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걸 어떡해

2019.03.24 19:57

곽창선 조회 수:6

좋은 걸 어떡해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곽창선

 

 

 

 

 하루의 기쁨은 긍정적인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 같다. 기상하면 30대처럼 상쾌하거나 활기가 넘치지는 않아도 창을 열고 기지개를 켜면 기분이 좋다. TV에선 경쾌한 음악이 울린다. “좋은 걸 어떡해” 1970년대를 주름잡던 노래가 전신에 앤돌핀을 돌게 한다. 이 노래는 같은 캠퍼스에서 함께 수학하던 가수가 불러 귀에 익은 노래다. 그저 리듬만 들어도 반갑다. 학창시절 통기타 메고 주름잡던 그의 모습이 선하다. 종종 TV에서 주름진 그의 얼굴을 보며 그도 세월을 비켜가지 못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를 보며 하늘이 내게 정해준 약속시간이 머지않은 곳에 다가왔다는 조급함이 생긴다.

 

 기나긴 힘든 짐을 지고 앞뒤 분간 못하고 달려왔다. 어느덧 등에 진 짐을 하나둘 내려놓고 나니 홀가분해 허탈감마저 든다. 이제 별다르게 정해진 시간이나 책임도 없으니 마음먹기에 달렸다. 자칫 언제 소멸될지 모르는 귀중한 시간이다. 행동에 따라 안방지기로 살거나 아니면 질병의 고통 속에서 살다가 사라질지도 모르는 시간이다. 마음과 몸의 기운이 더 소진되기 전 잘 마무리 지어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떠나야 할 텐데 걱정이다.

 

 100세 시대라며 질병보험에 가입하라는 가족의 성화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보험에 가입하려니 직업란을 채워야 한다. 보통 무라고 쓰거나 점을 찍는데, 어느 잡지에서 본 B,M,W라고 칸을 메웠다. 직원이 고개를 갸우뚱 하며 물었다. 버스를 타거나 걸어 다니는 노인백수를 지칭하는 은어라니까, 나도 웃고 직원도 웃었다. 뒷맛이 씁쓰름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생활목표를 정했다. 매일 2시간 이상 운동하고, 2시간은 독서와 글쓰기, 1주에 영화나 음악감상을 하겠다고 책상 앞에 써 붙였다. 좀 쑥스럽긴 해도 초등생 기분이 들어 싫지 않았다. 이러한 내 행동에 '흥, 두고 봐야지!’ 아내가 옆에서 비아냥거린다. 작심 3일이 되지 않을까, 나도 의심이 들었다.  

 

 늦바람에 수필창작동아리에 입문하게 되었다. 책읽기와 쓰기를 준비하지 않으면 주어진 과제를 풀 수가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다. 매일 책상 앞에서 읽기와 쓰기를 하고 수요일이면 동아리에서 노병들과 녹슨 두뇌를 닦아내며 재기를 다진다. 오후엔 도움지기와 함께 둔탁한 볼을 때리며 스트레스를 날리는 마전교 밑으로 달려간다. 하늘은 거의 매일 미세먼지로 뒤덮여 햇빛은 총기를 잃고 갈길 몰라 부유浮游하고 있다. 앞이 흐려 눈 뜨기가 두렵다. 이런 날 운동하러 나가면 이웃 모두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지만, 개의치 않고 벙거지에 마스크, 안경을 챙겨 차에 오른다. 반가운 얼굴들과 조우하며, 심신을 단련하고 나면 나른한 몸으로 숙면의 달콤함을 맛볼 수 있다.

 

 자전거를 탄 허리 굽은 김 옹이 오신다.

 ‘할아버지, 나오셨어요?

 ‘응, 나 나온 지 96년 됐어!’  

 동호회의 최고령 97세인데도 청력, 시력, 모두 좋아 90m거리의 공을 정확하게 보내는 노익장이시다. 젊은(?) 우리도 거리내기가 쉽지 않은데 간단히 온 그린 시킨다. 2시간정도 운동하고 나면 힘겨운데, 괜찮으시냐고 물으면

 "젊은 사람이 엄살이야? 눈 감으면 썩어질 몸 아껴 뭣하게? 나는 여기가 좋아. 천국이고 명당이야!”

하며 웃으신다. 매사 긍정적이며 낙천적인 성격을 지닌 분이다. 88세인 할머니도 집에 있으면 지루하고 몸이 아픈데 어울려 즐기고 나면 잠도 잘 오고 잡념도 없어지니 좋아서 나오신다. 처음에는 자녀들이 만류했으나 좋아하는 걸 보며 적극 후원해준다며 입이 귀에 걸린다.

 

  벗들과 운동을 하다 갈증이 나면 휴식 장소에서 물을 마신다. 동호회에서 준비한 것으로 알았는데 노 목사 내외분의 정성 덕분이란다. 매일 50L통에 따뜻한 물과 컵 그리고 차까지 준비하시니 정성이 보통이 아니다. 주위 청결유지도 손수 하시고 구장관리나 조경수에도 신경을 쓰신다. 감사 합니다, 인사드리면 “나 좋아서 하는데요, 뭐” 겸언 적어 하신다.

구장의 열악한 환경개선을 위해 큰돈을 희사하셔서, 가장자리에 펜스를 치고, 구장 지면도 골라주어 운동을 할 수 있도록 힘 쓰셨다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좋아서 하는 일에는 천사의 손길이 따르는 성싶다.

 

 보고, 읽고, 느낀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시간에 쪼들린다. 아마 내 일생 중 가장 바쁜 나날이다. 어찌 보면 걱정 없이 걷고 즐기며, 읽을거리, 쓸 거리에 잡념이 없어지니, 행복한 일상이다. 좋아서 하는 일이라 게으름이나 싫증도 없다.

 

 요즘에는 분수를 잃고 2-30대 젊은 맛으로 살아간다. 얼굴은 주름투성이요, 출렁이는 은빛 머리칼도 잊은 체, 분수 넘게 살아가고 싶으니 노망이 아닐까? 몸은 늙어가도 콩깍지가 끼니 마음만이라도 젊어지고 싶은 욕망에서다. 마음이 없으면 몸도 따르지 않는데 젊음 따라 무지개를 띄우고 있으니 허황한 망상일까?

 

 작년 9월부터 시작하여 특별한 날이 아니면 꾸준히 나와의 약속을 지키려 노력하니 좋아하는 마음이 절로 난다. 이제 7개월이 지나니 관성이 붙어 나도 몰래 책상에 앉거나 운동장에 나간다. 무엇 하나 끈기 있게 실행하지 못하던 내가 얻은 큰 결실이다. 나태한 마음이 들면 혼자 흥얼거린다.

 “좋은 걸 어떡해? 누가 뭐라해도 내가 좋은 걸!”

                                                                     (2019.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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