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아, 비켜라

2019.04.14 07:07

전용창 조회 수:78

세월아, 비켜라

꽃밭정이 수필문학회

신아문예대학 목요야간반 전 용 창

 

 

 

 봄은 어르신들이 계시는 요양원에도 찾아왔다. 겨우내 움츠렸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창문 너머 울타리에 피어있는 개나리꽃을 물끄러미 바라다보고 계셨다. 가까이 다가가서 만져보고 싶고, 꽃잎을 따보고도 싶을 텐데 봄바람이 차가우니 바깥출입을 금하나 보다.

이번 달 우리 하모니카 아리 회원들이 방문한 곳은 고덕산 끝자락인 전주시 대성동 ‘새샘 요양원’이다.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니 넓은 회의실이 있었다. 그곳에서 어르신들이 우리를 박수로 맞이해주었다. 자리에 앉으시라는 안내방송이 나가자 창문가에 서 계신 어르신들이 한 분 두 분 제자리로 이동하였다. 이곳에 계시는 어르신들은 스물여섯 분인데 할아버지는 일곱 분뿐이고 나머지는 할머니들이라고 했다.

 

 담당 직원은 이곳에 100세 이상인 어르신도 세 분이나 계신다고 귀뜸해주며 살짝 손을 펴서 가리켰다. 그분들은 앞줄과 두 번째 줄에 앉아계셨다. 질서 있게 앉아있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마치 초등학생들 같았다. 나이가 들면 다시 어린아이가 된다더니 그렇게 보였다. 나는 어르신들의 표정을 한 분 한 분 눈여겨보았다. 명랑한 분은 그리 많지 않고, 대부분이 무표정이었다. 자폐증이 심하신 할아버지는 만사가 귀찮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할머니들의 모습에서 생전의 어머니 모습도 보았다. 그때는 이런 요양원이 없어서 호사도 누리지 못하시고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만 남기고 떠나셨다. 나의 장차 모습은 어떤 어르신 모습일까?

 

 우리가 준비한 곡은 8곡이었다. 〈고향의 봄〉, 〈고향 땅〉, 〈과수원길〉, 〈꽃밭에서〉 등 동요가 4곡이고 〈개나리 처녀〉, 〈섬마을 선생님〉, 〈고향 무정〉, 〈찔레꽃〉 등 가요가 4곡이었다. 연주가 시작되자 황토색 잠바를 입으신 어르신은 일어서서 힘차게 노래를 부르셨고, 그 뒤에 피부가 고운 할머니는 창문 쪽을 바라보며 손뼉만 치고 계셨다. 아마도 집에만 가고 싶고 요양원이 싫은 것 같았다. 뒷줄 안경 낀 왜소한 할머니는 동요만 따라 부르셨다. 장차 나의 모습이라고 생각한 감색 잠바 차림의 어르신은 할 일이 많이 남았는가 보다. 아직은 노년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지 연주하는 모습은 아랑곳없이 눈을 감고 엇박자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계셨다. 가장 힘차게 노래를 다 따라 부르시는 어르신은 앞줄에 앉아 계시는 100세 할머니들이었다. 우리가 연주를 마쳤을 때 앙~콜 앙~콜 소리가 나온 곳도 앞줄이었다.

 

  어르신들의 분위기가 최고도로 달아올랐을 때는 우리 다음 아코디언 동아리의 연주곡 〈내 나이가 어때서〉였다.

  “세월아 비켜라 / 내 나이가 어때서 /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회의실이 쩌렁쩌렁 울렸다. 사랑에는 나이가 없을까? 「백년을 살아 보니」를 펴낸 K 교수는 인생의 황금기는 60에서 75세라고 했다. 고희의 나이가 되어야 비로소 영적으로 성숙한 단계에 이르나보다. 100세까지 건강하게 노년을 사시는 어르신은 매사에 적극적이었다. 앉은 자리도 뒷자리가 아니라 앞자리였고, 노래도 다 따라 부르셨다. 나도 모르게 “세월아 비켜라”에서는 속으로 어르신들을 따라 소리치고 있었다. 어르신들을 뒤로하고 요양원을 나올 때는 효를 못하고 떠나보낸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서 멀리 있는 고덕산 자락만 바라보았다.

                                          (2019.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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