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친다는 것

2019.07.24 05:50

변명옥 조회 수:4

가르친다는 것

 

                                             신아문예대학 수필금요반 변명옥

 

 

 

 

  3월이 시작되면 정신없이 바빴다. 화장실에 가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할 일이 많았다. 2월 방학 중에 나와서 반 편성 자료를 가지고 생활기록부와 건강기록부를 묶고, 임시 출석부를 작성한 뒤, 32일에 어린이들과 첫 만남을 가졌다. 아이들도 ‘어떤 선생님을 만날까?’ 긴장하지만 교사인 나도 1년 동안 같이 지낼 아이들이 ‘누구일까?’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요즈음 사람들은 할머니가 너무 ‘오냐오냐’ 하고 키워서 아이들이 버릇없고 자기만 안다고 한다. 정말 나는 한 번도 할머니한테 혼난 적이 없다. 맏아들의 손자 둘 밑의 첫 손녀인 나뿐만 아니라 작은 집의 다른 손자 손녀들도 혼내시는 것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 어쩌다 눈에 거슬리는 일이 있으면 가만히 불러다가 타이르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학교에 다니면서 남들한테 예의가 없다고 손가락질을 받거나 이기적이라고 미움을 받지는 않았다. 내 생각이지만 말이다.

 

 할머니는 조선시대의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 학교 교육을 전혀 받지 않고 아녀자로서 지켜야 할 예절을 엄격하게 배우신 분이다. 말 한마디, 행동하나 흐트러짐이 없었다. 결혼하고 할아버지가 먼저 남한으로 내려와 대전에 자리 잡고, 1년 뒤에 할머니도 물설고 말까지 다른 곳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해서 42녀를 낳아 기르셨다. 딸 둘을 키울 때 마루에 걸터앉지 말고 올라와 바로 앉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둘째 아들에게 안감은 빨강 겉은 검은색으로 물들이고 풀을 먹여 반질반질하게 다듬어 밤새 바느질한 두루마기를 입혀 서당에 보냈다. 오는 길에 벽에 문질러 빨간색이 나오게 얼룩덜룩하게 입고 왔다고 한다. 아마 호기심으로 그렇게 했겠지만, 할머니는 야단을 치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아들들이 서당에서 책을 다 배웠다고 책거리를 하면 시루떡을 해서 지게에 지워 보냈다고 하셨다. 물론 할머니는 대문 밖 출입을 안 하실 때이다. 걸음마를 시작한 셋째가 화단에 앉아 꽃을 꺾자 “진국아, 꽃을 꺾으면 안 돼.” 하자 작은 손으로 도로 붙이려고 애를 썼다고 한다.

 

 내가 교사로 정식 발령받기 전에 강사로 나가 받은 첫 월급을 봉투째 할머니께 드렸다. 대견하게 생각한 할머니는 속바지 호주머니에 넣고 약장수 구경을 가셨다가 소매치기를 당하셨다. 한 달 생활비나 마찬가지인 돈을 몽땅 잃었으니 그 한 달은 정말 괴로워 할머니에게 짜증을 부린 것이 지금도 죄송하다. 손녀의 원망을 받으면서도 잃어버린 사람 잘못이라고 돈을 훔쳐간 사람 원망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무얼 잃어버리면 잘 간수하지 못한 내 죄가 크다고 생각한다.

 

  어릴 적 이웃에 용득이 엄마가 살았다. 친정엄마가 없었는지 아이를 일곱이나 낳아도 누가 해산구완을 해주러 오는 사람이 없어 할머니가 밥하고 미역국을 끓여주셨다. 젖도 잘 나오지 않아 아이들이 작다고 걱정하시는 것을 들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이웃을 도와주고 누가 된장이나 간장이 없다고 하면 큰 바가지로 한 바가지씩 담아주시곤 했다. 우리라고 그렇게 넉넉한 편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할머니, 제 친구 ◯◯가 놀려요.” 이르면 할머니는 항상 “그런 사람은 그러려니 해라.” 하셨다.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하고 불만을 쏟아내도 그 말씀뿐이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탓하지 말고 그냥 이해하고 잘 지내라고 타이르신 것 같다.

 

 할머니는 자연에서 배우시고 생활 속에서 지혜를 깨달으셨다. 스스로 깨우친 한글로 천주교 교리도 배우고 옥루몽이라는 소설책도 보셨다. 내가 학교에서 큰 상장을 타 와도 단 한 번도 말로는 칭찬을 안 했지만 할머니가 속으로 기뻐하신다는 것을 느꼈다. 보이지 않는 마음으로 나를 격려하고 응원하셨다. 무슨 일이든 내가 결정하고 잘못된 길로 가다가도 스스로 깨우쳐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주셨다. 그 기다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나는 나이 든 지금에야 절실히 깨닫는다. 기다림이라는 것은 사랑과 절대적인 신뢰가 없으면 안 된다.

 나는 손자 손녀들에게 어떤 할머니일까? 가끔 나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을 한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십자가 고상 밑에서 기도하시면서도 내가 너희들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나는 가끔 선심 쓰듯이 이야기한다.

 

 되직한 지 벌써 8년이 넘었다. 어제 주민센터에 가서 세금을 내고 오는 길에 예전 학부모를 만났다. 젊은 사람이라 그런지 만난 지 5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고왔다.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 어쩌면 그대로냐고 했더니 환하게 웃었다. 내가 가르친 큰딸과 밑의 아들의 안부를 물었더니 딸은 대학에 들어가고 아들은 고 2학년이라고 했다. 딸과 같은 반이었던 민지에 대해 “선생님, 민지가 서울대 경영학과에 들어갔어요.”라고 말했다. 기뻐서 정말 잘 됐다고 했다. 엄마들이 만날 때 나도 초대해서 간 적이 있었다. 나 때문에 엄마들이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못 할까 봐 조심스러웠다. 요즘은 자주 못 만나고 모이면 꼭 연락하겠다고 했다. 제자들이 잘됐다고 하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고 자랑하고 싶다.

 “얘들아, 선생님도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있으니 쭉쭉 날개를 펴고 하늘 높이 꿈을 펼치기 바란다.                                                                                            (2019.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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