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08 07:28
어머니의 손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한성덕
해마다 찾아오는 어버이날은 ‘효도의 날’이다. 비단 그날만이랴마는 그때만이라도 효자가 되라는 정부의 가르침인 걸 어찌하랴? 별별 시답잖은 소리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더 효도하며 살아야지.
어버이날이 다가오지만, 큰딸은 해외선교지에 있으니 올 리 만무하고, 제주도에 있는 작은딸은 오겠지, 하다가도 ‘뭘, 부모의 생일도 아닌데!’하고 이내 지워버렸다. 그런데 지난주 금요일 오후(3일)였다. 초인종이 울려서 택배가 왔나 싶었는데, 작은딸이 영상에 비치는 게 아닌가? 예고도 없는 깜짝쇼에 그저 놀랍고 반가울 뿐이었다. 어린이날이 주일(일요일)이어서 대체 휴일로 월요일까지 이어지는, 그야말로 황금연휴여서 왔다고 했다.
여기, 어머니에 관한 시를 접하고 감동이 밀려와 어머니 생각이 났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해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로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심순덕-
신세대들이, ‘찬밥 한 덩이에 부뚜막’,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하는 것’, ‘발뒤꿈치가 해져 이불이 소리 내는 것’이나, ‘손톱을 깎지 못할 만큼 닳고 문드러진 엄마의 손’을 어찌 알 수 있을까마는, 그런 시대를 살아온 까닭에 절절이 내게 다가오는 것 같아서, 심순덕 시인의 시를 읽고 콧잔등이 시큰했다.
실제로, 나는 우리 어머니의 손이 원래부터 투박하고 남성처럼 거칠며 딱딱한 줄 알았다. 그 흔한 매니큐어 한 번 칠한 것을 본 적이 없고, 예쁜 장갑을 끼고 나들이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으며, 핸드크림으로 손을 보드랍게 해볼 생각은 아예 없는 줄 알았다.
그 시를 읽고서야, 어머니의 손이 원래부터 거칠지 않았음을, 어머니의 마음이 원래부터 억척이지 않았음을, 그리고 멋도, 여유도, 나들이도, 때로는 사치도 할 수 있는 우리 어머니였음을 알았다.
젊어서는, 자식들이 해드리는 것을 너무 아끼는 어머니가 이해되지 않았다. 철이 들어서는, 생소한 것이 어줍고 사치로 여기시는 줄 알았다. 더 철이 들어서는, 다섯 자식을 키우신 어머니의 희생에 감사하며, 먼 하늘을 응시한 채 먹먹한 가슴을 때린 적도 있었다.
어머니는 지금 요양원에 계신다. 95세니까 기쁨을 유발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의 손톱에서 빨간색 매니큐어가 반들거리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손을 덥석 잡고 한참동안 만지작거렸다. 보드라운 아이살의 촉감이었다. 아직도 한겨울인데 손이 이렇게 부드러워질 수 있을까? 늙으면 아이가 된다는데 손부터 부드러워지나 싶었다. 그 보드라운 손이 자식들 때문에 거칠어졌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울컥했다.
매니큐어 바른 것을 칭찬하자, 요양원 선생님들이 해줬다며 몹시 좋아하셨다. 생전 처음 해 본 것이지만, 색감이 맘에 들었는지 마음껏 자랑하셨다. 예전에 느끼지 못하셨던 어머니의 환한 모습이 유난히 아름다웠다.
어머니의 행복해하시는 모습에서, ‘기쁨을 유발하기 쉽지 않은 나이’로 생각했던 게 찌꺼기처럼 남아있다. 오늘 어버이날에야 비로소, 매니큐어를 칠하셨던 어머니의 빨간 손가락, 그 두 손이 자식의 죄책감을 감싸주었다.
(2019. 5. 8. 어버이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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