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주 선생 묘를 참배하고

2019.07.23 07:16

윤석순 조회 수:16

정몽주 선생 묘를 참배하고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윤석순

 

 

 

 

 하계 문학기행의 마지막 목적지는 고려말 충신으로 우리나라 성리학의 기초를 닦은 포은 정몽주(1337~1392) 선생의 묘소였다. 정몽주의 묘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곡로(능원리)에 있었다. 이곳은 경기도 지방문화재 제1호인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역으로서 참배객에 한하여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애완견 출입, 골프, 공치기, 주차 금지다. 흡연, 음주, 취사, 쓰레기투기 등과 종교, 무속행위, 미끄럼, 썰매 등도 금지다. 차량통행금지, 주차는 앞 주차장을 이용한다. 참배 시는 사전에 영모제 방명록에 기재하고 문화재 해설사 및 관리인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포은 선생은 공민왕 9년 과거에 장원급제한 뒤 예문관검열, 예부정랑, 대사성 등의 여러 벼슬에 올랐다. 동방이학(東方)의 시조로까지 추대되었다. 성리학에 매우 밝았던 정몽주는 오부학당과 향교를 설치하여 유학을 진흥시켰다. 정몽주는 1517(중종 12)에 태학생(太學生) 등의 상서로 문묘(文廟)에 배향되었다. 고려 말 정도전 • 조준 등이 날로 세력이 커지는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려 하자, 이를 저지하려다가 도리어 이방원의 자객에게 1392년 개성 선죽교에서 피살되었다. 정몽주는 1517(중종 12)에 태학생(太學生) 등의 상소로 문묘(文廟)에 배향되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포은 선생이 순절한 뒤, 풍덕군에 묘를 썼다가 그 뒤에 고향(경상북도 영일과 영천) 중 한 곳인 영천으로 이장할 때, 경기도 용인시 수지면 풍덕천리에 이르자 앞의 명정(銘旌:다홍 바탕에 흰 글씨로 죽은 사람의 품계, 관직, 성씨를 기록한 깃발)이 바람에 날아가 지금의 묘소에 떨어져 이곳에 묘를 썼다고 한다.

 묘비에는 고려시대의 벼슬만을 쓰고 조선의 시호를 쓰지 않아 두 왕조를 섬기지 않는 뜻을 분명히 했다. 묘역 입구에는 송시열이 지은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가 있는데, 정몽주의 충절과 높은 학식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다. 묘소 입구에는 호롱불 병의 마을 지도가 놓여져 있고, 안내도와 포은 정몽주 선생에 대한 약력이 적힌 안내판이 있으며, 포은 선생의 신도비가 있는 정각을 볼 수 있다.

 신도비 정각 옆에는 포은 선생의 비석들이 세워져 있다. 신도비는 1699(숙종 25)에 세워졌는데 현종 때의 문신 김수증이 비문을 썼고, 글은 송시열이 지었으며, 전액은 김수항이 썼다고 한다. 세월의 흔적일까. 신성시 되는 장소에 세워지는 홍살문이 색이 바랜 채 세워져 있다.  이 홍살문은 궁전이나 관아, , , 원 등의 앞에 세우는 붉은색을 칠한 나무문이다. 입구에는 홍살문만 있을 뿐 다른 유적지와는 달리 입장료와 주차료도 없다묘소 밑에는 포은 선생의 재실 등이 있다. 1980년에는 묘역의 민가 3채를 이전하고 신도비각, 재실(齋室) 등에 대대적으로 정화 사업을 실시했다고 한다.

 고려 말, 위화도 회군으로 권력을 장악한 이성계를 만나러 가는 아들 정몽주에게 밤에 꿈자리가 사나우니 만나러 가지 말 것을 권유하던 어머니가 아들을 훈계하기 위해 지었다는 풍유시 ‘백로가’ 시비가 세워져 있는데, 훌륭한 어머니에 그 아들이었다. 재실의 담장 너머로 포은 선생의 묘가 보이고, 그 위로 포은 선생의 절개와 같은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다. 포은 정몽주 선생 묘소비가 세워진 뒤쪽으로는 후대에 인공적으로 파놓은 듯한 연못이 있는데, 파란 하늘과 소나무들로 둘러싸여 있다. 장명들과 문인석, 망주석과 양 두 마리가 선생의 묘소에 수백 년 세월을 같이 하고, 선생의 묘소 앞에서 보이는 풍경은 산들 뿐이다. 포은 선생께서 고려 왕실을 지키려다가 개성 선죽교에서 타살된 뒤, 1406(태종 6) 3, 풍덕군(豊德郡)에 추장하였던 묘소를 지금의 자리에 옮기면서 부인 경주이씨와 합장했다.

 

  정몽주의 묘는 대대적인 정화사업을 실시하여 묘를 수축하고, 재실 경역에 있는 한옥민가 3채를 이전했고, 마을 입구에 있는 신도비에 비각(碑閣)을 건립하였다. 홍살문을 지나면 좌측으로 각종 제례행사나 종중화의를 하던 모현당(慕賢堂), 현재 정몽주 선생 묘를 관리하는 곳이 있고, 관리인이 거주하는 경모사(敬慕舍). 그리고 제향을 위해 지은 영모재에는  포은 선생이 직접 쓴 행서편판이 걸려 있다. 최근에는 잔디광장을 신설하면서 묘역 입구를 새로이 단장하였다. 봉분 중앙에는 장명등이 있고 우측에는 모표 1기가 세워져 있다. 모표는 방부운수(方趺雲首) 양식이다.

 금석문을 보면, 모표의 비신 앞면 중앙에는 한 줄로 “고려수문하시중정몽주지묘(高閭守門下侍中鄭夢周之墓)”라고 쓰여 있고, 뒷면에는 음기를 각자하였다. 찬자(撰者)와 서자(書者)는 미상이다. 신도비에는 “황명고려수문하시중익양군충의백포은정선생신도비명병서“라고 쓰여 있다. 비문은 좌의정 송시열이 찬()하고, 동지돈녕부사 김수증이 서()하였으며, 영의정 김수항이 전()을 올렸다. 신도비는 묘역 입구에 있는 사모지붕 비각 내에 서향(西向)으로 안치되어 있다.

 정몽주 선생 묘역은 1970년대에 대대적인 정비작업으로 원형이 바뀌는 결과를 초래했다. 정몽주 선생의 신도비는 당대 최고의 명사들이 제작에 참여하여 금석학적인 의의가 있으며, 그에 대한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묘표에는 1517(중종 12)에 태학들이 정몽주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중종에게 청원하여 세웠다고 새겨져 있다. 묘소는 단분(單墳)으로 종전부터 있었으며, 곡담과 묘 둘레돌 등은 1970년에 추가 설치한 것이다. 포은 선생의 절개와 충절을 아는 듯이 묘역의 길목에서 산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뜨거운 7월의 여름 하늘이 따뜻하게 보호해 주는 듯했다.

 정몽주 선생 묘 입구에는 ‘단심가’ 와 정몽주 선생의 어머니가 쓴 ‘백로가‘가 비석에 새겨져있다. 비석 앞쪽에는 ‘선죽교’를 재현해 놓은 다리가 있다. 지금은 묘역을 깨끗하게 정비하여 편안한 분위기에서 참배하게 되었다. 연못에는 물고기들과 잉어가 뻐금뻐끔 놀고 있으며, 어린이들이 넘어져도 다치지 않도록 잔디가 깔려있다.

  이 묘역은 포은 선생 후손들의 거대한 묘원이다. 그의 큰아들, 손자, 후손들의 오래된 묘들이 포은 선생을 중심으로 골짜기를 메운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데 마침 약간의 비가 내려 걷기에 편했다. 단체가 함께 포은 선생을 흠모하는 마음으로 묘소를 찾아서 올라갔다.  해설 예약을 하여 용인시 문화관광해설사가 무료로 해설을 해주니 편리했다. 차가 없으면 찾아 가기 힘든 곳이다. 주차하기에 여유 공간이 없는 것도 아쉬웠다. 무더위에 더운 줄도 모르고 교수님들과 문우들은 열심히 멋진 폼으로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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