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도 능력이다

2019.04.11 07:00

한성덕 조회 수:35

은퇴도 능력이다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한성덕

 

 

 

 

  나는 1971년 무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졸업생 50명 중 유일하게 담임과 학교장 추천으로 무주군교육청에 특별 채용되었다. 그리고 무주초등학교 서무실에 파견돼 3년을 근무하고 군에 입대했다. 직장생활을 맛보았던 유일한 경험이요, 일반 직장으로서는 사실상 은퇴였다.  

  군복무 후에는, 총신대학교에서 신학대학원까지 7년 과정의 신학수업을 마치고서 줄곧 목회를 했다. 일단 목회는 바쁘다. 다른 곳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 더욱이 “정교(政敎)분리 원칙”을 고수하는 보수교단소속이어서 ‘이념대신 복음을, 미국대신 하나님의 나라를, 자본대신 성령님을 의지하는 목회’에 주력했다. 정치는, 그 어떤 사람이 하더라도 자신을 위한 일로 치부하고 기도하는 정도에서 그쳤다. 교회나 일반정치에서 진보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아무튼, 목회자로서 정치와 무관하게 살아왔음을 고백한다.

  70세에 은퇴하는 목사직을 65세에 정리했다. 고위 공무원 직에 준하여 나름대로 실천한 것에 불과하다. 목회라는 족쇄(?)를 풀고 나니 자유스러워서 마냥 좋았다. 그러나 목회자들에게 권장할 것은 못된다. 두 가지 암을 극복한 아내의 눈물겨운 ‘간증과 찬양’이라는 특별한 사역 때문에 취한 것이지 쉬운 게 아니다.

  은퇴한 뒤로는 고개를 기웃거리며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정치에도 조금은 눈을 떴다. 그렇다고 넌더리나는 현실정치에 뛰어든다는 것은 아니다. 원래 정치는 팔방미인이 한다는데, 내게는 그런 능력도, 자질도, 실력도, 정치적 감각도 없다. 다만, 그쪽으로도 귀를 기울여보겠다는 뜻이다. 그 때문인지 요즘은 현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얼마 전에, 어느 텔레비전 채널에서 몇몇을 만났다. 그 중 정두언씨의 ‘은퇴도 능력이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첫머리에서 이회창씨를 들먹이는 바람에 더 솔깃해서 귀를 바짝 세웠다. 2007년 당시를 얘기하는 게 아닌가?

 00당에서 남녀 두 분의 경선이 한창일 때였다. 워낙 치열한 싸움이기에 양쪽 모두 한 표가 아쉬웠다. 당연히 이회창씨의 거취가 초미의 관심이었다. 양측에서 이회창씨의 지지와 도움이 간절했다. 정두언씨도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이회창씨 최측근을 만났다. 놀라운 것은 그가 세 번째 도전을 고민하고 있다는 게 아니가? 두 차례나 대통령 근처까지 갔다가 낙선하고서도 가능성이 더 희박한 지금, 또 다시 도전한다기에 아주 놀랐다며 눈이 번쩍 커졌다. 실제로 세 번째 도전했으나 예상대로 미끄러지고 말았다.

  정두언씨가 일침을 가했다.

 “사람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토록 고매하고, 자존심도 강하고, 또 은퇴한 분이 왜 다시 정치판에 뛰어들어 그런 수모를 당할까? 속된 말로, 쪽팔리는 건 참아도 외로운 건 못 참아서였을까?  

 

  주변에서 은퇴자들을 많이 본다. 그 중 공무원 퇴직자들은 연금으로 안정된 노후를 보내고 있다. 자영업을 했던 사람들도 괜찮아 보인다. 모두가 능력자들이다. 그러나 각각의 다른 직종에 종사했던 사람들, 특히 평생 목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소규모 교회여서 어려움을 겪는 목회자들이 많다.

  어떤 경우든지 은퇴자들 대부분은, 손을 놓았다는 허전한 마음, 공백을 채울만한 능력의 한계, 여러 동료들과 떨어졌다는 외로움, 나이로 느끼는 세상의 슬픔과 탄식이 겹치면서 상실감으로 고민이 점점 깊어지는 것을 본다.

  하지만 나로서는 수필을 공부하며 글을 쓰고, 시인이 되려고 시문학교실을 다니며, 건강을 위해서 탁구에 열을 낸다. 그리고 주일(일요일)이면 아내의 찬양사역에 힘을 얻는 등의 일로 바쁘다. ‘은퇴하면 더 바쁘다’더니 나를 두고 하는 말 같다. 현직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기에 그저 행복할 따름이다.

  진정한 은퇴는, 욕심을 내려놓고 물러나야 할 때 조용히 내려앉는 능력을 가리킨다. 외람되지만, 우리 김학 교수님이야말로 KBS방송국에서 은퇴하시고, 수필분야에서 묵묵히 제자들을 양성하고 계시니 참으로 능력자시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걷는데, “수필집 나온 지 3년이면 둘째(?)가 나와야지요?” 하시는 교수님 말씀에 돈을 투정했다. 그러자 “목사님들은 하나님께 기도하면 다 주시잖아요?” 하셔서 한바탕 웃었다. 책과 돈이 거론되자 “모금이라도 해야 되겠다.”며 옆에 있는 0선생이 거들었다. 그 바람에, 도로 건너편 저 언덕너머로 웃음이 소리치며 달아났다.

  그 호방한 웃음마저도, “야, 성덕이 너 능력 있구나!” 외치는 소리 같아서 이래저래 퍽 기분 좋은 하루였다.

                                          (2019.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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