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친구

2019.03.23 07:06

정남숙 조회 수:4

묵은 친구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정남숙

 

 

 

 

  “오늘 참 고마웠다. 니들 수고로 묵은 친구들 만나 즐거운 추억 하나 더 쌓았네,

  조금 전 헤어진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묵은 친구라는 말이 마음속에 확 퍼지며 목이 메는 느낌을 받았다. 이 친구가 말하는 ‘묵은 친구’는 60여 년 전, 초등학교 6년 내내 한 반에서 공부하고 같이 졸업한 소꿉친구들을 말하는 것이다.

 

 엊그제 새해가 시작된 것 같은데 벌써 3월 중순이 지났다. 아직도 겨울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쉬움은 아니지만, 봄이 가까이 와 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나들이를 다녀왔다. 지난주 토요일 아는 사람의 딸 결혼식이 순천에서 있었다. 단체로 봉고차를 이용해 순천을 다녀오는 길 양옆 산비탈 밭에는 매화가 만발했고, 가로수로 심어놓은 벚꽃, 목련, 산수유가 우리를 반기며 봄이 한창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달리는 차창으로 보이는 꽃들을 감상하다 문득 옛 친구 생각이 났다. 지난해 말, 한 번 만나자 했는데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 새해로 넘어왔다. 설 명절 즈음에는 내가 서울에 있어 만남이 이루어 지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친구에게 미뤄둔 숙제를 푸는 형식으로 내가 먼저 만나자 요청하고 싶었다.

 

 1년에 손바닥이 한 번 쫙 펴질만한 만남이지만, 언제나 우리의 만남은 그 친구로부터 제안을 받는 편이었다. 그것도 매번 자기 집으로 우리를 오라한다. 있는 반찬에 따뜻한 밥만 지으면 된다고 말하는 전형적인 주부의 마음씨를 간직하고 있는 내 친구다. 그렇게라도 한 번 씩 만나는 친구 중, 계속 만날 수 있는 친구는 두세 사람뿐이다. 순천에 다녀오며 맨 처음 떠오르는 그 친구에게 새 봄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다음 주에는 내가 먼저 제안을 하자 생각하며 내 머릿속에는 나들이 계획이 그려지고 있었다. 손쉽게 만날 수 있는 우리 셋이라도 만나, 각자 어렸을 적 살던 고향집을 방문해보자 하고 싶었다. 비록 지금은 많이 변했을 지라도 주말이면 이 친구 저 친구 집들을 번갈아 찾아가, 철없이 밤새 딩굴던 그 꾀복쟁이 시절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싶었다.

 

  옛 생각을 떠올려보며 오후에는 전화하려고 했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그 친구였다. 반가웠지만 내가 선수를 빼앗긴 느낌을 받았다. 이심전심이었다며 받는 내게 그는 내일 모래 중 시간이 있느냐고 물었다. 서울에 사는 친구가 친정집에 다니러 왔는데 주말이면 상경해야 한다니 그 안에 한 번 만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일정을 맞출 수가 없었다. 통화를 마치기 전, 추후라도 있을 만남을 위해 내 의견을 전하니 좋다고 한다. 나중을 기약하며 섭섭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 서울 친구는, 나도 서울에 살고 있을 때 한두 번 그 친구 집에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 후 30여 년이 지났으니 만나보고 싶은 마음 간절했는데, 시간들을 맞출 수가 없으니 아쉬움만 남았다.  

 

  아쉬움이 채 가시기도 전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오늘 오후 시간이 있느냐고 했다. 마침 오전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으니 괜찮다고 했다. 갑자기 번개팅이 이뤄진 것이다. 장소를 물으니 제 집으로 오라고 했다. 허겁지겁 점심을 먹고 그 친구 집이 있는 하가지구로 달렸다. 대문 앞에서 서성이던 친구는 내 차에 오르며 그냥 출발하자고 했다. 행선지도 목적지도 없이 그냥 가자고 했다.  맨 먼저 고속버스터미널 옆, 서울 친구 친정집 근처에 들러 서울 친구를 태우고, 또 다른 친구가 있는 삼천동으로 달렸다. 가는 길에 시간이 걸리는 틈을 이용하여 목적지가 어디냐고 물어도, 목적지가 뭐 필요하느냐고 했다. 아무데나 가자고 했다. 엉겁결에 넷이 모여 내 차에 동승을 했으나, 누가 먼저 나서서 장소나 갈 곳을 말하는 이가 없다,

 

  갑자기 이뤄진 번개팅을 반기며 모두 흥분한 탓일까? 무조건 운전을 하는 내가 알아서 하라한다. 평생 살고 있어 전주를 잘 아는 지네들이 장소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새내기 같은 나에게 떠맡겼다. 아무데나가 어딜까? 방향을 잡지 못하고 망설이는 내게, 고향을 돌아보고 싶다고 했으니 그리로 가자고 했다. 사실 나는 전주 시내 길도 잘 모르고, 내가 다니는 길로만 다닌다. 그러나 내 고향 길은 자신 있었다. 방향을 정하고 달리니 옛날 6년 동안 다니던 초등학교 앞을 지나고, 수없이 많은 소풍 길이었던 송광사를 거쳐 위봉사까지 달렸다. 포토존을 찾아 포즈를 취하며주름살을 나타내지 않도록 먼 거리에서 인증 샷만 찍자고 했다. 어릴 적 얘기는 실타래에 얹혀 오나보다. 말도 되지 않는 유치한 이야기도 흥미진진했다. 한참도 쉬지 않고 끝도 한도 없이 이어졌다.  

 

  내친 김에 위봉폭포를 거쳐 대아리호수를 돌아 동상면을 둘러, 소양 ‘한지전시관’에 이르렀다. 처음 들르는 곳이라 한다. “왜 이곳에 ‘한지전시관’이 있느냐?” 모두 의아해 했다. 소양의 한지는 원암이나 송광사가 있는 마을이 원조이며, 우리 집에서도 한지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던 것을 내 친구들은 잘 알고 있었다. 내가 한지전시관을 들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내 가장 친한 친구에게 어릴 때 감정이 있었던 것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우리아버지가 정계에 입문했을 당시, 우리아버지와의 약속을 어기고 배신한 정적의 이름을 쓰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나에 대한 배신이라 생각하고 그 친구와의 관계도 서먹서먹해 지고 말았다. 그 친구도 눈치 채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좋고 나뿜을 숨기지 못하고 그대로 인상에 나타내는 미성숙한 인품인 것을 그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졸업으로 헤어져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내 감정도 풀리지 않았으니 만나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우연히 동생은 우리 아버지의 정적이었던 그 사람이, 내 친구의 고모부였다는 말을 들었다. 그 때 그럴 수 있었겠구나 조금 이해가 되고 내 감정도 풀리고 있었다. 나의 오해를 직접 사과는 못했지만, 물어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그런데 왜 한지전시관이 엉뚱한 이곳에 있느냐 불평하는 것을 보고,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고모부이야기를 꺼내보았다. 그런데 친 고모부가 아니며 그의 집안이었을 뿐이라 했다. 고모부에 대한 감정도 좋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내 친구는 나에 대한 친구의 의리를 지키고 싶었을 것이다. 집안 끼리 얽힌 관계로 본의 아니게, 우리 상대방 이름을 적었을 것으로 내 나름대로 정리했다. 미안함이 조금 없어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의 고모부의 고향이 한지전시관을 엉뚱한 이곳에 유치한 사람과 같다.

 

  3~4시간을 여기저기 둘러보며 달렸으나 그대로 헤어지기는 아쉬웠다. 내친 김에 늦은 저녁을 먹기로 하고 우리는 진안으로 핸들을 돌렸다. 모래재에 멈춰 생수도 마셔보고, 꼬불꼬불 99고개라는 옛날 곰티재(웅치,熊峙)를 넘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느리게 걷는 둘레 길로 지정되어 있다. 여유롭게 숲길을 걸으며 피톤치드를 실컷 마셔보고 싶은 마음을 달래며 내려와 화심순두부로 마침표를 찍었다.

 내 친구를 집에서 끌어내고 싶었고, 옛 그리움을 맛보게 하고픈 일정을 마치며 되돌이표같이 빙~돌아 집까지 무사히 모두 들여보내고 집에 도착했다. 오늘 참 보람 있는 한나절 이었구나 실감도 느켜보기 전, 방금 헤어진 친구의 문자를 받은 것이다. 나도 답해주고 싶었다.

 "‘묵은 친구들아 고맙다. 건강 잘 챙겨 가을에 또 만나자는 약속 잊지 마."  

                                                                 (2019. 3, 22.)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47 더 퍼스트 펭귄 두루미 2019.03.25 4
546 떠나는 날, 금요일 송병운 2019.03.25 3
545 할매들의 추억 쌓기 신효선 2019.03.25 3
544 되나깨나 막말 한성덕 2019.03.25 4
543 좋은 걸 어떡해 곽창선 2019.03.24 6
542 부안 앞바다 이종희 2019.03.24 6
541 호락질하는 사람들 최기춘 2019.03.23 12
540 할머니의 연봉 정남숙 2019.03.23 4
» 묵은 친구 정남숙 2019.03.23 4
538 비행기 아저씨 고안상 2019.03.23 3
537 혼자 걷는다는 것 이진숙 2019.03.23 4
536 태국 여행기(1) 김학 2019.03.22 4
535 태국 여행기(2-4) 김학 2019.03.22 6
534 나이를 따지는 나라 한성덕 2019.03.22 6
533 수필아, 고맙다 김성은 2019.03.21 3
532 상처받지 않을 권리 전용창 2019.03.21 6
531 봄봄 밥차 정남숙 2019.03.21 4
530 새해 복 많이 짓게 해 주세요 최동민 2019.03.21 3
529 해답은 만남이다 한성덕 2019.03.21 3
528 새싹을 보며 곽창선 2019.03.2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