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2019.04.02 05:53

오창록 조회 수:3

봄이 오면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오창록

 

 

 

 호숫가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는 친구가 있다. 먼 산에는 아직도 하얀 잔설이 남았는데 성급한 친구는 사진과 함께 자기 집 화단에 노란복수초가 피었다는 메일을 보내왔다. 산으로 에워싸인 호수의 양지바른 언덕에 그의 집이 있다. 겨울에는 기온이 도시보다 5도가 낮아서 늦게까지 추위가 남아 더욱 봄이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정년을 맞이하기 전에는 전주시내 아파트에서 직장을 오가고 주말에는 호반에 있는 집에서 주말을 보내는 삶의 멋을 아는 친구다.

 

  화단도 없는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나는 양지바른 골목길 돌 틈에 뾰죽 얼굴을 내미는 민들레의 노란 꽃만 보며 살고 있다. 남녘에서 시작된 꽃소식이 점차 북상하기 시작하더니 엊그제는 매화꽃이 차창 밖을 스치고 지나갔다. 또 오늘은 동물원 넘어가는 길가에 노란 개나리가 활짝 피어 지나는 이들을 반겼다. 이렇게 해마다 꽃잎이 피고 지고, 여름이 오고 또 가을과 겨울이 우리의 곁을 지나간다.

 

 지난해 나는 희수(喜壽)를 맞이했었다. 그 기념으로 아내와 같이 해외여행을 갔으면 좋았으련만 그럴 수가 없었다. 아내는 지병이 있어 서울아산병원에 10여 년이나 다니고 있다. 젊어서부터 수영장에서 건강을 다진 탓에 그런대로 일상생활을 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작년부터는 점차 건강이 악화되어 12월에는 병원에서 수술을 했다. 우리나라에도 고령사회가 본격화되면서 노인들을 괴롭히는 퇴행성 고관절염(股關節炎)으로 인공관절 치환술(置換術)을 받았다.

 

 수술을 받고는 한동안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어서 병상에 누워 24시간 전문 간병인의 도움을 받고 지냈다. 병원장 말로는 적어도 4~5개월은 참아야 한다고 한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활발하지는 못해도 집에서 주부의 역할을 했는데 하루아침에 이렇게 침대에 누워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동안 수술의 후유증으로 흰머리가 더 세어져서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평생 나를 위해서 살아온 사람이 아니던가? 이제 자식들은 모두 제자리에서 제몫을 살아가기도 바쁘다. 내 능력이 있는 동안에는 정성을 다해서 완쾌되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오늘도 병상의 창 너머로 비치는 석양노을이 아내의 야윈 얼굴에 그늘져서 더욱 애처로운 마음이 든다.

 

  집안에 환자가 있으면 가정환경이 무너지기 마련이다. 제자리에 있어야 할 가족이 그 자리를 비우게 되면 그 빈자리가 너무 크다. 서울에 사는 딸과 아들은 주말마다 찾아온다. 막내딸은 금요일 늦게 집에 와서 반찬과 세탁을 맡아서 하고 하룻밤을 자고가면 토요일에는 둘째딸이 다시 내려와서 엄마를 보살핀다. 전주에 사는 큰아들과 큰딸은 매일 병원으로 찾아온다. 드디어 아내는 2개월 남짓한 병원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모든 생물과 인간의 세계에도 생로병사의 진리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산과 들에 있는 초목은 봄이 오면 파릇파릇 새싹을 틔우고, 나뭇가지에서 꽃잎을 불러내는 봄이 온다. 가을겨울이 되면 그 잎이 지고 또 봄이 오면 다시 꽃이 피는 이러한 자연의 섭리가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자 아내의 건강이 좋아지고 있다.

 

  어제는 그동안 다니던 목욕탕에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듣던 중 반가운 말이다. 내일은 그동안 쌓여있던 몸의 아팠던 곳도 말끔히 씻어내고 새로운 봄을 맞이했으면 한다. 머지않아 전주천변 가로수에는 벚꽃이 활짝 피고, 봄꽃소식이 세상을 환하게 비춰줄 것이다.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잎이 눈처럼 쏟아질 때 지난날을  생각하면서 멋진 사진을 찍으러 가야겠다.

                                                       (2019.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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