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자리가 남긴 교훈

2019.05.15 07:17

전용창 조회 수:4

개자리가 남긴 교훈

꽃밭정이 수필문학회

신아문예대학 목요야간반 전 용 창

 

 

 

 

 

 신록의 계절 5월은 농부에게는 일 년 중 가장 바쁠 때다. 고추모도 심어야 하고, 참깨도 씨를 넣어야한다. 그뿐이랴? 가장 중요한 모내기를 해야 한다. 일을 마치고 오가는 들녘이 하루가 다르게 푸르름을 더해간다. 이미 고추심기는 다 끝났고, 모내기도 거의 끝났다. 그런데 이제야 트랙터로 개자리를 만드는 모습이 보였다. 트랙터로 개자리를 만들다니, 참으로 신기했다.

 5월에는 식물도 바쁘다. 식물은 공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와 뿌리에서 흡수한 물로 엽록체 안에서 당분을 만들어 에너지로 사용하고 식량으로 저장도 하는데, 5월이 춥지도 덥지도 않으니 탄소동화작용이 가장 왕성하게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때 다량의 산소를 방출하니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모른다. 5월의 푸르름과 풍부한 산소로 눈의 피로도 가시고 답답한 가슴도 활짝 열리니, 5월의 신록을 몇 백 번 칭찬해도 부족함이 없으리라.

  어느 시인은 5월의 아름다운 강산을《청산별곡》이란 시로 남겼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랑성 얄라리얄라~/

 

 아버지는 모내기를 하기 전에, 논에 물을 가득 담아놓고 써레질을 하셨다. 써레질이 끝나면 나도 아버지를 따라 ‘개자리'를 밟았다. 그때가 고등학생때였는데 나는 그 일이 힘들지는 않았으나 뙤약볕이 싫었고 일도 지루하여 대강대강 했었다. 그러니 아버지는 그렇게 밟으면 논물이 다 빠져 나간다며 내 뒤를 되짚어서 다시 한 번 밟아주셨다. 개자리를 밟아주는 이유가 논물이 새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임을 그때는 몰랐다. 벼농사는 물이 항상 가득 차야 한다는 것도 그 전에는 몰랐었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만드는 개자리를 트랙터는 물도 없는 상태에서 만드는 게 아닌가? 기계화영농으로 농사짓기는 참 편해졌으나 개자리의 추억도 사라져 버렸다.

 

 개자리는 쟁기질할 때 보습이 닿지 않는 논바닥과 논두렁의 경계면이다. 개자리가 어디 논바닥에만 있을까? 우리의 온돌구조에서도 개자리는 있다. 부뚜막에서 지피는 따뜻한 불길이 아랫목만 따뜻하게 하고 윗목은 그냥 지나가기에 우리의 조상은 윗목 구들 밑의 고래를 아랫목보다 더 깊게 파서 윗목까지 불기운이 오래도록 머물게 하였다. 그 결과 방바닥은 골고루 따뜻했다. 논바닥의 개자리는 물을 오래토록 담아두었고, 온돌의 개자리는 온기를 오래 담아둔 우리 조상들의 지혜였다.

 

 요즈음 경제는 어렵고 취업 문턱은 높아 실업자는 늘어만 가는데, 대기업은 수십 조의 현찰을 쌓아두고 돈 장사만 하고 있다고 한다. 가뭄에 대비한 개자리도 중요하지만 윗목도 아랫목처럼 따뜻하게 하는 온돌의 개자리도 있지 않은가? 나라 밖은 어떠한가? 강대국은 자국을 위한 보호무역이라며 담벼락을 더욱더 높게 쌓고 있다.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 경제는 불안한 심리가 소비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여기저기 임대로 나온 가게들이 많다. 개자리를 보면서 가뭄에는 물꼬를 터서 물을 아래 논으로도 보내주고, 온기를 윗목까지 머물게 한 우리 조상의 지혜를 생각하는 게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2019.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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