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자왈 숲길

2019.07.25 06:27

양희선 조회 수:23

곶자왈 숲길

   안골복지회관 수필창작반 양희선

 

 

 

 

 옛날 증기기관차를 꼭 빼닮은 기차를 타고 신비스런 제주 곶자왈 숲속으로 들어갔다. 숲이 빼곡히 우거진 울창한 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하늘빛 투명한 호수가 조화를 이뤄 빼어난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다웠다. 활기찬 사람들은 숲속을 거닐면서 자연의 생태를 온몸으로 느껴보는 힐링 코스로 좋을 듯싶다. 노약자나 어린이들을 배려한 기관차를 연달아 운행하고 있었다. 어른아이뿐 아니라 기차여행은 누구나 즐기는 낭만과 스릴이 아니던가.

 

  긴 투병생활에서 벗어난 아빠의 기분전환을 위해 아들과 딸이 나서서 제주도여행을 주선했다. 처음엔 먼 여행길을 감당해낼 수 있을까 망설였다. 아빠는 워낙 여행하기를 좋아했고, 활동적인 성품이라 쾌히 승낙했다. 자녀들은 모든 일정을, 활발하게 걷지 못하는 아빠의 건강에 알맞은 코스를 골라 선택했다. 아이들 마음은 제주의 올레길이나 새롭게 개발된 곳을 고집할 수도 있으련만, 부모님을 배려하여 꼼꼼하게 계획을 세워 많이 걷지 않는 곶자왈 에코랜드 테마파크를 선택했다. 기차 타고 다니면서 곶자왈 자연숲과 위락시설을 구경할 요량이었다.

 

  엊그제는 태풍급 비바람이 불어 날씨가 심상치 않았었다. 오늘 제주에 도착하니 다행스럽게도 흐리고 안개비만 내렸다. , 바람, 여자가 많기로 소문난 제주는 오늘도 역시 바람이 분다. 따스한 햇볕이 구름 속에 숨어 우중충한데, 바람마저 선득거리니 한여름인데도 쌀쌀하고 춥게 느껴졌다. 비옷이 바람막이가 되어 겉옷을 걸친 것처럼 포근했다. 광장에는 어린이를 동반한 부부들, 노부모를 모신 가족들, 정다운 사람 끼리끼리 모여들어 뒤엉키고 북적대는 테마파크(Thema park) 현장이었다.

 

 곶자왈이란? 제주어로 곶()과 자왈 (암석과 덤불이 뒤엉킨 모습)의 합성어다. 화산이 분출할 때 점성이 높은 용암이 크고 작은 바위덩어리로 쪼개져 요철지혈이 만들어 지면서 형성되었다. 그러한 지형은 지하수 함양은 물론 다양한 북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숲을 이루어 생태계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살아 숨 쉬는 각종 희귀한 식물이 자연적으로 자생 서식하여 종족을 뻗치는 생태계의 보고(寶庫). 생명의 숲이라 불리는 제주의 명소, 소중한 자연유산이다.

 

  우리일행은 기관차를 타고 메인역을 출발하여 첫 번째 정거장으로 갔다.  숲길을 달리니 어린아이처럼 마음이 들떴다. 낭만과 행복을 가득 싫은 기차는 푸른 산길을 달려 에코부리지역에서 모두 내렸다. 한적한 오솔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가니 광활한 호수가 눈앞에 펼쳐졌다. 푸른 숲과 맑은 호수가 조화를 이뤄 아름다움의 극치(極致)였다. 호숫가를 걸으며 자연의 풍광에 취해 남편이 뒤따라오는지조차 잊었다. 넓은 호수를 끼고 한참을 걸어서 다음 역까지 가야 했기에 그때서야 남편이 염려되었다. 뒤를 돌아보니 착한 손자 녀석이 할아버지 곁에서 천천히 따라오고 있다. 한창 뛰어다닐 대학생이 할아버지 때문에…. 미안했다.

 

 레이크사이드역에서 내렸다. 이국적인 커다란 풍차가 우뚝 서있어 동화의 나라에 온 것 같았다. 물을 퍼 나르는 풍차가 활개를 뻗치고 서있다. 아이들이 물위에서 신나게 즐기는 범퍼보트도 보였다. 위락시설을 알차게 꾸며놓아 아이들의 놀이터로 그만이었다. 화산송이 맨발체험, 숲속 작은 책방, 영국산 작은 말 포니, 시원한 족욕 등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여행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이곳저곳을 구경하느라 피로한 발을 시원한 물에 담그고 휴식을 취하는 코스다. 지하암반수를 가운데에 채워놓고 편백나무 의자가 빙둘러 놓여있다. 잠깐 발을 물에 담그는 휴식으로 재충전하니 발걸음이 가벼웠다.

 

 마지막 코스다. 라벤더꽃향기 은은한 꽃밭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저쪽 끝이 가물가물하다. 입이 떡 벌어졌다. 이렇게 넓을 수가…. 라벤더꽃철이 조금 지나 시들어 꽃향기를 잃어 아쉬웠다. 보라색 라벤더꽃이 한창 피었을 때 풍기는 향내가 사방팔방으로 풍겨 진동하였으리라. 봄철에는 노란유채꽃이 화사하게 물들고, 매혹적인 튤립은 관광객들을 사로잡았겠지. 철이 지나 꽃밭은 사라지고 사진 상으로만 볼 수 있었다. 메밀 모종이 넓은 벌판에 가득 심어져 있었다. 눈꽃처럼 순박한 사랑스런 메밀꽃. 머지않아 소금을 뿌려놓은 듯 하얀 메밀밭을 볼 수 있겠지. 제주에는 길거리마다 탐스런 색색 수국이 한창 흐드러지게 피었다제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박하고 은은한 문주란 향기가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 문주란이 왠지 보이질 않았다.

 

 남편이 제직하던 여름휴가 때, 한라산에 올라 백록담까지 등반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갈 때마다 새롭게 느껴졌던 제주도를 열 번도 넘게 다녀왔건만, 생생히 추억에 남는 곳은 오직 한라산 등반이다. 무서울 게 없었던 젊은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세월을 이겨 늙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젊음을 앗아간 세월이 야속하다. 이번 제주여행은 기차를 타고, 생태박물관을 훑어보고, 맛집을 찾아 제주의 손맛을 맛보는 동네 한 바퀴 돌고 온 마실 같았다. 자식들이 돈 잘 버는 사업가도, 의사도, 판검사도 아니지만 올곧게 자라 부모 섬길 줄 알고, 제 가정을 소리 없이 꾸려나가니 더 이상 바랄게 무에 있겠는가. 자기존속을 이유 없이 살해하는 무서운 세상이아니던가. 귀중한 시간을 내어 우리부부에게 활력을 재충전시켜준 아들과 딸이 고맙다. 모처럼 한국에 와서 할아버지를 보살피느라 제주여행을 제 맘대로 하지 못한 손자에게 미안하다. 할아버지를 잘 보살펴 주어서 고맙다.  

 

                                                     (2019.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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