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문학공원을 다녀와서

2019.06.10 06:54

신효선 조회 수:24

박경리문학공원을 다녀와서

                                                  신아문예대학 금요수필창작반 신효선

 

 

 

 

  신아문예회원들이 문학기행을 가는 날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어젯밤 내린 비로 스산한 느낌은 들었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계절의 여왕 5, 전주에서 출발한 관광버스 안은 회장님의 구수한 사회로 한껏 분위기가 들뜨고 즐거워 문학기행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 주었다. 창밖엔 하얀 쌀밥을 닮았다는 이팝나무꽃이 가로수길을 수놓으며 우리를 반기고, 아카시아꽃이 온 산을 덮어 장관을 연출했다. 충북 옥천군 옥천읍에 자리한 정지용문학관을 둘러보고 원주에 있는 박경리문학공원에 도착했다.

  박경리 작가(1926~2008)는 경남 통영 출신이지만, 1980년부터 타계할 때까지 원주에 살며 작품활동을 했다. 원주에 『토지』와 관련된 곳이 두 군데나 있다. 원주 시내의 ‘박경리문학공원’과 외곽지역인 흥업면 매지리에 ‘토지문학관’이 있어 처음엔 ‘토지문학관’으로 가느라 헤맸다.

  원주 ‘박경리문학공원’은 구한말 일제강점기로부터 민족광복까지를 배경으로 한 우리 한민족의 대서사시인 『토지』의 산실이다.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는 19948월 집필 26년 만에 『토지』 전체가 탈고되었다. 선생은 말년을 원주에서 사셨다. 딸과 외손자를 찾아가 머물며 창작활동을 계속했던 곳이 이제는 원주의 명소가 되었다.  

  선생이 지금도 살고 있을 것 같은 예전의 집을 둘러보았다. 한 번쯤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이렇게 원주에 와서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옛집이지만 기회가 되면 살아보고 싶을 정도로 자연적 조건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어서  좋았다. 옛집 옆에 있는 작은 텃밭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봄이면 소쩍새와 쑥꾹새가 울고, 여름에는 연못에서 맹꽁이가 목이 터지라 울었다는 곳, 집에서 혼자 고양이 몇 마리와 정붙이고 사셨다 한다. 텃밭을 일궈 채소 등을 심어 스스로 먹거리를 구했다. 선생은 마음을 비운 뒤 소박한 삶에 만족하며 살았다. 선생은 견문이 넓어 아는 것도 많았지만, 결코 그것을 남에게 내세우지 않으셨다 한다.  

  선생이 아끼고 매만지던 단구동 집 텃밭에서 일하고 난 후 바위에 앉아 고양이와 더불어 책과 호미를 옆에 놓고 쉬고 있는 모습을 담은 조각상이 마당 가운데에 있었다.

  선생은 200855일 눈을 감았다. 선생은 이미 다가온 죽음을 느끼셨던지, 한 문예지에 유언 같은 시를 남기셨다. 그 시의 끝부분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모진 세월 가고 /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삶의 무게가 그렇게도 무거웠던가! 선생은 돌아갈 날들을 눈앞에 두고 편안하다는 말을 두 번이나 거듭 강조했다.

 

  선생은 『토지』와 같이 굽이굽이 흘러가는 대하소설 같은 생을 살면서 근대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한국인의 삶의 고난을 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온 격동의 세월이었다. 선생은 1926년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박금이로 박경리라는 이름은 김동리가 지어준 것이다.

  나는 몇 년 전, 통영 ‘박경리기념관’에 갔었다. 선생의 고향인 통영에 세워진 아주 소박한 묘지에서 번잡하고 화려한 것을 싫어하던 선생의 생전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보통 사람의 묘지보다 더 소박했다. 기념관에서는 선생의 문학 정신과 중요한 업적들을 엿볼 수 있었다. 아름다운 바다가 길러낸 인물들. 통영은 박경리뿐 아니라, 시인 청마 유치환과 김춘수, 음악가 윤이상 등을 낳은 고장으로 유명하다.

  201055일 고인이 세상을 떠난 지 2년이 지난 뒤 박경리기념관이 통영시 산양읍에 문을 열었다. 끊임없이 삶을 탐색한 박경리 작가, 그 옛날의 아픔과 절망의 나날에서 길어 올린 삶의 깊이와 소망. 박경리기념관 나들이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다.

  몇 년 전 쌍계사 벚꽂 구경을 가면서 하동 ‘박경리토지문학관’에도 갔었다. 전형적인 농촌마을 평사리 최참판댁은 드라마의 촬영장으로 2001년 완성되었다.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조성된 최참판댁은 전통한옥 구조의 안채와 사랑채, 별당 등 총 10동으로 구성됐다. 마을은 섬진강 물줄기와 지리산 능선의 완만한 자락 위에 자리한 초가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원주에 있는 ‘박경리문학공원’, 하동의 ‘토지문학관’, 그리고 고향 통영의 ‘박경리기념관’ 모두 선생의 문학과 생에 대한 이야기로 꾸며졌다. 김동리의 추천으로 월간 현대문학에 단편『계산』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 뒤 5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하소설 『토지』와 『파시』, 『표류도』, 『불신시대』, 『김약국의 딸들』등을 내놓으며 한국 문학사의 샛별로 떠올랐다.

  거목은 몸통이 크고 거느린 가지와 잎이 많은 만큼 드리우는 그늘도 크다.  한국문학의 거목이자 세계문학의 거장으로 거듭난 박경리 선생. 세계에 가장 알리고 싶은 한국의 문인, 그녀는『토지』를 남기고 토지로 돌아갔다.

  토지는 TV드라마뿐만 아니라 영화, 가극, 창극 등으로도 만들어져 널리 알려졌다. 선생이 남긴 『토지』위에 후학들이 새로운 문학의 꽃을 활짝 피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9.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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