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 가는 길 멈출 수 없다

2019.03.11 16:01

김태희 조회 수:48

평화로 가는 길 멈출 수 없다
김 태 희 (다산연구소 소장)

  하노이. 지난 제2차 북·미 회담 장소였다. 이 사실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했다. 베트남과 우리나라는 비교거리가 많다. 중국 대륙에서 볼 때, 베트남은 남쪽에, 우리나라는 동쪽에 위치한 오랑캐였다. 다만 우리나라는 대륙 질서에 비교적 순응적이고 적극적이었는데 반해, 베트남은 저항적이고 독립적이었다. 베트남은 대륙 지배에 저항하면서 새 왕조가 들어서곤 했으며, 명나라와 청나라의 침략도 물리쳤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지배를 받았을 때, 베트남도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1862). 우리나라는 서구 열강의 하나인 프랑스의 공격을 물리쳤지만(1866, 병인양요), 대신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를 재빠르게 답습한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되었다.

지정학적으로 비슷하면서도 엇갈린 운명

  2차 대전 후 베트남과 우리나라는 각각 분단되어 냉전의 최전선이 되었다. 북한은 미국과 전쟁을 종료하지 못한 채 휴전했고, 북베트남 하노이 정권은 미국을 물리쳤다. 통일된 베트남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1986년 ‘도이 머이’ 정책으로 개혁과 개방에 나섰으며, 적국이던 미국과 교역하며 세계의 일원이 되었다.

  하노이에서 한반도 평화체제가 합의되었다면 참으로 흥미로운 역사적 성취가 되었을 것이다. 역사적 은원을 과거지사로 넘기고, 자칭 문명국과 타칭 오랑캐들이 어울리며, 강대국 사이에 약소국이 당당하게 어울려 사는 모습을 연출할 수 있었다. 미국 중심, 양극 또는 다극 체제를 생각해보며, 국제질서에 관한 많은 상상력을 자극할 만했다.

  그러나 아직 때가 아녔던 모양이다. 왜 기대했던 회담은 빈손으로 끝났는가. 회담 후 뒤늦게 열린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첫째 요구 사항의 불일치다. 미국의 요구는 영변 폐쇄 플러스 알파였고, 그 알파에 북한이 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이 요구한 제재 완화는 북한은 일부라고 주장했지만, 미국이 보기엔 사실상 전부의 양보로 인식되었다. 북한은 단계적으로 접근하고(이른바 스몰딜), 미국은 일괄타결(이른바 빅딜)을 목표로 삼았으며, 이 차이를 담판으로 해결하지 못한 것이다.

  회담 무산의 또 하나의 원인은 트럼프 대통령도 불만을 토로했던 국내 요인이다. 하필 그 시간에 마이클 코언의 청문회가 열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에 불만을 품고 북한과의 회담에 불만을 품은 여론이 미국에는 있다. 이러한 부정적 여론을 잠재울 정도의 성과가 아니라면 어중간한 합의가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비록 2차 정상회담의 결과는 실망스럽지만 여기까지 온 것도 대단하다. 2017년 북의 핵과 장거리탄도미사일 개발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극에 달했다. 그러나 2018년 들어와 김정은 위원장은 이를 지렛대로 협상을 제안했다. 북의 요구사항은 안전보장이었다. 그리고 제재를 완화해주면 핵을 버리고 경제 발전에 매진하겠다는 것이다. 남북 분위기에 화해의 전기가 마련되었다. 북과 미의 정상이 우호적인 회담을 가진 것은 역사적으로 큰 진전이었다.

  회담 무산 후 양쪽의 태도는 대화 분위기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군사훈련 축소를 기정사실로 했다. 김정은 위원장도 회담 후 대내 공식 발언 기회를 통해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보다 더 절박한 혁명 임무는 없다”고 한 데서 대화의 기조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실질적 진전이 없으면 동력이 빠질 우려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결과 현상유지에 만족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마음이 다급할 수 있다. 이제까지 추진해온 진전을 섣불리 원점으로 돌리진 않겠지만, 더 이상 진전이 없다 보면 다른 돌발 변수에 동요할 수 있다. 평화를 구축하기는 더디고 힘들어도 파괴하기는 쉽다.

무엇보다 남과 북 평범한 주민들의 안녕을 위해

  그냥 시간이 흐르게 해서는 안 된다. 그동안 활약이 컸던 문재인 정부의 역할이 다시 주목된다. 그러나 당장 가시적 성과에 집착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미국 내 부정적 여론과 그 메카니즘 등을 포함하여 그간의 과정을 찬찬히 복기해 보아야 한다. 대화 기조를 유지하고 지속시키면서, 걸림돌을 우회하거나 극복하여 상황을 진전시킬 수 있도록 창의적인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더 많은 자율성과 옵션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과 북 평범한 주민들의 안녕이다.

  지난 해 봄에 베트남 다낭에 갔었다. 인기 있는 카페의 벽을 장식한 사진이 옛 군복차림이었다. 서빙하는 젊은이도 같은 패션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추억거리 내지 장식용 패션이 되어 있었다. 격세지감이었다. 우리는 언제 대동강변 카페에서 평화스럽게 커피를 마시며 분단의 상처를 추억으로 돌아볼 수 있을까.

▶ 글쓴이의 다른 글 읽기
글쓴이 / 김 태 희
· 다산연구소 소장

· 저서
〈정약용, 슈퍼 히어로가 되다〉 (2016)
〈정조의 통합정치에 관한 연구〉 (2012)
〈다산, 조선의 새 길을 열다〉 (공저, 2011)
〈왜 광해군은 억울해했을까?〉 (2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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