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떠난 뒤에

2019.04.25 06:56

김효순 조회 수:9

임 떠난 뒤에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김효순

 

 

 

 

 

 그가 먼 길을 떠났다. 우루루 피어나서 세상을 환히 밝히던 벚꽂잎들이 하롱하롱 흩날리던 날이었다. 나를 보고 웃으면서 손을 흔들던 그가 돌아섰다. 그의 뒷모습을 보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덤덤하던 가슴에서 울컥하는 것이 올라왔다. 예상하지 못한 느낌이었다.

 고속도로로 달려가도 거의 두 시간이 걸리는 곳에 직장이 있는 그가 집 밖에서 밤을 새우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었다. 직장 근처에 숙소를 정해두고 주말 부부로 지내기도 했다. 지난달에는 교직에서 은퇴한 친구와 열흘 간 베트남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는데, 그때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그가 가는 남아메리카대륙은 물리적으로 너무나 먼 거리라서 그럴 것이다. 마음으로 느껴지는 거리는 짐작도 안 될 만큼 더 아득하다.

 

 그를 보낸 내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집 옆에 있는 화산공원으로 이어졌. 인기척이 뜸한 봄 한낮의 산 속에서는 춘정에 겨운 산새들의 세레나데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늘상 그와 함께 걸었던 공원길에 나 혼자 찾아와서일까, 새들이 한동안 지저귐을 멈추고 내 눈치를 살폈다. 새 움을 틔우느라 여념이 없던 나무들은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마른 가지를 흔들며 위로 인사를 건넸다.

 나는 짐짓 바쁜 일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잰 걸음으로 걸어서 그와 나란히 앉곤 했던 그 벤치에 닿았다. 옆 자리에는 먼저 온 부부가 나란히 앉아서 물을 나눠 마시고 있었다. 멀리 전주천변이 눈에 들어왔다. 연두색 물이 오른 버드나무 아래로 자동차들은 바삐 오간다.

 남아메리카대륙을 여행하려면 비행기를 열 번도 더 타고 이동하는 고난의 여정이라는 말에 나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포기해 버렸는데, 때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그를 따라나설 걸.

 갈 곳 없는 나그네 심정이 이럴까? 화산공원에서 내려와 전주 천변을 서성이다가 찻집에도 들렀다. , 동네 목욕탕에 들어가 얼마나 시간을 보냈을까. 밖으로 나오니 도시는 불야성이었다. 전등을 밝혀 방 안의 어둠을 몰아내고 소파에 털썩 몸을 부린다. TV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지만 화면에 머무는 시선은 맥이 없다.

 

 그때 아버지는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친정아버지는 노년에 홀로 남아 큰 집을 지키면서 지내셨다. 낮에는 그냥저냥 견딜 만한데 외출했다가 불 꺼진 집 안에 들어설 때면 서글프다는 푸념을 하시곤 했다. 그 말씀을 그냥 건성으로 들어 넘겼던 불효에 대한 회한까지 새록새록 사무쳐 오는 긴 긴 밤이었다.

 깨어 있다가 눈을 감았다가를 반복하다보니 그럭저럭 날이 밝았다. 지난 밤 저녁밥을 건너 띈 배가 출출해졌다. 계란 후라이라도 해 먹어야지 싶어 가스렌지 위에 팬을 올리고 뒤 베란다로 나갔다. 무심코 계란을 집어 들고 온 내 손을 보고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손 안에는 계란 두 알이 들려 있는 게 아닌가.     

                                                  (2019.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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