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 카네이션

2019.05.12 06:21

정남숙 조회 수:53

골드 카네이션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정남숙

 

 

 

 

  봄기운과 함께 봄빛이 5월을 맞아 더욱 짙어졌다. 유별나게 기념일이 많은 가정의 달 5월을 맞는 젊은 가장들은 걱정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 한다. 아이, 부모, 스승, 성년이 되는 자녀 등 그 어느 곳 하나 소홀히 하지 못할 기념일이 5월에 빼곡히 들어있기 때문이다. 소비라 생각하지 말고 ‘피하지 못할 바엔 즐겨라’ 라는 말이 있듯 내가 보살펴야 할 곳이 있음을 감사하며,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즐거운 5월’이라 생각을 바꾸면 좋겠다.

   

 며칠 있으면 어버이날이다. 문우의 등단 축하화분을 사려 화원엘 들렀다. 5월이 다가오니 꽃 파는 가게마다 가득하던 카네이션이 여기서도 나를 반겼다. 주인이 화분을 제작하는 동안 나는 넋을 잃고 빨간 카네이션에 빠져들었다. 저 꽃을 당장 사가지고 부모님께 달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하늘나라에 계신 두 분께 꽃을 달아드릴 수가 없다. 10여 년 전부터 해마다 5월이 오면 카네이션을 보며 눈시울을 적신다. 어머니가 5월에 하늘나라에 가셨기 때문에 커다란 붉은 카네이션 화환 2개를 만들어 마지막으로 부모님 산소에 가져다 놓았다. 지난 수십 년간 가끔 어버이날이면 고향집으로 달려왔었다. 얼굴만 봐도 반가워하시는 어머니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며 작은 선물로 감사를 표시할 때마다 카네이션을 달고 흐뭇해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이제는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 고희를 훌쩍 넘긴 나이지만 갈수록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과 사랑이 가슴속 깊이 저리도록 그리워진다.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5월의 꽃시장은 호황중의 호황이라 한다. 그 중 특히 카네이션은 5월의 꽃으로 인기가 최고라 한다언제부터인가 어버이날마다 부모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렸기 때문이다. 카네이션은 자태가 화려하지는 않지만 다른 꽃들과 비교할 수 없는 끈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 '부모님과 스승'을 연상하게 하는 꽃으로 알려졌다. 카네이션은 장미, 국화와 함께 세계 3대 절화(折花; 꽂이 꽃)로 불리는데, 지중해가 원산지이지만 농촌진흥청에서 25개의 품종을 육성하여 농가에 보급하고 있다고 한다. 흰색, 노랑, 빨강, 분홍, 보라, 복색 등 다양한 화색이 있으며, 국내에서는 분홍색 , 빨간색, 흰색이 주요 품종이라고 한다. 카네이션은 꽃 색깔에 따라 다양한 꽃말을 지니고 있다. 가장 일반적인 붉은색 카네이션은 건강을 비는 ‘사랑과 존경’을 뜻한다.

 

  어버이날 이른 아침에 작은아들과 달리 말수가 적은 큰아들의 문자가 왔다.

  “쑥스러운 마음에 자주 표현하진 못하지만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오래오래 함께해 주세요. 사랑합니다.

 읽다보니 코끝이 시큰해졌다. 옆에 있기만 해도 든든하고, 바라만 봐도 믿음직한 내 아들들이다. 어설픈 부모 밑에서 잘 자라 준 아들들이 고맙고 대견해 도리어 미안하여 부모반성문이라도 써야할 입장인데

 “어머니 사랑해요,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아들들의 전화가 잇달아 빗발친다. 제 부모를 닮은 내 손자는 해마다 제 부모에게 받은 용돈으로 어버이날 할머니 선물을 준비해 준다. 초등학교시절엔 색종이를 오려 카네이션을 만들어 채워주더니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종이 꽃 대신 카네이션꽃모양의 예쁜 꽃 부로찌를 해마다 보내준다. 번갈아 카네이션 부로찌는 내 겉옷에 붙어 일 년 내내 나를 따라다니고 있다. 미국 유학가기 직전엔 더운 날씨에 요긴하게 쓸 수 있는 망사에 수놓인 양산을 선물하고 떠났다.

 

  딸 같은 며느리들과 긴 통화를 마치고, 지난해 손녀딸들이 속내의와 함께 선물해준 여름 모자를 꺼내들고 거울 앞에 서보았다. 모자를 잘 쓰지 않기에 일 년을 그대로 묵혀놓고 있었다. 지금까지 방치해 놨던 것이 미안하고, 고맙단 말도 못한 대신으로 이 모자를 쓰고 이번 답사 땐 인증샷을 찍어 손녀딸에게 보내 줘야 할 것 같다. 직원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문자가 들어왔다. 우체국 택배다. 관리실에 물건을 맡겼으니 찾아가라는 내용이었다. 누구에게서 뭐가 왔을까? 내 아들과 며느리들은 조금 전까지 전화를 주고받았는데 아무런 언질이 없었기에 더 궁금했다.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와 관리실 물품보관소에서 박스하나를 찾았다. 라면상자 크기의 우체국 박스에는 건강 제품이 가득 담겨있었다. 역시 큰며느리였다. 미리 말하지 않은 것은 기대하지 않고 있다가 받으라는 깜짝쇼를 연출한 것 같다.

 

 내용물은 언제나 내 건강을 염려하며 큰며느리가 챙겨주는 건강식품이었다. 이번에는 홍삼 셋트와 유산균제품이다. 그런데 한 가지가 더 들어 있었다. 언뜻 보아 먹는 제품은 아니었다. 고급 보라색 봉투에 담긴 긴 네모난 박스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잔뜩 호기심을 안고 리본을 풀고 내용물을 확인해 보는 순간, ‘앗, 이럴 수가!’ 난생 처음 보는 것이었다. 장난인 줄 알았다.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살펴봤다. 글씨가 눈에 들어오고 표시된 내용을 알 수 있는 보증서까지 들어있었다. 나 혼자 보기는 아까웠다. 누구에게든 자랑을 하고 싶었다. 실물을 보이고 싶어 그대로 다시 포장을 하다 생각해보니 실물 자체는 무리인 것 같았다. 실물은 보관하고 인증샷을 찍어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하기로 맘을 먹었다. 제일 먼저 우리 다섯 자매 단톡방에 올렸다. 즉시 반응이 왔다. 내 자랑에 맞장구들을 쳐주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스마트폰을 꺼내 보여줬다. 나를 푼수 없는 시어미로 만든 그 주범은 다름 아닌, 24K 골드 카네이션 꽃’이었다. 작은며느리의 현금봉투와 함께 “실컷 즐기시라” 했다.

 

 어버이들에게도 예전에는 섬겨야할 스승과 부모님들이 계셨다. 지금처럼 깍듯하게 찾아뵙고 수선을 떨진 않았어도 나름대로 형편에 맞게 서운하지 않도록 관계를 유지하며 지내왔다. 그러나 지금은 옛날보다 더 자주 찾아뵙고 잘해드리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회한으로 남아 올해도 쓸쓸히 어버이날을 맞이하는 부모들이 많을 것 같다. 요즘 들어 '풍수지탄'이라는 옛 글이 더욱 간절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중국 전한(前漢)의 학자 한영(韓嬰)의 시경(詩經)구절에서 유래된 말이다. ‘바람과 나무의 탄식’이라는 뜻으로 효도를 다하지 못한 채 부모를 여읜 자식들의 슬픔을 이르는 말이다. ‘나무는 고요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질 아니하고, 자식이 봉양코자 하나 어버이는 기다려주시지 않는다. 흘러가면 좇을 수 없는 것이 세월이요, 가시면 다시 볼 수 없는 것이 어버이이어라'라는 뜻이.

 

 송강 정철의 훈민가(訓民歌) 중의 '자효(子孝)'가 있다. 어버이 살아신제 섬길일랑 다하여라./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 이뿐인가 하노라. 58일 어버이날은 어버이의 은혜에 감사하고, 어른과 노인을 공경하는 경로효친의 전통적 미덕을 기리는 기념일이다. 멀리 떨어져있어 어버이날에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했다면 오늘 당장은 아니더라도 이번 주말에 빨간 카네이션 생화 하나를 들고 찾아뵙는 것은 어떨까? 그래도 못 찾아뵐 사정이라면 안부전화라도 자주 드리면 좋겠다. 나에게도 찾아뵐 부모님, 아니 안부전화라도 드릴 부모님이 계신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후회하지 말고, 사랑하는 처자식에 대해 베푸는 사랑의 반만이라도 부모님에게 드렸으면 좋겠다.

                                                                              (2019.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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