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기도해 주세요

2019.04.20 07:39

정남숙 조회 수:16

어머니. 기도해 주세요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정남숙

 

 

 

 

 

  “에미야. 형준이한테 다녀와야지?

 미국유학 중인 손자가 금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첫 출국을 앞두고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내가 흥분하여 법석을 떨었는데 벌써 3년이 지났다. 우리나라에서 고등학교졸업식에 온 가족이 참석하는데 미국에서의 졸업식관습은 어떤지 몰라 말을 걸지 못하고, 제 부모 눈치만 보고 있었다. 다음 달 말이면 졸업인데 아무 말이 없다. 성질 급한 놈이 술값 먼저 낸다고 조바심을 참다못해 아들 내외의 계획을 듣고 싶어 내가 먼저 큰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기다렸다는 듯 대뜸, '그렇잖아도 어머님께 기도부탁하려 했어요.' 했.

 

 “어머니, 기도해 주세요!

 우리아이들은 수시로 나에게 기도를 부탁한다. 나는 큰며느리의 기도 제목이 당연히 내 손자 고등학교졸업과 대학진학인 줄 알았다. 그렇잖아도 내 기도제목 1순위는 내 손자손녀들이니 느긋하게 이미 하고 있는 기도이니 걱정 말라는 식으로 받아넘기고 내 말부터 서둘러 털어놨다. 손자 졸업식에 둘이 갈 형편이 못되면 에미 혼자라도 다녀오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느냐 물어봤다. 비용은 내가 조금 보탤 테니 걱정하지 말고 휴가 날자만 미리 조정해보라며 생색부터 냈다. 그러나 큰며느리는 잠잠하게 내 말을 듣고 있더니 휴가 낼 형편이 안 된다고 했다. ‘무슨 일이 있구나,’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기도해 달라는 목소리도 예전의 톤이 아니었다. 다급하게 묻는 내게 친정아버지의 근황을 말하며 어머니의 기도가 필요하다고 재차 부탁했다.

 

 “친구 같은 사돈들이다.

 내 친구들이 아들딸들을 혼인시키며 사돈지간에 허물없이 친구 같이 지내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친구 같은 사돈을 만난다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았다.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를 내듯 나 혼자 바람으로는 되지 않을 듯싶었다. 측간과 사돈집은 멀어야 한다는 속담이 있듯 사돈을 친구 같은 사이로 지내자면 ‘예의도 모르는 쌍것’들로 오해 받기가 십상일 것 같았다. 자식들을 나눠가졌으니 친구처럼 지내는 것이 좋으련만, 배우지 못한 집안이라 흉이라도 잡힐까 걱정이 뒤따랐다. 그래서 나는 우리집안에 맞는 좋은 며느리가 들어오기를 위해 기도했지만, 친구 같은 사돈들을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 내 기도가 이루어졌다. 첫째, 둘째며느리 친정부모는 모두 교회의 직분인 장로권사님들이었다. 우리내외 장로권사가 합쳐 3가정 6명의 장로권사들이 의기투합하여 말이 통하는 사이가 되고 보니, 첫 만남부터 사돈이란 단어는 맥을 못 추고 있었다. '사돈딱지를 떼고 친구로 만들어 줘 고맙다.'고 한다.

 

  “우리사이는 사돈이지”

 큰며느리아버님이 제일 연장자이시다. 우리남편과 막내며느리 친정아버님은 동갑이지만 우리장로님 생신이 두서너 달 앞서 있으니 막내며느리아버님이 막내가 된다. 그래서 호칭을 장로권사님으로 부르니 어색함 없이 친구이상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었다. 큰아들 집에 일이 있으면 큰 사돈내외는 물론 작은아들 사돈내외까지 청한다. 작은아들 집에 일이 있어도 마찬가지로 큰사돈을 청하니 모두 좋아라한다. 이렇게 우리사돈들은 무슨 핑계를 대든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일부러 만들었고, 수시로 모이는 날이면 아이들보다 더 신이 나서 떠들며 재미있어라 했다. 우리 결혼 초기에 남편은 짓궂은 장난기가 발동했나보다. ‘여보, 당신’이 입에 붙지 않아 호칭이 어정쩡할 때인 것 같다. 남편은 나에게 우리의 호칭을 정하자며 우리가 무슨 사인가 관계를 물은 적이 있었다. 묻는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일부러 엉뚱한 답을 했다. 내 대답은 '우리사이는 사돈지간'이라 했다. 정색하며 되묻는 남편에게 우리부모와 당신 부모들이 사돈이고, 내형제와 당신형제들이 사돈이니 우리도 사돈인 것이 맞지 않느냐고 했다. 이후, 남편은 가끔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사돈’하며 나를 부른다. 사돈이 된 까닭을 모르는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했었다.

 

  “나뿐 친구가 찾아 왔나보다.”

 큰며느리 친정아버님은 해병대를 창설하신 고급장교 출신이다. 금년 연세가 85~6세쯤인 것으로 안다. 현역 당시 채명신 장군을 도와 파월장병을 관리해 유공훈장을 받았고, 탤런트 임채무가 자기를 연기자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준 은인이라며, KBS TV 는 사랑을 싣고’ 프로그램에서 찾았던 분이다. 정년퇴직 이후 카이로프라틱이라는 건강관리요법을 습득해 기독교 선교선()을 타고 남서해안 작은 섬에 의료선교를 쉬지 않고 다녔던 분이다. 우리들이 만나는 순간에도 안사돈들을 식당에 엎드려 놓고, 추나요법이라며 건강관리와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자신의 건강을 자랑하던 분이었다. 지난 설날에 안부를 물어 건강하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며칠 전, 건강검진 결과 대장암이 발견되었으나 결과가 좋지 않아 수술도 포기한 상태다. 놀란 자녀들이 기도를 부탁하고 있다. “나쁜 친구가 찾아왔나 보다.” 먼저 우리아이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 보았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 누가 거역할 수 있을까?”

 사돈인지 친구인지 구별 없이 지내던 우리에게 이별의 순간이 예고도 없이 맨 처음 우리 집에 찾아왔다. 장수하는 집안이라 자랑하며 한겨울에도 냉수마찰로 건강을 유지하며, 건강식이라면 뱀탕까지도 들이키던 내 남편이었다. 친정동생이 개소주와 염소즙을 보내오면 자기 것은 물론 내 것까지도 다 먹어치우는 사람이다. 천년만년 살 것 같이 기분 나쁜 말은 하지 말라던 그에게, 어느 날 갑자기 '나쁜 친구'가 찾아왔다.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는 나에게, 남편은 평소와 달리 웃으며 걱정말라 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 누가 거역할 수 있느냐?” 도리어 나를 위로하던 그였다. 평소의 믿음대로 자기 생명을 하나님께 맡기는 그의 모습은 놀랍도록 평온해 보였다. 1개월의 시한부를 4개월 동안 연장하며 단 한 번도 고통을 호소하지 않았다. 중환자실에서 하나님을 만나본 남편은 내 손을 잡고 편안하게 하늘나라로 떠났다. 나와 우리 모자는 지금도 아빠의 부재를 말하지 않는다.

 

  “우리 아빠 위해, 기도 해 주세요.

 큰며느리의 기도부탁을 받고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엄마아빠들은 세상의 이치와 자연의 순리를 이해할 나이들이니 황망 중에도 받아들일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젊은 아들딸들은 도저히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사실일 것 같다. 전에 링거며 각종 주사바늘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피골이 상접한 아빠의 병상사진을 SNS에 올리며 “병마와 싸우는 우리아빠에게 힘이 되어 달라!”며 애타게 세상 사람들을 향해 기도를 부탁하던 우리 아들들이 생각났다. 지금 우리 큰며느리 자매들의 심정은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겠지. 한마디 덧붙였다.

 “네 시아버지처럼 고통 없이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우리 함께 기도하자.

 무슨 위로를 한들 아직은 실감이 나질 않을 며느리에게 자주 문안을 들여 엄마아빠에게 힘이 되라고 귀뜸을 해 주었다.

                                                                          (2019.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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