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잔치

2019.05.15 10:06

이진숙 조회 수:3

봄잔치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이진숙

 

 

 

 

 ‘이렇게 연약한 것이 어떻게 그 혹독한 추위를 이겨낼 수 있을까?겨우내 쓰지 않던 데크 위에 있는 야외용 테이블의 먼지들을 걸레로 닦아내고 바닥도 비로 싹싹 쓸어 깨끗하게 치우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서둘러 아침 설거지를 끝내고 커피 주전자에 커피를 끓여 양손에 한 잔씩 들고 나왔다.

 “여보, 빨리 나와요. 오늘 드디어 올해 첫 작목반이 시작되었어요.

 큰 소리로 남편을 불렀다. 테이블 위에는 이른 아침 텃밭에 나가 탐스럽게 자란 부추를 뜯어 한 소쿠리 가득 담아 올려놓았다. 참 신통하다. 우리가 즐겨 먹는 채소들 중에는 추운 겨울도 아랑곳하지 않고 잘 견디는 것들이 많다. 작지만 우리 집 텃밭에도 눈을 마치 솜이불처럼 덮고 겨울을 나는 것들이 여러 가지가 있다. 대파, 쪽파, 마늘, 부추, 심지어 연약한 상추까지도 혹독한 추위에 굴하지 않고 봄을 맞았다.

 그 중 부추는 겨울이면 마치 죽은 듯이 몸을 감추고 있다가 추위가 풀리면 연하디 연한 싹을 땅위로 드러낸다. 또 쪽파는 시들시들하다가도 봄이 되면 꼿꼿하게 몸을 세우고 자라기 시작하다가, 이때쯤이면 마치 세포가 분열하여 세를 불리듯이 뿌리가 여러 쪽으로 나눠지며 다음 세대를 이을 준비에 바쁜 하루하루를 보낸다.

 대파 역시 겨울에도 꼿꼿하기는 하지만 밭에서 지내는 것이 추운 듯 얼어 있다가도 봄이면 연한 대파로 다시 태어나 요리사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그러다가 꼭대기에 몽글몽글한 꽃을 피우고 이내 수많은 씨앗을 품고 다음을 준비한다. 마늘도 매서운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보호하다가 봄이 되면 점점 굵어지며 마늘종을 만들어낸다. 자칫 봄철에 달아나기 쉬운 입맛을 다시 오게 하는데 마늘종만한 음식 재료도 없다. 볶음이나 장아찌로 담아 맛있게 먹으니 여러 가지로 쓸모가 있다.

 제일 놀라운 것은 상추가 겨울을 견디는 모습이다. 야들야들 얇디얇은 잎이 어떻게 그 추위를 이겨낼까? 조그만 추위에도 방구석에서 감히 나오지도 못하고 꽁꽁 싸매고 있는 내 모습이 참 부끄럽다. 부추는 추위가 오면 잎은 다 말라버리고 뿌리로 남아 있다가 새로 싹을 내는데, 상추는 있는 그대로 추위를 버티고 있으니 참으로 장하다. 아기주먹만큼 작고 연한 잎새가 봄이 되면 손바닥을 활짝 펼치듯 넓적하고 두툼하게 자라서 된장, 고추, 마늘과 함께 크게 상추쌈 한 입이면 어찌 산해진미가 부러울까?

 이렇게 겨울을 잘 이기고 우리 텃밭을 푸르게 만들어 주는 대견한 채소들 이야기를 하며 부추를 다듬다보니, 어느새 소쿠리 가득 있던 부추들이 마치 꽃단장이라도 한 듯 매끄러운 몸매를 자랑하며 가지런히 쌓여 있다. 다듬어 놓은 부추가 담긴 소쿠리를 한쪽으로 밀어 놓고 주변을 돌아보니 온통 봄꽃들로 가득하다.

 

 봄에 피는 꽃들은 잎보다 먼저 꽃이 나오니 더 보기가 좋다. 언덕 위의 벚나무는 벌써 꽃들을 떨어뜨리고 잎이 나오기 시작했다. 연두색의 연한 빛이 참 투명하고 예쁘다. 그 뒤를 이어 텃밭 바로 옆의 사과나무와 체리나무가 마치 한 몸인 듯 하얀 꽃으로 온 몸을 감싸고 있다. 뒤질세라 단풍나무도 여리디 여린 아기손가락을 활짝 펴 봄을 맞고 있다. 매화나무는 이미 열매를 조랑조랑 매달고 있어 보기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날씨가 더 따뜻해지면 우리 집 화단에 있는 나무들이 시샘하듯 앞 다퉈 꽃을 피우겠지. 눈이 부시게 하얀 꽃이 피는 ‘남경화’, 언덕과 집 주변을 온통 붉게 물들이는 ‘영산홍’, 그리고 꽃잔디 등 마치 꽃대궐 속에 사는 듯 행복한 봄잔치를 열어 보리라.

 집안이 온통 붉은 빛으로 가득할 대 친구들을 불러 오늘 손질한 부추에 양파와 표고버섯을 가늘게 썰어 넣고 전을 부쳐, 노란 파라솔을 펼쳐 놓은 푸른 잔디위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하며 마당에서 한바탕 놀아보아야겠다. 비록 ‘파전’은 아니지만 이런 전에는 막걸리가 딱이다. 꽃에 취하고 술에 취해 마음껏 놀아 봐야겠다.

 

 “무슨 생각을 하며 혼자 웃고 있는 거야?

곁에 있던 남편이 한마디 했다. 다듬고 남은 부추 쓰레기를 주섬주섬 모아 밭에 버리고 올라오며 나 혼자 괜히 신바람이 났다.

                                                          (2019.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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