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전주알리미를 자원하는 이유

2019.04.23 06:35

정남숙 조회 수:25

내가 전주알리미를 자원하는 이유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정남숙

 

 

 

 

 

  “전주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무엇인가요?

 내가 관람객에게 전시실 유물에 대한 해설을 시작하기 전 제일 먼저 물어보는 말이다. 그들의 답을 듣고 또 다음 질문을 한다. 내 고향 전주의 자랑거리가 하도 많아 모두 알려주고 싶은데 관람객들의 머물 수 있는 시간과 그들의 눈높이를 알아야 거기에 맞는 내 고향 전주자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0년 전, 40여 년이 넘도록 꿈에서도 그리웠던 고향으로 돌아왔다. 한옥마을이 조성되고, 관광객들이 모여들고 있다. 내 귀향을 궁금해 하며 나와의 인연을 끊기 어려워 서운해 하던 오랜 서울지기들이 축하한다며 무리무리 찾아온다. 내 서울살이 때 늘상 입버릇처럼 달고 살던 내 고향 전주자랑을 이제 현장에서 해 줄 수 있어 좋다. 고향은 비록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전주사람들이 나에게 잘 돌아왔노라 반겨주지 않아도 나는 좋다. 친구들에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전주자랑을 한 아름씩 안고 돌아갈 수 있게 했다. 내 고향 전주는40여 년의 객지생활에 힘들어도 견디며 살아갈 수 있는 커다란 버팀목이었다. 남들 앞에 우뚝 세워준 나의 기댈 언덕이었다. 지역갈등으로 외로울 때, 내 든든한 울타리로 나를 보호하고 지켜주는 나의 자부심(自負心) 그 자체로 작용하고 있었다.

 

 몇 주 전부터 우리 알림판에 ‘OO과 학생 60여 명’ 단체관람 예약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예약시간이 지나도 관람객들이 오지 않았다. 예약자에게 확인전화를 해봤다. 우리 데스크에서 옮겨 메모를 하는 중 시간을 잘 못 적어놓아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 퇴근시간이 지났어도 미리 예약한 손님들을 놓고 퇴근할 수는 없었다. 예약한 시간을 기다렸다. 대학교 이름은 없고 OO과 학생 60여 명으로 적혀있어 어느 지역 학생일까 궁금했다. 입구에 나가 서성이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만나고보니 시내소재 대학 금년 신입생 새내기들이었다. 60여 명의 학생들을 다른 해설사 선생님과 두 무리로 나누어 나는 먼저 2층 역사실로 향했다. 입구에 모아놓고 내 소개를 한 다음, 이 지역 대학생이라기에 첫 물음을 바꾸었다. 우리지역 역사나 문화는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것 같아 친근감이 들었다. 이곳 박물관에 한 번이라도 와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 했다.

 

 나의 해설 방법은 전시물을 일괄적으로 해설만 해주지는 않는다. 나는 먼저 물어 대답을 듣고 또 이어 다른 것을 물어보면서 관람객들과 눈높이를 맞춰가며 그들의 수준으로 높낮이를 조절해 내 나름의 해설과 스토리텔링을 이어간다. 그런데 손 드는 학생들이 하나도 없다. 심지어 태조 어진 앞에서 이 분이 누구신가 물어도 대답하는 학생들은 소수다. 황당하여 주거지가 어디냐고 물어보니 전국구다. 아예 전주시민이 아닌 것으로 간주하고 전주 역사부터 알려주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부탁했다. 교육의 명문 전주에서 학업을 할 수 있는 것은 행운이다. 학부를 마치는 4~7년 동안 머물러 있을 곳, 나의 모교가 자리하고 있는 이곳 전주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배워 알고 갔으면 좋겠다. 전주는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여러분들의 삶에 큰 자부심이 될 자랑거리를 하나씩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부탁하니 대답은 막내아들 수준이었다.

 

  내가 이토록 열심히 내 고향 전주를 알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누군가 시켜서도 아니요 대가를 받기 위함도 아니다. 처음엔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들에게 전주자랑을 제대로 해 주고 싶었다. 전주시청에 해설사를 부탁해 봤으나 별로였다. 돌려보내고 내 나름대로 설명을 해주니 친구들은 내가 해설사보다 알아듣기 쉽다고 했다. 열 팀 이상 친구들에게 한옥마을을 안내하며 설명을 해주다 보니, 내 고향 전주를 품위 있게 해설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내가 해설사 자격을 갖고 싶었다. 일반시민이 전해주는 역사이야기보다 전문가의 문화해설이 신뢰감을 더해줄 것 같았다. 바로 시청에 문의해보니 나이가 넘어 자격이 없다고 했다. 나는 처음부터 대가를 바라지 않았으니 명예해설사라는 명목으로 교육만 받게 해달라고 해 봤으나 곧바로 묵살당하고 말았다.

 

  한 가지 또 다른 이유는, 내 자존감을 지킬 수 있게 해준 내 자부심 내 고향이기 때문이다. 맨 처음 서울에서 생활하게 된 곳이 산동네 빈민촌 근처였다. 낯설고 물설어 촌닭모습을 벗어나지 못한 시절이었다. 이웃에 우리보다 일찍부터 살고 있던 어느 신문기자 내외분이 있었다. 산동네 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분의 생활모습이나 언행은 보통사람과 달랐다. 나는 통성명할 기회가 있어 내 고향 전주를 소개했다. 광주분이라던 기자 분은 그 이후 주변 많은 사람들에게 나도 모르게 우리내외 이야기며 전주출신이란 이야기를 하고 다녔나보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가까워지니 그 기자가 우리내외를 평하며 붙여준 이름들이 많음을 알 수 있었다. 남편이 안동 권씨라서인지 우리를 ‘양반가문’ 후손으로 인정해 주었다. 전주의 대명사인 우리나라 최고 명문고 출신 ‘엘리트 부부’로 박학다식함과 요즘 보기 드문 ‘잉꼬부부’라 부르기도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우리부부의 위상을 이렇게 탈바꿈시켜 놓았다. 이웃들의 시선과 태도에 실망을 주지 않으려 행동거지에 신경을 쓰며 살았다.

 

  이제는 정정당당하게 자격을 갖춘 문화해설사가 되었다. 국립전주박물관 소속으로 9년째를 맞는다. 맘껏 내 고향 전주자랑을 할 수 있어 좋다. 그런데 자랑할 수 없는 것이 하나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교육도시라는 타이틀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전국 학력평가에서 만년 꼴찌다. 진보교육을 외치며 3선 연임을 하고 있는 교육감은 전북교육을 얼마나 진보시켜 놓았는지 묻고 싶다. 첫 임기당시 자신의 이념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육부와 각을 세워 전북교육에 필요한 제반 혜택을 거절하여 많은 학생들에게 피해를 입혔던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3선 째인 지금 또 개인의 철학을 앞세워 독선과 아집을 부리고 있다. 어느 기관이든 수장이라는 사람은 자기주장은 펴되 주위의 의사를 존중하여 합리적인 결론에 따라 정책을 펴야 할 것이다. 특히 ‘국가의 백년지계’인 교육에는 개인의 의사는 덮어 놓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전주의 하나 남은 자부심이며 전주시민의 자존심이 되는 명문고를 없애고자 온갖 논리를 앞세우고 있다.

 

  주위로부터 관심과 시선을 받다보니 내 고향은 내 자부심을 한껏 높여주었고, 내 고향의 이름에 누를 끼치지 않으려는 삶을 살아온 것 같다. 양반가문에 맞게 행동하며 엘리트 부부로 생활하게 되니, 어느새 나는 주위의 멘토가 되어 있었다. 내가 하는 말은 신뢰감을 얻게 되어 주위의 시각을 무시할 수 없어 불편하다. 하지만, 내 자존감을 지킬 수 있게 해준 내 고향을 아무리 자랑해도 모자랄 것 같다. 나에게는 전북에서 교육받을 직계나 방계도 없다. 밖에서 무시하면 참을 수 있다. 그런데 내부에서 비겁한 방법으로,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우리의 자부심을 무너뜨리려는 못난 일들은 제발 말아주었으면 한다. 내 고향 전주의 자랑인 역사와 문화, 교육의 자부심을 널리 알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19.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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