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루

2019.04.27 14:11

곽창선 조회 수:5

 어느 하루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곽창선

 

 

 

 

 

 새벽에 일어나면 먼저 핸드폰을 켜는 버릇이 있다. 밤새 찾아준 벗들의 소식을 만나 정을 나누고, 새겨들을 글이나 노래를 듣는다. 핸드폰은 다른 도움 없이도, 보고, 듣고, 읽을거리를 만나 노년의 보람을 얻을 수 있으니 둘도 없는 나의 도우미다. 좋은 글과 경음악이 담겨진 버튼을 누르고, 홀로 익힌 효자손을 이용하여 온몸에 자극을 준다. 발바닥, 장단지, 허벅지, 등허리, 두드리고 싶은 곳을 찾아 20여 분 두드리고 나면, 온몸에 긴장이 풀리고 정신이 맑아진다. 그리고 도리도리 목운동을 격식 없이 10여 분 하고, 경음악에 맞춰 도움지기에게도 서비스 해주고 나서, 따뜻한 물 한 컵을 마시며 베란다 창문을 연다.

 

 아침 7시쯤이면 손자들 뒷바라지 때문에 몸과 마음이 바빠진다. 어제 나들이로 피곤해 하는 아이들을 깨우고자 거실 문을 열고 <TV 딩동댕> 유치원 채널의 리모컨을 누른다. 잠귀 밝은 둘째 국희는 배시시 눈을 뜨고 일어나 손뼉을 치며 따라 부른다. 그런데 첫째 현성이는 이불을  감고 돌아누우며 귀찮은 표정이다. 잠이 부족한 모양이다. 깨워서, 어르고 달래고, 씻겨, 옷을 입히고, 밥을 먹여, 등원버스에 오르기까지는 많은 인내가 뒤따른다. 이러한 아이들과의 술래잡기는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하루 일과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    

 

 아이들이 등원하고 나면 지저분한 거실을 대충 정리하고 소파에 앉아 TV아침마당 프로그램에 묻혀 웃으며 긴장을 달랜다. 아침 프로그램은 유익한 정보가 많아서 자주 보는 편이다. 오늘은 인생의 단맛 쓴 맛을 다 경험한 출연자들의 맛깔스런 인생역경에 담긴 사연, 한 소절 한 소절이 심금을 울려준다사람마다 역경을 꿋꿋하게 견디며 승리한 그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오늘은 아내의 배려로 따뜻한 생강차  한잔을 마시니 그 맛이 여느 날과 다르다. 누군가처럼 베란다 의자에 앉아서 창밖을 보며 아메리카노 향에 취해 새봄의 정취는 맛볼 수 없지만 소박한 친절이 싫지만 않다. 그래서 오늘 아침 출발은 굿 나이스다.

 컴퓨터 앞에 붙여 놓은 계획표를 보며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진다. 강의노트를 복기하며 글을 수정해 보니 쉽지 않은 고행길이다. 남들은 힘 드리지 않고 멋진 글을 써 오는데 나는 영 시원치 않으니 부끄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글을 쓰려면 타고난 적성도 필요하지만 부단한 노력이 필수임을 깨닫지만 도통 머리에 남는 게 없으니 답답할 뿐이다.

 

 요즘 날씨는 변덕이 심하다. 오늘도 이슬비가 내린다. 묘령의 벗과 다리 옆 필드에서 만나기로 약속되어 늦지 않게 차를 몰았다. 도착해서 보니 달랑 나 혼자다. 이슬비가 오락가락 내리니 오지 말라고 전화를 했다. 아기 때문에 잘 됐다며 반기는 목소리다. 다음으로 미루고 인적 드문 필드를 혼자 돌다 보니 곳곳에 물이 차서 볼을 굴릴 수가 없다. 빗방울이 늘어나 운동을 포기하고 다리 밑에서, 짙은 향의 커피는 아니지만 믹스 커피로 목을 축이고, 모악산을 휘어 넘는 구름결에, 남은 한 잔의 커피를 고시래 하며 날려 보냈다.

 

 감기 몸살로 지친 심신을 달래려 목욕탕으로 갔다. 마을 목욕탕은 비번이라 서신 G탕에서 세신을 하고 친구와 점심까지 해결하고 집에 오니 아내가 반겼다. 커피 한 잔 얻어 마시고 TV에서 국내외 동향을 살폈다. 그러나 오후 프로그램은 암울한 정치권의 드잡이식 막장 드라마 의 연속이다, 안락의자에서 보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유아원 버스가 올 시간이면 승강장으로 마중을 나가야 한다. 오늘은 아내 차례다. 그런데 정시에 도착하던 버스가 오지 않는다고 아내의 전화가 왔다. 기다려 보라고 했지만 내 마음도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세상이 어수선하니 아이 부모들은 늘 좌불안석이다. 유아원에 전화를 해보니 운행 중 차질이 있었다며 곧 도착할 것이라는 소리에 안도의 숨이 나온다.

 

 “할아버지, 차들이 싸움 했어요”

 “응, 왜 싸웠다니?

 “몰라, 소리를 지르고 그랬어요.

현성이가 현관에 들어서며 쫑알거렸다. 아이들 표정을 재빨리 확인해보니 불만이 없어 보였다. 아이들 신상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쩔까, 하는 노파심 때문이다. 이래저래 아이들 키우기가 이렇게 힘드니 어쩌면 좋겠는가?  

 

 처음 아이를 돌보겠다니 염려해 주는 이웃들의 충고를 뒤로하고 사서 하는 고생이라 남의 탓을 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고생도 되지만 보람 또한 크다. 노년에 무엇이 그리 큰 기쁨을 나에게 주랴? 때로는 친구요, 상전이며, 웃음주머니인 아이들은 '나만이 느끼는 옹골찬 복 주머니'라고 자위해 본다.

 

 오늘도 아이들과 어울려 퍼즐놀이에 열중인 아내가 천진해 보인다. 다양한 형태의 퍼즐을 맞추려 진땀을 흘리는 모습이 흥미롭다. 제가 할머니보다 잘한다며 우쭐대는 여섯 살짜리 현성이 모습이 대견스럽다. 써놓은 글을 복기하며 아이들을 살펴보니 모두 편안히 잠이 들었다.

                                                                    (2019.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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