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코미디

2019.05.13 19:56

김현준 조회 수:65

정치와 코미디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 현 준

 

 

 

 

  얼마 전 우크라이나 대선에서 코미디언 출신 젤렌스키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73%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는 마흔한 살의 정치 신인으로 TV 코미디 시리즈로 큰 인기를 끈 인물이다. 평범한 교사가 정치에 뛰어들어 대통령이 되는 드라마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게 주효했다. 교사가 정부 부패를 비판하는 영상을 올렸다가 폭발적인 지지로 대통령이 되는 과정을 젤렌스키가 열연했다. 그는 드라마 제목에서 이름을 딴 당을 만들고 작년 말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오렌지혁명을 이끌었던 전 총리 등 정치 거물들을 꺾고 드라마를 현실로 실현했다. 드라마 작가가 그의 신화를 만든 장본인이 되었다. 붕괴 직전의 나라 경제와 만연한 정부기관의 부패, 무력분쟁 등으로 삶과 현실에 지친 우크라이나 국민이 기성 정치인에게 등을 돌리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2015년엔 과테말라 대선에서 정치경험이 전무한 코미디언 모랄레스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선거 유세중 정치 명문가 출신인 상대 후보가‘국정이 코미디냐?'고 공격하자, 그는‘나는 사람들을 웃겨왔고 대통령이 된다면 국민을 울게 하진 않을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모랄레스는 상대 후보자의 두 배가 넘는 득표로 당선했다.

  지난해 슬로베니아에선 성대모사 정치풍자 쇼로 인기를 끈 배우가 최연소 총리로 당선되었다. 우리나라 성대모사 코미디언으로는 최o서가 제일이다. 전임 대통령들의 성대모사는 따를 자가 없다. 그가 대통령이 되었다 치면 어찌 될까? 수많은 대통령 보좌진과 각료들, 각종 위원회 위원들 - 웬 위원회는 어찌 그리도 많은지 - 을 통하여 얼마든지 통치할 수 있을 것 같다. 대국민 담화를 통하여 세계 원수들과의 성대모사를 잘 활용한다면, 백성들이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될 듯싶다. 자살을 앞둔 사람도 그의 다음 코미디를 기다리며 결단의 시기를 늦출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 조금 달리 생각하면, 요즘의 정치인들은 코미디언이 되고 싶어 안달이 난 것 같기도 하다. 그들의 수준 낮은 말실수, 엉뚱한 제스쳐, 자녀 취업을 위한 청탁 등 제 정신 가진 사람들이 할 짓이냐고 흥분하지 말고, 어릿광대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제대로 정치를 못하거나 광대노릇도 못하는 인물은 다음 선거에서 골라내어 실업자로 만들면 될 것이고.        

 

  몇 년 전 일본 미야자키 현 지사를 지낸 히데오는 코미디언 출신이다. 만담으로 인기를 얻은 그는 방송에 나와 지역 홍보에 발벗고 나섰다. 토산품 판매가 껑충 뛰었고, 미야자키산 망고는 유명 브랜드가 되었다. 혁신행정으로 지지율이 한때 90%까지 치솟았다.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 시장을 지낸 그나르는 정치인 풍자공연을 해오다가 친구들 권유로 창당을 하고 선거에 승리했다. 그는 4년간 시장직을 훌륭하게 수행한 뒤 정계를 떠났다.  

  정치에서 코미디언들의 약진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풍자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는 웃음정치가 성공요인이라는 분석이 있다. 정치 엘리트층에 대한 반감과 포퓰리즘이 정치와 코미디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잠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던 코미디 황제 이주일은 여의도를 떠나면서‘국회에는 나보다 더 코미디를 잘하는 사람이 많다.’고 웃긴 적이 있다. 사실 코미디언, 개그맨들은 알고 보면 머리가 비상하다. 그들의 재치와 애드리브, 순발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만큼 희극인들은 관객의 반응을 감각적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즉시 대응하는 능력이 있다. 그러니 그들이 정치인으로 진출한다면 유권자들의 기대와 반응에 민감하게 대응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까진 어렵다 해도 지방의원이나 국회의원 또는 지자체장으로 진출하는 희극인이 나오면 좋겠다.

  제발 쓴웃음이 아닌 진정으로 국민을 웃기는 그런 정치인들이 나왔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그런데 말이다. 참 좋은 정치, 웃게 하는 정치를 해도 언론에서 보도를 해주지 않으면 그만 아닌가? 이념적, 적대적 언론이 백성을 호도하는 것은 아닐까 싶을 때도 있다.

  환갑을 훌쩍 넘긴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아이스하키 친선경기에서 혼자 8골을 터뜨렸다. 지난 511일 아마추어 아이스하키 리그에 출전하여 경기 최다 득점을 올렸다고 러시아 언론은 야단이다. 쇼치 볼쇼이 아이스 돔에서 열린 경기에서 팀 동료들은 푸틴에게 득점 기회를 몰아주었고, 상대팀은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골키퍼는 막는 시늉이나 했을는지 모르겠다. 푸틴의 고단수 코미디 같아 쓴웃음이 나온다.

  로마의 네로 황제는 재위 기간에 아테네에 가서 고대 올림픽에 출전했다. 전차 경주 도중 굴러 떨어졌으나 나머지 선수들이 멈춰 섰고, 네로는 맨 먼저 들어와 우승을 차지했다. 푸틴의 다득점 신화는 네로의 코미디를 상기시키는 데자뷔 같다. 

                                           (2019.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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