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달, 4월

2019.04.19 07:20

정남숙 조회 수:6

생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달, 4월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정남숙

 

 

 

 

 과거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자연을 깊이 바라보며 자연 속에서 삶의 진리를 찾으려 했나보다. 자연 속에서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연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인 이유를 알 수 있다. 인디언들은 상상력을 발휘하여 1년의 달 이름을 정했다. 4월은 ‘생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달’이라 한다.

 

  노천명 시인의 ‘푸른 오월’에서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해서 그런지, 5월의 신부’라는 말을 선호해 결혼을 앞둔 여인들은 5월의 신부가 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5월도 되기 전, ‘생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달’이라는 4월에 결혼소식이 답지한다. 평소 격조했던 친구들에게서 자녀들 결혼소식이 들려온다. 모처럼 전파를 타고 오는 친구들의 목소리는 조심스럽게 머뭇거리는 것 같다. 우리 연배에 지금까지 결혼하지 않은 자녀를 둔 부모의 심정은, 뒤늦은 자녀 결혼소식을 알리는 게 고해성사를 하는 느낌이란다. 요즘 만혼은 흉이 될 것도 없는데, 엄마들의 심정은 그렇지 않나보다. 그동안 얼마나 속 앓이를 하며 지켜보고 있었을까,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중 내가 서울살이 할 때, 이웃사촌으로 지내던 친구의 소식이 끼어있다반가움에 “축하한다. 그동안 맘고생 많았다.” 위로의 말부터 전하고 꼭 참석해 축하해 주겠노라 약속했다. 그 친구에게는 딸이 넷이나 있다. 아들을 기다리다 딸만 넷을 낳았노라 했다. 첫째, 둘째, 막내딸은 순조롭게 혼인을 했는데, 제일 기대하고 의지했던 셋째가 결혼에 뜻이 없다며 막무가내로 버티는 바람에 친구의 속을 썩이고 있었다고 한다. 억지로 보낼 수도 없어 속만 태우다 이제는 포기상태로 기대도 하지 않았단다.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는 비혼이 늘고 있어 주위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며, 자기 능력으로 생활할 수 있으니 자기인생 만끽하며 살겠노라는 딸의 말에 반박도 할 수 없었단다. 이제는 딸이 아닌 친구 같은 생각마저 들어 딸이 건네주는 용돈으로 삶의 활력소를 찾았노라 한다.

 

 서울나들이 일정을 앞두고 그 친구와의 일들이 주마등 같이 스친다. 딸 셋의 결혼 때마다 나는 그에게 내가 아는 한복집을 소개했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 우리 한복을 알리는 한복전도사,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최고의 한복장인 ‘이영희의 집’에서 모든 실무를 담당하고 주관하던 실장이 따로 강남 한 복판에 더 큰 사업장을 개업한 곳이다. 내 큰며느리 친정엄마의 절친이다. 사장님이지만 우리는 계속 실장이라 부른다. 두 아들 결혼식 때마다 신랑신부는 물론 양가 부모님들의 옷까지 모두 맡긴 곳이다. 이곳은 똑같은 옷들을 파는 곳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색조며 스타일로 오직 나만을 위해 만들어지는 말 그대로 작품을 만드는 명품점이다. 나는 큰며느리를 맞을 때 ‘녹의홍상’ 외에 평상시에 입을 수 있도록 연분홍 치마저고리에 궁중 식 배자와 함께 아얌까지 만들어 씌웠다. 말 그대로 분홍공주를 만들어 놓았다. 너무 예뻐 보였다.

 

 작은 아들 결혼에 앞서 또다시 예비 둘째며느리를 데리고 그 한복집에 들렀다. 실장은 대뜸 시어미인 내 옷은 새 옷으로 하지 말라 권했다. 아들이 연년생이라서 그런지 결혼도 연이어 하게 되었다. 지난해 큰아들 결혼식에 입었던 한복이 한두 번밖에 입지 못했는데 그 한복에 옷고름만 바꿔달아 입으면 된다고 권한다. 내 비용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시어미 혼수로 당연히 받아 입는 한복인데 한복 한 벌이 그대로 사라지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었다. 속으로 약간 섭섭하기도 했지만 전문가인 실장이 권하는 말도 일리가 있어 우기지도 못했다. 시어미 예단이니 며느리 친정집에서 부담하는 비용이지만 값비싼 한복을 해마다 해 입는 마님들이 많지 않다고 한다. 나는 한복 욕심이 많다. 그래서 도리어 둘째며느리에게 ‘녹의홍상’ 외에 흰색 저고리 하나를 더해 입혔다. 우리에게 원가에 가까운 값에 준다 했지만, 그 액수도 다른 곳에 비해 엄청 비싼 것은 사실이었다. 두고두고 입을 옷이기에 아까운 줄 몰랐다.  

 

  네 딸 가진 엄마는 우리아들 결혼식에서 양가 엄마들의 한복이 눈에 확 들어왔었다고 한다. 큰딸 결혼식 때 찾아와 어디서 했느냐 물었다. 자초지종을 말해주니 자기도 소개해 달라고 했다. 이어 둘째, 막내딸도 그 곳에서 한복을 지었다. 내가 귀향하기 직전 다른 친구에게 소개할 일이 있어 찾아간 한복집에서 나에게 서비스로 한복 한 벌 해주겠다고 했다. 둘째며느리를 맞은 지 10여 년이 되었으니 이제 한복 새 옷 한 벌 다시 해 입어도 된다고 했다. 공짜로 해 준다니 부담도 되었고, 또한 내가 뭘 바라고 사람들을 소개한 뚜쟁이 취급을 받는 느낌이 들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한사코 권했다. 남아있는 재고로 해 줄 테니 부담 갖지 말라는 말에 못이기는 척 치수를 재는 일에 손을 들었다. 실장은 제일 좋은 본견으로 화려하게 수를 놓아 만들어 보내 주었다.

 

 사실 지금까지 내가 소개한 친구들은 수십 명이 넘는다. 그 친구들이 또 자기 친구나 친척들을 소개했으니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나로 인해 수입도 있었을 것이다. 미안해하지 말자. 당위성까지 찾아내고 있었던 것 같다. 스타일을 고르라 했다. 한복 입을 기회를 생각해 보았다. 별로 없을 것 같았다. 입을 기회가 있어도 그간 남아있는 옷으로도 충분히 커버하고도 남을 한복이 장롱 속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그래도 이왕 해 주는 옷이니 욕심을 부려보기로 했다. 색깔을 정하려니 이제는 원색으로 한 번 입어볼까, 주책스런 생각이 들었다. 눈 딱 감고 용기를 내어 나이 들어 입기 난해한 빨간색치마에 흰색저고리로 정하고 스타일은 치마말기에 잔뜩 수놓은 것으로 해 달라했다. 저고리는 기장을 약간 길게 하니 개량 한복 스타일이 된 것 같았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은 한 번도 입을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장롱 위 상자 속에서 몇 년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설에 내려온 둘째며느리는 합창단에서 한복을 입기로 했다고 한다. 자기가 의상담당이라 한다. 단복이니 똑같은 스타일인 줄 알았는데 각자 개성에 맡게 색깔이나 스타일은 자유롭게 입으라 했다고 한다. 나는 순간 지금까지 며느리들에게 보여주지도, 말하지도 않았던 상자속의 한복을 꺼내놓았다. 큰며느리는 키가 조금 작아 맞지 않을 것 같았고 작은며느리는 키가 나와 비슷하니 저고리 품만 조금 손보면 입힐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말을 들은 둘째며느리는 좋아라하며 얼른 챙겨갔다. 합창단원 중 제 옷이 제일 예쁘다고 자랑했다.

 

 한복에 얽힌 지난추억에 잠겨있다 보니, 네 딸 가진 친구의 마지막 말이 생각난다. 영국 시인 엘리엇이 ‘황무지’에서 말한 ‘4월은 잔인한 달’이 그 친구에게는 맞는 말인 것 같다. 다 떠나보내고 단 둘이 친구같이 살아오는 동안 별 어려움이나 외로움을 몰랐는데, 결혼날자가 다가오니 더럭 겁이 난다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모든 경제도 감당하며 너무 의지했었나 보다. 자기 생전에 지천명을 넘긴 딸이 불쑥 짝을 찾아 떠난다니 안심은 되지만, 앞으로 혼자 살아갈 일이 막막하여 두렵기도 하다는 것이다. 새봄이 찾아와 만물이 싹이 돋고 꽃이 피는 것도 좋지만, 간간히 찾아올 외로움에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네.’하지 말고 인디언들처럼 ‘생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달’로 위로받고 즐거워하는 친구의 소식을 기다려보련다.

                                                                                  (2019.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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