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날, 금요일

2019.03.25 10:19

송병운 조회 수:3

떠나는 날, 금요일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송 병 운

 

 

 

 

 

 금요일이다. 어딘가로 떠나는 날이다. ‘떠남은 새로운 만남’이라는 말을 앞세우며 매주 금요일마다 만나는 친구들이 있다. 모두가 교직에 있다가 퇴직했고, 연배도 비슷하여 정답게 어울린다. 더구나 현직에 있을 때 학교의 책임자로서 나름대로 힘듦을 겪으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전공과목도 영어, 일본어, 체육, 물리 그리고 역사로 구성되어 있어 모든 대화가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오늘은 군산지역 역사 탐방을 하기로 했다. 원래는 선유도로 가려했으나 날씨가 좋지 않아 방향을 바꾼 것이다. 가이드는 군산에서 근무했던 최 교장이다. 긴 세월 살아온 고향인데다 전공과목이 역사이니 별도의 해설사가 필요하지 않다. 막연히 오갔던 군산에 그처럼 많은 역사적 산물이 있었는지 몰랐다. 주로 일제 강점기의 흔적을 중심으로 군산의 근대사를 공부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다니다 보니 다음에 시간을 내어 꼼꼼히 살펴야 되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떠날 때마다 오늘처럼 그날의 책임자가 정해진다. 목적지를 조금이라도 잘 아는 사람이 미리 준비를 해서 하루를 이끌어 간다. 나도 가이드가 되어 몇 군데를 다녀온 적이 있다. 주로 역사와 천주교 성지를 묶어서 안내했다. ‘역사와 신앙의 만남’이 되는 셈이다. 김대건 신부가 귀국하여 첫발을 디뎠다는 ‘익산의 화산성당과 부여의 낙화암’, ‘충남 공주의 황새바위 순교성지와 무령왕릉 및 공산성’ 그리고 ‘해미순교성지와 마애삼존불상’ 탐방 등이다. 천주교 성지와 역사 유적지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루하지 않게 뭔가를 배우자는 의미였다. 그러다보니 천주교와 인연이 없더라도 새로운 영역을 알게 되는 기회로 생각하기 때문에 불편함은 거의 없다.

 

 우리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대가 만들어 준 학교생활이다.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라 칭함) 6, 중학교 3, 고등학교 3년과 대학교 4, 모두 16년을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았다. 여기에다 군대생활 3년 역시 학교나 마찬가지, 아니 더 무거운 울타리였다. 그러니 답답한 울타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절실했을까? 그러나 숙명인지 벗어나기는커녕 더 깊은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교사라는 직업을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거의 35년 이상의 생활을 했으니 퇴직 전까지 학교 밖에서 살았던 시간은 초등학교 입학 전의 7년 정도뿐이었다. 당시에는 유치원이 없었던 것만도 참으로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학생 때는 물론이고 교사가 되어서도 같은 학교에서 생활한 적이 없다. 50년 넘게 학교라는 울타리안에서 살았지만 서로 다른 공간을 걸어온 셈이다. 그러니 만날 때마다 대화는 흥미롭고 모든 것이 배움의 연속이다. 여섯 명의 학교생활을 계산해보니 300년이 넘는다. 그동안 배우고 겪었던 일들이 모두 이야깃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배울 것이 산더미 같았다. 그래서 우리의 금요일은 늘 풍요롭고 마음이 벅차다.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세상을 배우고 삶을 배우고 있다. 서로가 겪지 못했던 경험담을 듣거나 주옥같은 지혜를 배운다. 그래서 금요일에는 무조건 다른 계획을 잡지 않고 우리끼리 만나는 것이 원칙이 되었다. 함께 골프도 치지만 어딘가로 떠나는 것이 우선이다. 처음에는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기 위해 떠남을 추진했는데 어느덧 ‘어울림’이라는 또 다른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떠남에 원칙이 있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백수들이니 특별히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 대개는 아침 일찍 출발했다가 저녁에 도착할 수 있는 하루 코스를 선택하지만, 가끔은 멀리 가기도 한다. 그래서 강원도나 경상도 지방을 중심으로 23일의 나들이도 했다. 여수 같은 지역은 기차를 이용해 다녀온다. 때로는 가까이 있는데도 소홀히 지나쳤던 곳을 찾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전주 주변에 있는 금평저수지, 구이저수지, 금천저수지 그리고 군산의 은파저수지 둘레길을 걷기도 했다. 날씨가 너무 나빠 떠나기 힘들 때는 영화를 보고 커피나 술을 마시며 금요일을 엮어간다.

 

 우리의 떠남은 단순히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만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시간이라는 공간도 뛰어넘는 셈이다. 늘 우리의 삶 속에서 떠남을 멋지게 준비하자며 다음에는 어디로 갈지 고민한다. 가벼운 방랑을 꿈꾼다고나 할까? 아직도 인생이라는 여행을 어떻게 하는 것이 아름답고 가치 있는지를 잘 모르겠다. 그래도 떠남을 통해서 새롭게 만나는 시간들을 소중하게 가슴에 안으며 살아가고 싶어 한다. 그리고 마지막 떠나는 날, 우리의 금요일을 기억하며 포근하게 눈을 감자며 힘차게 웃는다.

               

                                       (2019.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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