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어야 할 것은 다 있구요

2019.04.15 20:03

이진숙 조회 수:2

있어야 할 건 다 있다구요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이진숙

 

 

 

 

 

 ‘나도 친구에게 전화로 자랑을 해야지!

 집으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 남편에게 말하니 그는 소리 없이 웃기만 했다. 며칠 전 친구들 모임이 있어 중인동에 갔다가 그 근처에 살고 있는 그녀의 집에 몇 사람이 갔었다. 때마침 화단에는 온갖 화초가 꽃을 피우는 중이었다. 젊어서부터 야생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가 남편이 퇴직하자 바로 이곳에 터를 잡아 아담한 집을 지어 살고 있다. 부지런한 그녀는 여러 가지 채소도 잘 기르고 몸에 좋은 약나무도 많이 가꾸고 있었다. 특히 그녀가 좋아하는 야생화가 많아 가끔 들를 때마다 부러웠다.

 그날은 화단 여기저기에 할미꽃이 피어 있었다. 심지어 자갈이 잔뜩 깔려 있는 장독대에까지도 할미꽃이 있었다. 씨가 떨어져서 저절로 나온 것이라며 ‘내가 이런 곳까지 할미꽃을 심었겠느냐’고 했다. 또 특이하게도 ‘하얀색 꽃이 피는 무스카리’가 있었다. 아주 귀한 것을 작년에 구해서 심었단다. 내심 부러웠다. 우리 집에는 ‘보라색 무스카리’는 있지만 하얀색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할미꽃’도 해마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백발의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나왔다. 그러더니 작년 봄에 우연히 얻어 심은 ‘땅 채송화’가 사정없이 자기의 땅을 넓히며 여기저기 침범하더니 그만 호호백발 할미꽃이 머무는 자리까지 침범하고 말았다. 그런데 친구 집에는 장독대는 물론이고 사방팔방 할미꽃 천지가 되어 있으니 샘이 날 정도로 부러웠다.

 봄앓이를 하듯 이때만 되면 어김없이 5일장에 나갔다. 이번에도 단단히 벼르고 늘 다니는 그곳 5일장에 나갔다. 맨 먼저 이때가 아니면 맛 볼 수 없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나물을 찾아 시골 할머니들이 보따리를 풀고 앉아 있는 좌판 쪽을 찾아갔다. 눈을 휘둥그레 돌리면서 빠짐없이 살피고 지나다가 딱  한 군데 허리가 직각으로 꺾어진 할머니네 좌판에서 그 나물을 발견했다. ‘우리 논에서 내가 직접 캔 것이여, 깨끗한개 맘 놓고 먹어도 되야.’ 하며 푸짐하게 봉투에 넣어 주었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올 봄 들어 두 번째 먹어보는 쑥부쟁이 나물이었다. 논에서 주로 살고 있는데 농약을 많이 하니 쑥부쟁이 나물 캐기가 전 같지 않다고 했다.  신나게 나물이 들어 있는 검정봉투를 흔들며 지나가는데 약 뿌리를 잔뜩 늘어놓고 있는 곳에서 우연히 ‘할미꽃’을 보았다. 앞서 가던 남편을 큰 소리로 불렀다.

 “여기 할미꽃이 있어요.

정말 눈이 번쩍 빛났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한 다발 묶어 놓은 것을 샀다. 정말 신이 났다. 이제 살 것은 얼추 산 것 같으니 시장 구경이나 하고 가자며 시장을 한 바퀴 돌아 맨 끝에 온갖 꽃들을 잔뜩 늘어놓고 살 사람을 기다리는 곳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이 똑같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언제나 꽃을 파는 곳에서는 그냥 발길을 돌린 적이 없었다.

 “어, 하얀 무스카리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다른 꽃에 정신이 팔려 있던 그가 내 쪽으로 왔다. 작은 화분에 하얀 꽃을 달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마치 나를 기다리는 듯했다. 주섬주섬 세어보니 족히 열 개는 넘어 보였다. 그가 무조건 다 사라고 했다. 신이 나서 가격을 흥정할 것도 없었다. 주인도 다 가져간다니 ‘기분이다. 2만원 만 주시오.’ 했다. 완전히 횡재를 한 것이다내가 좋아하는 쑥부쟁이 나물도 샀고, 할미꽃과 귀한 흰색 무스카리도 샀으니 이젠 빨리 집으로 가서 심는 일만 남았다. 시장 바닥을 빠져 나오려는데 맛있게 생긴 딸기가 또 나를 붙잡았다. 그와 나 양손 가득 산 것들을 들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있어야 할 건 다 있구요, 없을 건 없답니다. 화개장터~~’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사고 싶은 것을 다 산다는 것이 그다지 흔한 일은 아니다. 때론 늦게 장에 나가 물건이 다 떨어져서 못 사기도 하고 어떨 땐 찾는 물건이 없어서 그냥 빈손으로 돌아 올 때도 허다했다. 특히 나무나 화초를 꼭 사고 싶은데 못 사고 오는 날은 마음마저 허전해지곤 했다. 그런데 이번 장날에는 있어야 할 건 다 있는 시골 5일장이어서 남편도 나도 마치 어린아이처럼 신이 났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옷 갈아입을 새도 없이 삽과 호미로 땅을 파고 열심히 심었다. 물도 넉넉하게 주면서 ‘귀하게 구했으니 우리 집에서 예쁘게 자라만 다오.’하는 주문도 빼놓지 않고 한몫했다. 저녁에 쑥부쟁이 나물을 데처서 된장 고추장 깨소금 참기름에 조물조물 무쳐 맛있게 먹을 생각에 입안에는 벌써 군침이 절로 고였다.

 매일 아침 문안인사를 할 것들이 또 늘어났다. 아침에 마당에 나가 일일이 돌아보며 간밤에 잘 지냈는지 눈을 맞추고 다니는 시간이 나는 참 좋다. 다음 장날에도 나는 또 장에 갈 것이다, 사고 싶은 것이 생길 테니까.

                                                          (2019.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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