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지 않을 권리

2019.03.21 16:10

전용창 조회 수:6

상처받지 않을 권리

꽃밭정이수필문학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전 용 창

 

 

 

 

  한국의 어머니상이라며 국민배우로 사랑받은 배우 김혜자는 그의 체험기 <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에서 어릴 적 딸아이와의 이야기를 전한다.

‘어느 날, 6살 된 딸아이가 종이에 열심히 그림을 그리다가 느닷없이 이상한 질문을 하였습니다. 엄마, 그때 왜 내 엉덩이를 때렸어? 웬만해서는 아이를 때려본 적이 없는데 갑자기 아이가 이런 질문을 해서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언제 엄마가 때렸냐고 물으니까, 자기가 애기였을 때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곰곰 생각해 보니 말도 잘하기 전인 이제 막 걸음마를 하던 그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 딸아이의 엉덩이를 때리며 혼낸 적이 있는데 6살 된 아이가 그때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엄마가 미안해. 그때 엉덩이를 때려서 미안해. 아팠겠구나. 미안해.

 “응~ 이제 괜찮아~

하며 아이가 웃었다고 한다.

 

 어린아이도 자신이 받은 상처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데 하물며 어른들은 어떠할까? 어느 날

 “자네 전화했는데도 안 받데.

전화기 속의 목소리는 평소 존경하는 분의 목소리였다. 순간 나는 당황했고, 하루 종일의 피로가 몰려왔다.

 “일 나갔다가 이제 막 집에 들어왔어요. 전화기를 차속에 두어서 못 받았나 봅니다.

 내가 일하는 동안 전화기를 차속에 두었는데 오해를 한 것이다. 또 한 번은 친구의 발신번호가 찍혀 있길래 통화를 하니

 “왜 전화를 안 받냐?

고 호통 섞인 목소리였다. 간밤에 아들이 아파서 병간호하느라 잠을 설쳐서 늦잠을 잤는가 보다며 급한 일이 있으면 메모라도 남기지 그랬냐고 반문하니

 “그냥 별 것은 아니고….

라며 싱겁게 말꼬리를 흐렸다. 상대방이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은 생각지도 않고 모두가 자기중심이다. 촌각을 다툴만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전화기가 없던 시절에도 불평 없이 살아왔는데 문명이란 게 오히려 사람을 구속시키고 마음의 상처를 주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언젠가는 대학교수인 선배를 만나서 식사를 할 때였다. 나는 생선탕을 들고 싶었으나 선배는 초밥을 들자고 했다. 내가 양보하고 초밥을 시켰다. 우리는 식사 중에 서로의 관심사를 주고 받았다. 그런데 그는 아름다운 우리말이 있는데도 대화중에 어찌나 영어단어가 섞여서 나오는지 식욕마저 달아났다. 그러다가 나도 화가 나서 ‘대학교 영역’이라고 하면 될 것을 ‘Campus Boundary’를 한다는 게 악센트가 들어가서 ‘Campus Poundary’로 발음을 한 것이다. 그랬더니 그는 즉각 “이 사람아 ‘Boundary’로 발음해야지, Poundary’로 발음하는가?”라며 질타했다. 나도 뒤질세라 “초장을 많이 먹었더니 발음이 세게 나왔나 봅니다.”라고 응수했다. 그날의 점심 식사는 초치고 말았다.

 

  오늘은 가뭄 끝에 봄비가 온다는 반가운 기상예보가 있었다. 비가 오면 술 생각이 나서 나에게 전화를 하던 옛 친구가 갑자기 생각났다. 아마도 만난 지 일 년가까이 된 듯싶었다. 그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저녁을 살 테니 이웃에 사는 S친구랑 같이 오라고 했다. 한 때는 그도 중형차를 몰며 잘 나가는 회사 대표이기도 했지만 회사가 부도난 뒤 지금은 조용한 시내 외곽에 살고 있다. 이제는 내가 술을 안 하니 대작할 수가 없어서 그도 잘 아는 또 다른 H 친구를 불러서 함께 갔다. 나는 함께 간 H에게 친구들 만나면 즐거운 이야기만 하자고 차속에서 주문했다. 혹여 박식한 그가 너무 유식한 척하여 상대방 친구에게 상처를 줄까 염려가 되어서였다. 그의 집이 가까운 어느 식당에서 만났다.

 

  우리 넷은 술잔을 부딪치며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고기 안주에 소주를 좋아했던 나의 절친인 K 친구는 내일 새벽같이 장수 쪽 현장에 감독을 나가야 한다며 술을 조심했다. 이제는 편히 쉬어야 할 나이인데 아직도 새벽같이 활동을 해야 하는 친구가 안쓰러웠다. 공직에서 정년을 했으면 노후가 편안할 것을 부당한 인사발령에 사표를 내고 사업을 한 게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몇 년 전 인천에서 교편생활을 하다 퇴직한 뒤 귀농한 S 친구는 어느새 이곳 생활에 잘 적응하여 색소폰도 배우고, 부부간에 서예공부도 한다고 하여 참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다.

 

 식사를 마친 뒤 H가 차 한 잔 하고 헤어지자고 하여 우리는 근처 시골 커피숍에 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나는 상처를 받았다. 얘기 도중에 나도 걱정거리가 있다며 아들 얘기를 꺼냈다. 대학을 졸업한 지가 3년이나 된 막내가 아직도 직장을 못 잡아서 걱정이라고 했다. 이제 아들의 나이도 서른두 살이나 되는데 교통사고로 인한 외상이 심해 병역이 면제된 게 면접에서 불리하게 작용하여 몇 번 낙방을 하더니 이제는 아예 손에서 책을 놓았다고 했다. 빨리 취직하여 결혼도 시켜야 내가 책임을 벗는다는 얘기를 하니 S 친구는 이제 서른두 살이면 아직도 한창이라고 했다. 그럼 몇 살까지 취직을 해야 한 단 말인가? 걱정이 많겠다고 하면 될 것을…. 나는 그 친구의 자녀들이 나처럼 힘들 때 위로해 주었는데 말이다.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그는 나에게 집안 안부를 묻는다고 “아주머니는 잘 있어?”했다. 말 한마디에 상처 받으니 또 다시 고깝게 들리린다. ‘안식구’라고 하던지 '00 엄마'라 부르면 될 것이지 뜬금없이 시골 동네 ‘아주머니’라는 표현을 할 게 뭐람? 평범한 시골사람이면 이해가 가지만 그는 한문선생으로 교직을 마쳤으니 ‘사자소학’ 정도는 익히 알고 있었을 텐데. 아는 것과 행함이 다르면 어찌 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옛 선조들은 언어의 소중함을 깨닫고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고, 잘못하는 말에 대해서는 ‘농담으로 한 말이라도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고,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죽는다.’는 뜻으로 ‘농가상인 弄假傷人’이라는 사자성어로 대변하지 않았는가?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인격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상처받지 않을 권리도 있다. 말 한마디가 상대방을 기쁘게 해주고 마음의 상처도 치유할 수 있는데 왜 사람들은 역지사지 易地思之로 한 번 더 생각하지 못하고 즉흥적으로 표현하는지 참으로 안타까웠다.

                                                                                (2019.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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