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봄 밥차

2019.03.21 15:41

정남숙 조회 수:4

 봄봄 밥차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정남숙

 

 

 

 

  “지역사회에 그리스도의 문화를 제공하게 하소서!” 라는 우리교회 선교비전 중 하나인, 청소년 대상의 비영리민간단체인 ‘청소년열매나눔공동체’ 봄봄을, 2018년 상반기부터 개설했다. 청소년 성품 및 각종 캠프활동을 통하여 나눔과 배려, 체험을 통한 지역사회 섬김과 봉사활동을 교육하기 위한 ‘좋은성품 리더쉽’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길 위의 청소년에게 무료급식 나눔’을 실천하는 ‘봄봄 밥차’가 매주 토요일 길거리로 찾아가고 있다.  

 

 나는 무료 밥차인 ‘봄봄 밥차’가 어디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청소년들이 체험하는 나눔실천행사이니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봄을 코앞에 두고 찬바람이 오락가락하며 추위가 물러날듯 말듯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던 어느 날, 청소년 사역 목사님이 ‘봄봄 밥차’ 운영상 애로사항을 말하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청년 한 사람과 본인, 단 두 사람이 수고를 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기회만 있으면 도와주고 싶었고 생색내기 좋아하는 나는, 이 때다 싶어 곧바로 내가 도울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자동차가 있으니 짐을 실어 나르거나 심부름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괜히 늙은이가 주책없이 아무 일이나 상관하고 나서는 꼴불견을 보이지 않으려고 참고 있던 내 오지랖에 발동이 걸린 것이다.

 

 무료급식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과 단체가 있다. ‘밥 퍼 목사'로 잘 알려진 최일도 목사와 ‘다일 공동체’다. 1997년 말 우리나라에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많은 노숙자들이 생겨나 사회문제가 되고 있었다. 1988년 청량리 허름한 창고 건물에 교회간판을 걸고,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추구한다는 의미로 다일공동체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청량리 빈민가 굴다리에서 점심 무료 밥집을 여는 것으로 유명한 ‘다일공동체’는 성경에서 이름을 따 '오병이어의 거리'라고 불렸다. 이곳에서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매일 굶주림으로 고통 받는 행려자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민 대표적 개신교 선교단체다. 19881월 ‘라면 퍼’가 원조라 하며, 2017년까지 천만 그릇의 밥 퍼를 제공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IMF 경제위기 이전에도 노숙자는 존재했지만 분산되거나 격리되어 있어서 일반인의 관심거리가 되지 않았다. 밥퍼 목사가 밥퍼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우연히 청량리역 앞에서 걸식노인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진지를 드셨느냐 물어봤더니 손가락 넷을 펴 보여, 네 끼를 굶었느냐 물었는데 나흘을 굶었노라 대답하던 노인에게 설렁탕을 대접하면서부터라고 한다. 무료 전철을 이용 모여들기 좋은 청량리 일대에, 수백 명의 행려자, 노숙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독일 유학을 포기하고 밥 퍼를 시작했다. 버너와 코펠을 들고 이들에게 라면을 끓여주기 시작한 그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이들에게 제공한 것은 밥뿐이 아닌 그 이상의 따뜻한 사랑이었을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돌볼 여력이 없었던 시절, 88올림픽 이후에 조금씩 나눔 문화가 인식되기 시작했다. 민간단체들이 생겨났고, 십시일반 동참하는 이들이 생겨나, 밥 퍼 장소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무료급식소가 하나둘씩 생겨나며 기부문화가 싹트기 시작했다. 청량리에서 처음 나눔이 출발했고 전국으로 퍼진 것이다. 나눔 운동들이 일반화되어갈 즈음, 내가 거주하던 지역에서 내가 이끄는 단체가 제일 먼저 각 경로당을 순회하며 소외된 어르신들에게 떡국을 대접해 드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파트 경로당에서 작게 시작했지만, 지자체와 다른 민간단체, 뜻있는 개인들까지 동참하는 이들이 모여 점점 규모가 커지고 있었다. 우리회원들은 몸은 비록 힘들어 녹초가 되었지만 “고맙다. 잘 먹었다”는 인사를 받았을 때, 피로는 물렀거라 마음만은 신나고 즐거움으로 그 일을 감당하곤 했었다.

 

  처음으로 봄봄 밥차에 나가려는데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잔뜩 싸매고 이웃 지인을 불러 동행했다. 벌써 봄봄 밥차는 세팅을 마치고 지나다니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서빙하는 친구들이 많아 내가 할 일은 없었다. 밥차 현장에 나와 봉사하면 봉사점수를 취득할 수 있다고 한다. 날씨가 갑자기 추우니 행인들도 없다. 어쩌다 지나는 사람에게 도시락 김밥 등을 한 아름씩 안겨 주었다. 나는 전시효과를 보여주기 위해 현장에서 도시락을 데워달라 했다. 전자랜지와 커피포터가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 추워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삼각김밥을 억지로 뜯으니 밥알이 쏟아지고 만다. 삼각김밥 뜯는 법이 따로 있었다. 1,2,3 번호 순서대로 뜯으니 예쁜 삼각 김밥이 자태를 선보였다.

 

  ‘봄봄 밥차’에서 나눠주는 것은, 현장에서 요리해 나눠주는 밥이 아니다. 속칭 편의점 도시락이다. 메뉴는 각종 도시락과 김밥 밥버거 등이다. 도시락은 쌀밥 외에 반찬이 6~7가지가 들어있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오리고기. 햄과 소시지, 계란말이, 샐러드, 김치 등 다양하다. 밥도 흰 쌀밥 외에 잡곡밥과 카레 김치볶음밥 등이다. 지나다니는 행인이 없으니 한사람에게 몇 인분씩 나눠주었다. 우리도 5인분을 가지고 왔다. 집으로 오는 길에 3집에 하나씩 나눠주고 2개를 들고 집으로 왔다. 이 도시락으로 말할 것 같으면 대형마트나 24시 편의점에 자리하고 4.000~4.500원에 판매되던 것들이다. 유통기한이 지나면 퇴출되어야 하는 신세가 되어, 버리는 것도 쓰레기가 되어 환경오염이라는 누명을 뒤집어 써야할 운명에 처하게 된다. 그러니 유통기한 1~2일 전에 반납되어 푸드뱅커에 모여, 무료 밥차를 이용하여 소비하고 있었다.

 

 며느리와 전화 통화중에 밥차 도시락 얘기를 들려주었다. 처음 먹어본 도시락이 신기하고 “맛이 있더라.”하니, 며느리는 “미안해요”, “어머니 신 나셨겠네요.” 했다. 지네들도 가끔 도시락을 사먹었는데 나에게는 한 번도 도시락 맛을 보이지 못했다며 미안해 했다. 또 한편으로는 나눠주기 좋아하는 내가 얼마니 신이 나서, 나눠주었을까 알기 때문이다.

 매주 토요일을 기다리고 있다.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요즘 날씨가 풀어지니 왕래하는 사람들도 많다. 항상 그 시간 그 장소에 가면 도시락을 먹을 수 있다는 소문이 퍼졌나 보다. 이제는 조금만 늦어도 줄을 서야하고, 도시락은 품절되고 만다. 김밥만 가져올 수밖에 없다. 공짜는 먹는 사람이나 나눠주는 이 모두가 신나는 일이지만, 생산자나 판매하는 상가의 입장을 생각하면 수입이 줄거나 기업이 도산하지 않을까 한 편으로는 염려도 된다.

 

  TV에 나오는 우리나라 3대 기타리스트 중 하나인 김도균씨가 평생 편의점 도시락을 먹고 살았다고 한다. 지금까지 편의점을 이용한 금액이 1억이 넘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별로 믿기지 않았었다. 그런데 요즘 ‘봄봄 밥차’ 도시락을 맛 본 뒤 내 생각도 달라졌다. 편의점에 들려 사 먹을 기회는 없을 테지만, 편의점 도시락에 대한 인식은 달라졌기 때문이다. 비록 유통기한이 빠듯해 바로 소비되어야할 도시락이지만 한 사람이라도 한 끼의 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눠주며 봉사하는 청소년들에게 수고의 보람도 가질 수 있도록 응원을 해주고 싶다.  

                                                     (2019.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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