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21 16:45
수필아, 고맙다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성은
내가 수필창작반에 입문하고 감격스럽게 접한 인사가 있었다.
"건필하세요.“
그 인사를 받고 보니 비로소 내가 정식 문인이 된 것 같았고, 글쟁이들의 리그에 본격 진입한 것 같은 우쭐함과 은밀한 성취감도 맛봤다.
수필 쓰기의 세계는 웃고 들어갔다 울면서 나온다는 속설처럼 배울수록 난해했다. 고백하자면 나부터도 '수필'이란 장르를 조금 만만하게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글 정도로 내 친구인 '수필'을 오해했었다.
알고 보니 '수필'이란 녀석은 꽤나 도도하여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 새침떼기였고, 깐깐하게 문학성을 고집하는 원칙주의자였다. 유명 작가들이 펴낸 수필집들을 학습자 관점에서 정독하고나니, 비로소 수필의 성격을 알 것 같았다.
스승님의 오랜 가르침 아래 '신변잡기'에 그치고 마는 외로운 수필만큼은 쓰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수필을 보는 눈은 나날이 높아져 가는데, 멋진 수필을 향해 뻗은 내 손은 번번이 겸연쩍고 부끄러웠다.
존경하는 문우님들이 출판기념회를 할 때마다 교수님께서는 "수필아!"를 선창하셨고, 우리 모두는 "고맙다!"로 건배사를 외쳤다.
수필은 나에게 고요한 시간을, 스스로에게 거리를 둘 수 있는 여지를 선물해 주었다. 저자와 독자의 만남은 결코 개인과 개인의 관계일 수 없다는 깨달음도 나를 한 뼘 더 키워주었다. 수필을 쓰면서 나는 나의 뻔한 일상에 다채로운 색깔을 칠하는 재미를 알았다.
내 가족의 웃음도, 사랑도, 아픔도, 미움까지도 다른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근력을 단련시켰다. 소심한 눈물 대신 차분한 성찰에 건전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했다. 끝끝내 짝사랑이어도 좋다.
'수필'이라는 거대하고 심오한 세계를 알았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나는 충일하다. 아름다운 수필을 쓰는 사람들, 또 수필을 읽는 사람들과의 인연이 소중하다.
소위 글쟁이들은 요란하지 않게 마음을 나눌 줄 안다. 책을 펼치는 사람들의 마음은 잘 정돈된 식탁처럼 정갈하다. 활자를 통해 전달되는 저자의 메시지는 진솔하다. 마음을 살 찌우는 독서는 저자와 독자를 영혼의 친구로 만든다.
원고를 다듬듯 정성스럽게 일상의 내 표정을 다듬어 보자. 감각의 언어를 가꾸어 보자. 수필과 함께라면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꾸준한 실패라도, 고독한 습작이어도 행복하리라. 아이폰에 충전기를 꽂았다. 내 심장 베터리는 수필로 충전된다.
(2019.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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