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버스야, 고맙다

2019.04.16 14:04

최정순 조회 수:10

시내버스야, 고맙다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최 정 순

 

 

 

 

  친구가 사고로 다쳤다. 시내버스가 커브를 돌때 그 반사작용으로 몸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꽉 잡고 있던 의자 손잡이를 놓치고 말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버스바닥에 내동댕이치면서 출입문 쪽으로 미끄러져 머리를 부딪치고 타박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했다. 승객을 다른 차로 옮겨주고 친구만 태우고 병원에 갈 정도였으니 작은 사고가 아니었다. 모자며 신발, 옷은 찢어지고 가방에 들어있던 사과가 박살났다. 얼마나 놀랐을까?

 

  만약에 승객이 많았다면 이리저리 파도타기는 했을망정 몸이 튕겨나가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가벼운 뇌진탕 증세를 치료하고 있고, 척추가 무너지지 않은 것이 대행이라면서 버스가 무섭다고 했다. 그러나

 "친구야, 밥 먹고 체했다고 밥을 끊을 수는 없지않아? 행여, 이번 일로 시내버스에 대한 트라우마(trauma)가 생겼다면 빨리 떨쳐버렸으면 한다."

 이런 사고를 어디 친구만 경험했겠는가? 아무리 사소한 사고라 할지라도 당해서는 안 될 일이다.    

 

 마이카시대에 살고 있지만 시내버스야말로 서민들의 발이다. 시골과 도시생활을 편리하게 해주고 서로 소통하는 삶의 다리역할도 한다. 단돈 몇 천원으로 노선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지 갈수 있다. 환승제도가 있어서 차비를 절약 할 수도 있다. 가령 시장에서 찬거리를 사들고 40분 안에 다시 버스를 타면 왕복 1,250(카드결제)이 든다. 교통카드도 환승도 안 된다면 2,600원이다. 1,350원의 차액, 몇 푼 안 되는 금액인데도 왜 그리 알뜰한지 모르겠다. 교통카드를 사용하고 환승을 할 수 있는 시내버스가 고맙기 그지없다.

 

  시내버스 승강장은 어떤가? 버스번호와 출발시간을 알림판이 알려준다. 겨울엔 따뜻한 발열의자와 바람막이까지 만들어져있고, 여름엔 차양막에 선풍기가 돌아간다. 전주시청 앞에 있는 승강장은 호텔수준이다. 또 버스가 말도 한다. 이번 정류장과 다음에 내릴 정류장도 미리 말해준다. 요금기판에 카드를 대면 일말의 감정도 없이‘환승입니다.’란 말이 어찌나 반가운지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근데 단 몇 초 차이로 환승시간이 지나서‘감사합니다.’란 말과 동시에 카드에서 돈이 빠져나가면 사들고 있는 물건을 비싸게 샀다는 아쉬운 기분이다. 교통약자들을 위한 턱이 낮은 저상버스가 있어서 좋다. 이렇게 시내버스 시스템이 잘되어 있어서 조금만 신경을 쓰면 답답할 것이 하나도 없다. 오늘도 사과 보따리를 들고“기사님! 감사합니다.” 인사하며 저상버스를 탔다.  

 

  시내버스가 언제부터 생겼는지 잘 모른다. 직장생활을 하던 1960~80년대에 나는 버스보다 기차를 많이 이용했다. 어쩌다 버스를 타면 자갈길에다 흙먼지를 뒤집어썼다. 사람만 타는 버스가 아니었다. 시장에 팔러가는 달걀꾸러미부터 날개를 비틀어 보자기에 싼 채 선반에 놓인 수탉도, 발목이 묶인 강아지 돼지새끼도 숨이 막힌다고 꼴망태 속에서 깨갱 꿀꿀거리며 투정을 부렸다. 텃밭에서 뜯은 푸성귀 보따리도, 자취생의 쌀자루도 삶의 냄새까지 따라와 그야말로 버스 속은 짐 반 사람 반으로 피난길 수준이었다. 발 디딜 틈 없이 초만원 버스를 힘겹게 탔지만 내리기가 더 힘들었다. 옷자락이 사람들 틈새에 끼어 내릴 수가 없었다. 치맛단이 타지고, 단추 한두 개가 떨어지는 것은 예사였다. 속옷고무줄이 끊어져 골목길에서 옷핀으로 간신히 모면했던 일이며, 호주머니 깊숙이 넣은 월급봉투를 몽땅 소매치기 당한 일도 있었다. 이렇게 옹색하게 살았을 때도 남을 탓하지 않고 서로 손을 잡아 올려주고 내려주면서 그저 그러려니 하며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 지금은 그 시절에 비할 바가 아니다. 편리한 시대에 살면서도 사람들은 ‘교통지옥’이니 ‘교통대란’이란 말을 한다.

 

  많은 이들의 시내버스에 대한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난폭운전, 승차거부, 불친절 등을 꼽는다. 요즘 TV서도 이런 일을 고발하고 있다. 버스와 승객은 상생의 관계가 아닌가? 생활의 3대 요체가 '의·식·주'라면 버스의 3대요소는 '버스·기사·승객'이라고 말하고 싶다. 버스는 나라이고, 기사는 왕이며, 승객은 백성이다. 시내버스는 그야말로 서민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학교로, 일터로, 시장으로, 직장으로 버스에 몸을 맡기고 하루를 열고 닫는다.

 

  백성인 승객이 무엇을 바라겠는가? 왕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평안히 살기를 원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목적지까지 무사히 가기를 원한다. 기사 역시 무사고로 안전운행을 최우선으로 생각할 것이다. 물론 연산군 같은 폭군도 있고 왕을 능멸하는 백성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사님, 한 발만 물러서서 내 차에 승차한 승객이 잘 깨지는‘달걀 같은 승객’이라 생각한다면, 좀 더 조심스럽게 운전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쯤에서 나는 어느 신부님의 강론말씀을 다시 상기시켜보았다. 술 취한 한 승객이 버스를 발로 차면서 불평을 털어 놓았을 때 이 말을 듣고 있던 기사 왈,

 

   "이 놈의 똥차 언제 떠나는 거야?

  “똥이 꽉 차야 떠납니다.

 

  기사님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 백성이라면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에티켓도 익혀야 할 것이다. 별의별 승객도 많다. 자기가 타야할 번호판이 뜬 줄도 모른 채 넋놓고 있다가 출발해 버린 버스 탓으로 돌리는 사람, 차비를 미리 준비하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초만원 버스에서 그제야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는 사람, 10,000원을 내놓고 잔돈을 요구하며 온라인번호로 넣어준다는 사람, 1,000원만 넣고 끝돈은 나 몰라라 하는 사람, 버스를 잘못 탔다고 내려달라는 사람 등 각양각색이다. 기사님들도 이런저런 승객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나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일이다.    

 

  시내버스는 내 친구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를 기다리는 둘도 없는 친구다. 나는 이런 친구가 너무 고마워 예의를 갖춰 행동한다. 친구가 저만치서 나타나면 나를 태워 달라고 손 신호를 보내고, 교통카드로 빨리 결제하여 뒷사람에게 방해되지 않게 한다. 그리고 환승의 해택도 누린다. 흔들리는 친구를 탓하기 전에 순발력을 발휘하여 기둥이나 의자 손잡이를 꼭 붙잡고 자리에 앉는다.

 

  '그래, 너는 친구가 아니라 내 몸이야. 내 발걸음이고 내 생명이야. 버스야! 고맙다.'

                                       (2019.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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