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2019.06.07 19:43

곽창선 조회 수:53

부부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곽창선

 

 

 

 

 

 긴장이 감도는 수술실, 불이 꺼지고 수술대 램프에 조명이 밝아진다. 하얀 가운을 걸친 의사와 푸른 복장의 간호사, 모두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시작 합시다.”

집도의가 입을 떼자 스탭들의 분주한 손놀림으로 아내의 상처 부위에 마취가 시작되고 메스가 가해진다.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영실 철쭉 개화기에 맞추어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출발 전 주간일기예보를 확인했건만 제주의 하늘은 험상궂은 모습으로 우리를 맞았다. 서귀포 중문 C호텔에 여장을 풀고, 창밖에 비치는 한라산을 올려다보니 도도한 자태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먹구름만 자욱하다.  

 

 잠을 설치며 초조히 기다린 아침, 오락가락 내리는 얄미운 이슬비가 가슴을 태운다. 고운 햇빛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검붉은 먹구름만이 넘실대는 한라산, 산행을 어찌하면 좋을까생각이 깊어지니 이것저것 잡념만 든다. 오전 중에 5미리 이내의 비가 내린다는 기상대 예보를 위안 삼아, 영실 탐방로를 따라 휴게소에 도착하니 부지런한 산객 3-4십 명이 비옷으로 갈아입고 하나둘 병풍바위 계단을 오르고 있다. 계단 오름은 힘겨운 고행길이었다. 오백장군 등성이에 이르자 빗방울이 굵어지며 바람이 세차게 몰아친다. 기온이 뚝 떨어지고 기력이 소진하며 추위까지 엄습하니 포기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윗세오름에 올라 돌담에 숨겨둔 표지석을 찾으니 비바람에 흔적조차 묘연하다. 잠시 멈춤조차 주지 않는 날씨 탓에 제대로 된 안부조차 못 나누고, 쫒기듯 하산길로 돌아서고 말았다.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르는 한라산, 오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야 할 것 같다.  

 

 하산길은 바람이 자고 주위가 밝아졌다. 여기 저기 비바람에 시달린 철쭉들은 힘든 모습으로 돌무덤 사이사이에서 죄지은 듯 고개를 숙였다. 지루한 고비 고비 돌길을 지나 어리목 주차장에서 안도의 기쁨을 나누며 버스를 기다렸다. 기다림이 지겨웠던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려오는 버스 곁으로 달려가다 아내가 넘어지고 말았다. 다 먹은 밥에 코 빠진다는 격으로 상처를 입었다.

 

 얼굴에 상처와 왼쪽 새끼손가락이 골절인 듯 부어올랐다. 무릎에도 피가 흘렀다. 급히 서귀포 열림병원으로 달려가 응급처치를 받은 결과 새끼손가락 골절과 얼굴, 무릎 타박상이란 진단이 나왔다. 응급 처치를 마친 아내의 모습은 이방인처럼 낯설었다. 3일 뒤 전주 H병원에서 인대 복합수술을 받고서 지금은 안정을 취하고 있다. 큰 사고가 아니라 다행이였다.  

 

 아내의 일이 나의 몫이 되였다. 살아오며 숱한 어려움을 참고 견딘 아내의 인고의 세월을 알 것도 같다. 청소, 밥짓기, 빨래 등 잡다 한 일들이 많기도 하다. 얼굴과 손가락, 무릎 부상이라 온갖 수발도 나의 도움이 뒤따라야 한다. 특히 머리감기가 가장 힘든 일이었다. 서툰 솜씨가 아내를 불안하게 할까 싶어 몰래 눈치를 살피며 돌본다. 유난히 털털해서 짜증이 날만도 한데 웃는지 우는지 모를 미소만 보일 뿐이다. 순간순간 짜증이 일기도 하지만 속으로 삭여야 했다. 살아오며 아내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을 기회로 삼고 싶은 마음에서다.

 

  저린 손을 잡고 괴로워하는 아내가 오늘 따라 더욱 안쓰럽다. 아파하는 상처를 보살피지 못하는 내 마음도 아프기는 매 한가지다. 부부 일심동체라더니 이를 두고 하는 말 같다. 평소에 느끼지 못한 세월을 곱씹으며 눈물겨운 나날들이 떠올라 부끄러움이 앞을 가렸다. 지난 섭섭함을 가눌 길 없으니 아파하는 마음이라도 감싸는 기회로 삼고 싶다. 옆에 잠든 아내의 숨결이 고르다. 손을 잡아끌며 침대 맡에 앉던 아내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고마워요, 그래도 영감이 최고야!”

뜬금없는 칭찬이다.

 “이제 나 없어도 잘 살 것 같아 마음이 놓여요!”

 "무슨 쓸데없는 소리야? 내가 떠나거든 뒷마무리를 잘 해주고 와야지.”

 아내와 나는 말없이 손을 잡고 쓸쓸히 웃고 말았다. 부부란 이렇게 서로 아픔을 보살피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저녁 식사는 아내가 좋아하는 전복죽을 쑤어야겠다.

                                                                        (2019.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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