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야, 미안하다

2019.06.20 19:58

김창임 조회 수:7

붕어야, 미안하다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김창임

 

 

 

  눈보라가 치는 어느 날, ≺붕어찜≻이 먹고 싶다며 남편이 붕어 큰 것 두 마리를 주방으로 들고 왔다. 펴보니 남편 손바닥보다 조금 컸다. 꼬리지느러미는 아직까지 살아서 푸드덕푸드덕거리면서 다시 물속으로 보내 달라고 발버둥 치는 것 같았다. 아직도 더 힘이 남아있는지 이리저리 흔들고 있었다. 말갛게 뜬 두 눈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 ‘아줌마, 제발 나 좀 살려 주세요!’ 하면서 애원하겠지.

 그렇지만 너의 운명은 오늘이 마감이란다. ‘자 도마로 이사해보자.’ 아무것도 모르는 붕어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도마에 누워있다. 내가 지난번에 병원에서 진찰할 때 침대에 누워 있는 것과 똑같다. 제일 먼저 비늘을 벗겨내기 위해 비늘 반대 방향을 향해 칼로써 그것을 벗겨냈다.

 다음은 내장을 없애기 위하여 복부를 절개하여 손을 넣고 내장을 끄집어냈다. 창자, 쓸개, 등이 있었다. 내장과 피를 빼앗아갔으니 아무리 살려고 해도 소용이 없다. 더구나 지느러미까지 없애버렸지 않은가? 거기다가 일일이 칼집을 넣을 때 얼마나 진통이 세게 느껴졌을까? 그래야 양념이 잘 배어든다. 꾹 다문 입을 보면 이런저런 사연들은 침묵으로 말하고 있다.

 꼭 나 같은 성격이었을까? 나도 이 붕어처럼 웬만한 일이면 입을 다물고 만다. 다물고 있으면 저절로 모든 일이 술술 풀릴 때도 있었고 때로는 억울한 일도 있었다. '붕어야, 꼭 입을 다물되 말을 할 때는 한 번씩 야무지게 하도록 해라. 세상 사람들은 말을 안 한 그들을 조금 무시하는 경향이 있더라.'  

 붕어, , 미나리, 깻잎, 양파, 쌀뜨물을 넣고 양념장을 따로 만들어 넣었다. 간장에 준비한 양념 재료를 넣고 골고루 잘 섞어주었다. 붕어가 양념 옷을 입으니 붕어가 무지개처럼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냄비 바닥에 무를 깔고 붕어를 놓았다. 무 덕분에 붕어는 어지간한 불에는 타지 않을 것이. 삶의 무게를 견뎌낸 무에게 ‘고맙다’ 고 인사를 꼭 해라. 붕어와 무에게 양념장을 발라준 뒤 쌀뜨물 한 컵 둘러주었다. 생강, 양파즙, 양파 반 개를 썰어서 올려주고 이제 냄비 뚜껑을 덮은 뒤 보통 불에서 자작하게 끓여주었다. 생강과 쌀뜨물을 넣었으니 네가 화를 낸 흔적 즉 비린내는 내고 싶지만 낼 수 없을 것이다. 깻잎과 미나리의 향이 너의 비린내쯤이야 문제가 되지 않거든. 한소끔 충분히 끓인 후 미나리를 길게 썰어서 넣어주고, 깻잎도 마저 넣는다. 미나리와 깻잎이 누런빛이 날 때까지 불을 조금 줄인 뒤 계속 끓였다.

 붕어찜이 다 되면 온 집안에 맛있는 냄새가 진동하고, 옆집에서는 먹고 싶어 강아지들까지 야단법석을 할 것이다. 우리 가족 모두에게 웃음꽃이 활짝 피고 웃음소리도 날 것이다. 온몸에 상처로 얼룩진 붕어의 마음을 1%라도 알아주지 않으면서 조금이라도 더 많이 먹겠다고 젓가락이 왔다 갔다 할 것이다. 또 붕어는 슬프지만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의 가시가 무섭다고 조심해서 먹어다오. 그렇지만 나는 먹는 순간부터 너의 아팠던 일을 생각했단다.  

                                                                 (2019.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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