제나 오늘처럼!”이란 선창에 화답하며 즐거운 고로쇠야유회는 막을 내렸다.

                                                                      (2019.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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