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족선사. 화담 서경덕. 황진이

2019.04.22 18:09

김학 조회 수:162

지족선사 ‧ 화담 서경덕 그리고 황진이


- 5백년 고려의 수도 개성 방문기(4) -


                                           김 학








조선시대의 이름난 기생 황진이는 개성이 낳은 만능 연예인이었다. 시‧서‧화‧창‧무(詩‧書‧畵‧唱‧舞)는 물론 아름다운 용모에 가야금과 거문고 등 악기연주능력 그리고 음주와 손님 접대 등 뛰어난 재능과 교양을 갖춘 그 시대의 대표적인 예술인이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연예인이 있다면 그 몸값인 출연료가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이다.




개성을 떠올리면 역사의 무덤 속에 묻혀진 인물들이 줄지어 나타난다. 고려시대의 인물로는 태조 왕건을 비롯하여 최영 장군, 포은 정몽주, 신돈, 공민왕, 노국공주 등이 생각나고, 조선시대로 내려오면 지족선사와 화담 서경덕 그리고 황진이를 빼놓을 수 없다. 황진이는 그 시대 개성의 마당발이었던 것 같다. 미모와 재주를 겸비한 황진이는 많은 선비들과 교유하며 온갖 에피소드를 남겼다.


조선시대에는 인터넷이나 텔레비전 그리고 스포츠신문도 없었지만 황진이의 공격적인 남성편력은 눈부셨고, 그녀의 갖가지 일화는 5백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의 흥미를 끈다. 그러기에 황진이는 휴전선을 넘나들며 남과 북에서 소설과 드라마, 영화의 주인공으로 부각되었으리라.


황진이 때문에 대표적으로 피해를 당한 사람은 바로 지족선사(知足禪師)라 할 수 있다. 10년 수도한 지족선사가 황진이의 눈웃음 한 번에 넘어가 파계를 했다고 사람들은 비웃는다. 하지만 지족선사야말로 너무도 인간적이고 정이 많은 스님이었던 것 같다. 죽으면 썩을 몸인데 살았을 때 자기 몸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육보시(肉普施)를 하는 것도 공덕이 되려니 여겼을지도 모른다. 도(道)보다 본능에 충실한 지족선사가 손가락질을 받을수록 황진이의 성가는 더 높아졌을 것이다. 자기를 낮춰서 남을 높여 줄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족선사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지족선사가 황진이의 꼬임에 넘어가 파계를 했기에 우리들은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이란 교훈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지족선사의 큰 공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지족선사야말로 자기의 몸과 명예마저 헌신짝처럼 버린 진짜 고승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족선사야말로 통이 크고 매력만점의 사내였던 것 같다.


지족선사에 비하면 화담 서경덕은 얄밉기 짝이 없는 위인이다. 자신의 명예 하나를 지키려고 본능을 꾹꾹 눌러 참은 이기적인 선비가 바로 화담 서경덕이다. 황진이가 자기의 처소로 찾아와 유혹할 때 화담은 참느라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를 악무느라고 이빨이 다 망가졌을지도 모른다. 그때 화담의 마음속에서는 이성과 본능의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겠는가. 황진이의 유혹을 그렇게 무참하게 거절하고도 어찌 사내대장부라 이르랴. 혹시 그때는 비아그라도 없었는데 화담의 나이가 많아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그런가 하면 황진이는 참 너그러운 여인이었던 것 같다. 자기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았거나 받아주지 못했던 화담 서경덕이 몹시 얄미웠을 텐데 미워하기는커녕 오히려 화담을 스승으로 모시며 송도삼절(松都三絶)의 하나로 추앙해 주었으니 말이다. 그것은 어쩌면 황진이가 화담 서경덕과 박연폭포를 끌어들여 송도삼절이라 하고 더불어 인기를 끌려는 작전이 아니었을까?


2008년 8월 12일 내가 개성을 찾았을 때 나는 화담 서경덕이나 포은 정몽주보다 사람냄새가 물씬 나는 지족선사를 더 만나보고 싶었다. 그 지족선사와 화담 서경덕을 상상의 스튜디오에 모시고 대화를 나누게 해 드렸다. 그들은 그 시대를 대표할 정도로 사회적 명성이 높았으니 서로 형님 아우님 하지는 않았어도 알고 지내던 사이였을 것이다.




*지족: “화담, 왜 그렇게 황진이를 슬프게 하셨소? 너무 비신사적인 처사가 아니오?”


*화담: “선사께서 파계하셨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선비인 나마저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지족: “지금은 억불숭유(抑佛崇儒)의 조선시대요. 만일 불교국인 고려시대라면 나를 그렇게 매도할 수 있겠소이까?”


*화담: “그게 무슨 말씀이오?”


*지족: “지금은 유교의 나라이니 나를 깔아뭉개서 불교이미지까지 나쁘게 하려 한 게 아니겠소?”


*화담: “그건 논리의 비약이 아닐까요?”


*지족: “하하, 농담이오. 나는 황진이를 한 번 품어본 대가로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이 되었지만 후회는 없소. 진이를 안아보지 못한 화담 당신은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것이오. 황진이와 당신 그리고 박연폭포를 일컬어 송도삼절(松都三絶)이라 한 걸 보시구려. 황진이, 그 아이가 참 영리하다고 생각지 않으시오? 사실 송도의 명물은 바로 가슴이 넓은 나 지족선사라고 해야 옳을 것이오. 나야말로 원하는 이에게 무엇이든지 내가 가진 것을 다 주는 불자가 아니오? 나는 요즘 몸과 마음이 얼마나 가벼운지 모른다오. 화담도 그렇게 한 번 살아보고 싶지 않으시오?”




지족선사와 화담의 대화를 엿들은 황진이는 빙긋이 미소만 지을 뿐 입을 열지 않는다. 황진이 자신의 마음을 꿰뚫은 지족선사의 설법에 고개를 끄덕거리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송도삼절’이 아니라 지족선사와 화담 서경덕 그리고 황진이를 한 덩어리로 묶어서 개성을 빛낸 ‘개성3걸’이라 우러러 주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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